필드 OJT (3)
퇴마단의 존재는 철저하게 보안에 부처 진다. 그렇기 때문에 퇴마단에 몸담기로 한 순간부터 가족을 비롯한 인간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을 정도이다. 퇴마단은 자신들의 업적을 드러내지도 않고 음지에서 묵묵히 역할을 해왔었다. 그런데, 그 퇴마단의 은닉성이 자칫하면 깨질 수도 있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대니얼이 사용했던 휴대용 EMP 폭탄은 반경 50미터 이내의 모든 전자기기를 파괴했다. 반도체나 전자회로를 부품으로 사용하는 기기이면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전부 파괴했다. 폭발 직전까지의 지하철 CCTV 영상은 폭발 반경에서 멀리 떨어진 역무실의 보안관제용 컴퓨터에 실시간으로 저장되고 있었다. 그 영상을 통해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대니얼을 특정했다. 뉴스엔 연일 EMP 폭탄을 사용한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한 경찰의 수사 경과가 보도되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하루 만에 퇴마단 지역본부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제임스와 대니얼은 소환되었다. EMP 사용 경위에 대해 동대문지부 내 시설과 장비를 관리 허술의 책임을 물어 제임스에겐 강등이 결정되었다. 기존 5급에서 6급으로 한 등급 계급이 내려가게 된 것이다. 한편, 대니얼의 경우는 간단히 징계를 내리는 것을 떠나 조금 더 복잡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전국적으로 지명수배까지 내려진 마당에 퇴마단 조직 내부에서만 징계를 하는 것에 그칠 수 없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즉, 경찰에 신병을 인도하여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사실상 대니얼을 퇴마단에서 추방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대니얼이 경찰의 추궁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퇴마단의 존재에 대해 알려질 위험이 크다. 소형 EMP 폭탄을 개발하여 각 지부로 보급하면서 사용 및 보관 매뉴얼을 명확하게 공지하지 않았고, 사용 방법에 대한 교육도 없었다는 점을 들며 제임스는 이 사건의 책임이 퇴마단 본부에도 있음을 항변하며 대니얼의 추방을 막았다. 결국 위원회는 대니얼을 추방하는 것 대신 자체 징계와 징벌을 내리는 쪽으로 결론지었다.
퇴마단은 익명으로 피해 복구에 사용해 달라는 명목으로 1억 5천만 원을 지하철공사에 기부했다. 지하철공사는 당시 휴대폰 파손된 승객들 중 단말기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들 위주로 휴대폰 비용을 보상해 주었고 나머지는 지하철 역내 파손된 기기들 보수에 사용했다. 대니얼은 징벌의 의미로 감치 처분을 받고 퇴마단 내 수용시설에 3개월간 갇혀서 매일 반성문을 썼다. 감치가 종료되는 즉시 매월 100만 원씩을 퇴마단에 갚아나가야 했다. 퇴마사로 활동하면서 다른 직업을 갖고 돈을 번다는 것은 엄청난 고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니얼의 고모가 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은 대니얼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며 퇴마사를 병행했었다. 그러다 결국 몸에 무리가 왔고 블랙포스 주술이 조금씩 누적되어 결국 병을 얻고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퇴마사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않으면 블랙포스의 빙의체를 대면하거나 텔레퀴즈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점점 주술의 마력이 몸에 누적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부업을 하며 돈을 벌다가는 결국 서서히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다. 대니얼에게 매월 100만 원씩을 갚으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대니얼은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징벌방에서 내내 가능한 한 체력소모를 적게 하면서 목표한 금액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가장 쉽게 떠오른 것은 영어 과외교습이었다. 대학을 중퇴하긴 했어도 그가 다니던 프린스턴 대학은 미국의 최상위 학교였다. 영어실력은 남아있을 터였다. 일자리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머릿속에 남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클레어한테 제대로 미운털이 박혔을 텐데 괴로운 날이 이어지겠구먼.
"야! 빨리빨리 안 다녀?"
헐레벌떡 뛰어 오는 대니얼을 향해 클레어의 앙칼진 목소리가 날아왔다. 본부에서 영상 수신기로 대니얼을 모니터링하던 현장 필드 훈련 중 EMP탄 사고가 일어났으니 더 이상 편하게 대니얼을 감시할 수 없어진 클레어가 직접 현장으로 나온 것이다. 대니얼이 3개월의 징벌방 감금을 마치고 나왔을 때도 클레어는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대니얼 때문에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지고 강등까지 당한 것에 대한 분노도 섞여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대니얼이 일상으로 복귀한 지 벌써 2주일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쌀쌀맞게 군다. 대니얼은 "죄송합니다."라고 한 마디 한 뒤 클레어의 뒤를 쫓아 걷기 시작했다.
"10분 전 본부에서 주술 감지기가 발동됐어. 아빠가 즉시 레이더를 켜서 위치를 확인해 보았더니 이 근처에서 표적주술 징후가 포착되었다는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표적주술 징후가 불과 1분도 안되어서 사라져 버렸어. 그래도 최종 위치가 이쪽이었으니까 확인차 순찰을 해보는 거다. 앞으로 호출하면 빨리 튀어 오도록 해. 알겠어?"
"네."
"너는 아직 수배 중일 수도 있으니까 항상 얼굴 위장 잘해."
대니얼은 항상 설정술을 사용해서 얼굴의 형태와 인상을 바꾼 채로 다니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항상 하고 있어요."
대니얼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 클레어가 갑자기 몸을 획 돌려 대니얼을 노려보며 말했다.
"안심시키려고 하지 마. 난 널 믿을 수 없어. 이 사고뭉치놈아!"
달리 할 말이 없어 대니얼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오던 골목길을 조금 더 걸어 내려가자 허름한 다세대 빌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근처야."라고 클레어가 이야기하며 대니얼을 앞서 잰걸음으로 지나갔다. 골목 모퉁이를 오른쪽으로 돌았을 때 커다란 초록색 의류수거함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의류수거함 옆에 이불을 싼 것 같은 커다란 보따리 뭉치가 기대어 놓여 있었다. 클레어의 눈은 그 보따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왠지 모를 불길함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대니얼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보따리를 향해 다가섰다. "잠깐만!"하고 외치며 클레어는 대니얼의 팔을 붙잡았다. 왜 그러냐고 대니얼이 물었다.
"저 보따리 안에 사람이 있어."
대니얼은 클레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보따리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이불 보따리. 가까이 다가가자 보따리 아래쪽으로 피얼룩이 보였다. 비릿한 냄새도 올라왔다. 대니얼은 조심스럽게 보따리로 손을 뻗었다. 묶인 매듭을 풀자 안에서는 피가 범벅이 되다 못해 홍수처럼 흥건하게 젖은 이불이 펼쳐졌고 사람의 몸이 형체를 드러냈다. 클레어는 비명을 지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입을 막았다. 대니얼은 손이 떨려왔지만 사람의 상태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덮고 있는 이불을 마저 제쳤다. 20대 여성으로 보이는 시체는 목에 깊은 자창이 있었고 혈액이 아직 응고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대니얼은 제임스에게 내용을 보고했고, 경찰에도 신고했다. 살인사건이다.
대니얼은 아직도 손이 덜덜 떨려왔다. 펜을 들고 있는데도 손이 떨려오는 것을 눈치챘는지 옆에 앉은 윤서가 괜찮냐고 물어왔다.
"응. 괜찮아. 어제 밤새 과제를 하느라고 카페인을 너무 많이 먹었나 봐."
대니얼은 점점 더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대니얼은 퇴마단에 상환해야 할 월 100만 원을 벌기 위해 영어 과외교습을 시작했고, 윤서는 이번에 고등학교에 갓 올라간 학생이었다. 프린스턴 대학교 대니는 것으로 얘기하면 자신이 한국에 와 있는 것이 설명하기 더 어려울 것 같아서 학력은 서울대라고 밝혔다. 설정술을 사용하면 졸업증명서 같은 거 만들어내는 건 일도 아니다. 대니얼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윤서를 대할 때마다 속으로 약간의 미안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너를 속이고 있어'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과외수업을 시작한 것은 이제 1주일째이다. 과외수업을 하다가도 언제든 호출이 떨어지면 중단하고 바로 현장으로 뛰어가야 한다. 그러면 일자리는 잃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러면 다른 일자리를 다시 찾아야 한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기우일 수 있지만 그런 리스크는 분명 상존했다. 퇴마단이 자신에게 내린 징계 처분을 접하고서는 덤덤하게 받아들였던 대니얼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퇴마사와 돈벌이를 병행하다 보니 현실의 무게감이 크게 느껴졌다. 게다가 오늘 낮에는 두 눈으로 시체를 보았지 않은가. 적지 않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지만 추스를 틈도 없이 돈벌이를 해야 한다는 것에 무력감이 느껴졌다. 대니얼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
그런 대니얼을 윤서는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았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