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형제 Apr 28. 2024

심상치 않은 사건들

필드 OJT (4)

과외 수업을 마치고 대니얼은 학원으로 향했다. 소방학원에 등록한 이후 계속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퇴마사가 되는 순간 24시간 대기를 해야 한다는 규칙 같은 것이 부여된 이유도 있었지만, 1년간 갇혀 있었던 동안 익힌 설정술로 원하는 주거 환경을 만들어서 살아온 것이 익숙해지기도 했다. 루카스는 24시간 대기를 하더라도 학원이 아닌 자신의 공간에서 지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항상 제임스, 클레어와 갈등을 빚었다. 대니얼은 그런 루카스가 이해되지 않았다. 학원의 강의실은 내공의 효율을 조절해 주는 장치가 있기 때문에 레벨을 높게 설정할수록 쉽게 다양한 설정술을 사용할 수 있다. 덕분에 대니얼은 강의실에서 생활하는 동안 고급 호텔 같은 객실에서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생활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설정술을 사용하는 것은 내공의 소모가 크기 때문에 강의실에서만큼 자유자재로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끊임없이 실전을 통한 훈련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학원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지난번에 지하철역에서 EMP 폭탄을 사용했던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대니얼의 얼굴이나 인상착의가 전국에 수배가 내려진 상태였다. 그래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설정술을 사용해 자신의 얼굴 모습을 바꾸어야만 했다. 조금만 더 내공을 키운 다음에는 차를 운전하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치려던 순간 맞은편 좌석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아가씨, 이거 가방을 좀 치워달라고요!"


 "내가 왜 그래야 하죠? 내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싶지 않아요!"


 한 젊은 여성이 자신의 옆자리에 큼지막한 가방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 자리에 앉으려는 사람은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는데 양손에 짐을 들고 있었다. 저쯤 되는 나이의 아주머니들은 항상 빈자리에 대한 욕심이 많다지만 얌체처럼 가방을 좌석에 올려놓고 다른 사람이 앉지 못하게 하는 젊은 여성도 정상은 아닌 듯 보였다. 둘의 언쟁은 계속되었는데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이 고조되기 시작하자 주변의 승객들 중에는 슬그머니 휴대폰으로 촬영을 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지켜보다 못한 한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사람이 앉아야 할 자리에 짐을 올려놓고 가는 법이 어딨어요?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 주지 말고 가방 치워요. 얼른."


"지금 당신들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가방 올려놓으면 안 된다는 법 있어? 있으면 가져와바!"


누가 봐도 한참 어린 여성이 중년 남성을 향해 반말로 언성을 높이고 있다.


 "이런 Tiqkf. 너희들 우리 아빠가 경찰이거든? 너네 스토킹으로 다 잡아 처넣을 줄 알아!"


 막무가내다. 민폐다. 저런 인간들은 대체로 가정교육을 못 받았거나 디지털 매체에 지나치게 노출되었을 것이다. 저 정도 상태라면 조만간 더 큰 민폐를 줄 것이 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정법상 민폐를 주는 정도로 처벌을 하기에는 마땅한 법제도가 마련된 것이 없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대니얼은 한숨을 내쉰 후 조용히 젊은 여성을 향해 시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당하게 요금 내고 타는데 왜 나한테 wlfkf이야? 너희들이 도대.... 흡!!!"


 악다구니를 해대던 젊은 여자의 말이 중간에 끊겼다. 여자는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지만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입이 봉합되기라도 한 것처럼 입술을 전혀 떼지 못하고 있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눈이 벌겋게 충혈될 정도로 숨을 내뱉는 행동을 반복해서 했다. 비명을 지르려는 시도인 것 같아 보였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서는 어느새 두려움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으로 입술을 벌려보려고 하지만 입은 열리지 않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몸부림을 쳤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 열차 출입문 쪽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열차는 정차할 역에 도달하지 않아 계속 달리기만 하고 있었다. 그래도 젊은 여자는 열차 출입문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열차 문을 강제로 열려고 힘을 주어보았지만 열차 문은 열리지 않았다. 열차 내의 다른 승객들은 그 여자의 행동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정차역에 열차가 들어서고 열차의 문이 열리자 여성은 상처 입은 짐승이 사냥꾼에서 도망치듯이 다급한 몸놀림으로 열차에서 뛰쳐 내렸다.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그녀는 어디론가 달려갔다. 열차 출입문이 닫혔다. 대니얼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그녀가 자리에 올려두었던 가방을 들어 좌석 위 선번에 올렸다. 빈자리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나란히 앉았다. 



 "다녀왔습니다."


대니얼이 원장실 문을 열며 인사했다. 그런데 원장실의 분위기는 심상치가 않다. 제임스는 심각한 얼굴로 상황판의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고, 클레어는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은 채였다. 역시 그녀의 얼굴도 심각해 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터졌나요?"


 "음, 자네 왔는가? 일단 자네도 여기 앉아서 얘길 들어봐."


 대니얼을 의자에 앉게 하고는 제임스가 클레어를 툭 치면서 "계속해봐."라고 말했다.


 "어제 살해된 시체가 발견되기 직전에 표적주술의 주파수가 잡혔었다고 내가 말해줬던 거 기억나지?"


 클레어가 대니얼을 보며 물었다. 대니얼이 고개를 끄덕였다. 클레어는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아빠와 나도 둘 다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은 표적주술의 주파수와 같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었어."


 "송수신 시간이 지나치게 짧았다는 말이죠?"


 "응. 맞아. 그런데, 그런 패턴이 이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어. 최근 두 달 동안 여섯 번이나 있었어. 동대문구에서만 말이야.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하면 열한 번이고. 대부분 신호가 너무 짧아서 출동한 퇴마단 요원이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어. 표적을 확인할 수도 없었고, 빙의체로 보이는 사람도 없었지."


 "그런데, 2주 전 강서구에서 비슷한 신호가 발생한 직후에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 적이 있었어. 피해자나 살해 방법은 어제 사건과 판이하게 달랐지만 말이야."


 "그거, 혹시 정윤정 사건 아닌가요?"


정윤정은 자신을 중학생이라 속이고 영어 과외 선생을 구하는 것처럼 살해 대상을 물색했고, 거기에 걸려든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피해자를 무참히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하여 유기했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으며 퇴마단 조직에서는 정윤정 사건을 장기간 광역주술에 노출된 사람이 벌인 이상행동으로 판단했었다.


 "바보야. 정윤정 사건은 벌써 몇 달 전 일이라고. 게다가 정유정은 이미 체포되었잖아."


 클레어가 째려보며 말했다. 제임스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이게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보이지 않아. 무언가 블랙포스가 새로운 방법으로 일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그래서, 이 사건들을 파헤쳐봐야겠어."


 "어떻게요?"


 "그건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지."


 "저, 원장님. 우리는 탐정이나 형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괜히 사건 조사하다가 경찰이랑 마주치게 될 수도 있고요. 게다가 안 그래도 요새 광역주술 피해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일손도 부족하잖아요."


 "우리는 테러리스트도 아니지. 지하철에서 폭탄을 터뜨린 놈이 할 말이냐?"


한번 사고 치면 이렇게 매번 꼬리표가 따라붙은 법이다. 그래도 대니얼은 굴하지 않고 제임스에게 의견을 이야기했다.


 "자네한테 피해 가지 않게 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찬찬히 조사해 볼 생각이니까. 잘 봐."



제임스는 상황판의 지도를 턱으로 가리켰다. 붉은 점들이 서울 방방 곳곳에 분포되어 있었다. 


 "어차피 우리 동대문구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너희 둘로는 조사하기 어려워. 서울 지역을 커버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엇, 원장님은 최근에 6급으로 강등되셨잖아요."


 이렇게 말하며 대니얼은 제임스의 손등을 힐끔 보았다. 원래 있던 'V'라는 표식 옆에 'I'가 붙어 있었다. 


 "그렇지. 누구 덕분에 강등되셨지."


 클레어가 옆에서 또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이렇게 매번 상기시켜 줄 셈인가.


제임스는 씩 웃으며 대니얼의 어깨를 두 번 툭툭 쳤다. 


 "괜찮아. 융통성 있게 잘해봐야지. 그리고, 혹시 알아? 잘 해결하면 다시 복위될지."


이렇게 말하고 제임스는 상황판 지도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클레어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표정은 결연했다. 옆에서 이 두 부녀를 바라보는 대니얼의 마음엔 어딘가 모를 불안함이 밀려왔다.   




<다음 화에 계속>

이전 13화 시작부터 투잡이라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