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형제 Mar 24. 2024

회식

루카스 선배의 등장

허름한 고깃집에서 셋은 4인석 테이블에 앉았다. 대니얼의 옆자리는 비워둔 채였다.


 "사장님! 여기 소주 좀 주세요."


 이 식당 사장과 친분이 있는지 제임스는 소주를 들고 온 사장에게 이런저런 알은척을 했다. 식당 사장은 오십이 훨씬 넘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대니얼을 힐끔 보더니 제임스에게 묻는다.


 "못 보던 얼굴이네?"


 "응, 이번에 새로 들어온 우리 직원이야. 대니얼이라고."


 대니얼은 사장을 향해 고개를 꾸벅했다. 사장도 인사를 받으며 대꾸했다.


 "네, 반가워요. 응. 근데 영 기분이 안 좋으신가 보다."


 "신경 쓰지 마세요. 원래 쟤는 항상 저 표정이에요."


클레어가 끼어들었다. 근데 쟤라니, 어린것이 싸가지가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니다. 


 "저 친구가 낯을 좀 가려서 그래. 괴롭히지 말고 얼른 고기나 줘."


 "알았어."


떫떠름한 표정으로 사장이 주방으로 갔다. 곧 있으니 연탄불을 가져와 테이블 중간에 심어 넣고 석쇠를 올렸다. 고기를 올리니 허연 연기와 함께 익기 시작했다.


 "대니얼의 훈련 수료와 입단을 축하하며, 건배!!"


 제임스의 주도로 셋은 잔을 부딪쳤다. 목을 뒤로 꺾어 소주잔을 단숨에 들이켜고 '크으'하는 클레어의 리액션이 왠지 와일드해 보였다. 학원에서는 새침한 아가씨 같은 느낌이었는데 저런 모습도 있었나 싶어 대니얼은 혼자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설정술을 쓰면 될 텐데 왜 굳이 이렇게 여기까지 와서 고기를 먹는 거죠?" 

 

 모처럼 입을 대니얼의 질문에 제임스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자네를 축하해 주기 위해서지."


 "아빠, 그렇게 얘기하면 쟤가 못 알아듣지. 자, 내가 설명해 줄게. 잘 들어. 네가 있었던 그 강의실은 네가 설정술을 배우고 익히기 좋게 내공증폭기를 켜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자유자재로 설정을 변경할 수 있었던 거야. 한 마디로 너의 내공이 실제보다 많이 올라간 상태였다는 뜻이지. 그런데 우리가 실전을 해야 하는 곳은 강의실이 아니라 여기 바깥세상이란 말이야. 바깥세상에서는 너의 내공은 강의실에서의 십 분의 일도 안된다는 걸 알아야 해. 그러니까 네 실력으로는 고깃집 설정은 어림도 없어."


 대니얼의 얼굴에 대고 삿대질을 해가며 말하는 클레어가 왠지 거슬린 대니얼이 참다못해 물었다.


 "알겠어요. 그런데 왜 아까부터 삿대질에 반말이죠?"


 "야! 여기 조직은 계급 사회라고! 상급자가 하급자한테 반말하는 게 당연한 거야!"


 "상급자라면 나보다 실력이 뛰어난 가요?"


 "당연하지. 이래 봬도 내가 7급이라고. 이제 갓 훈련 수료한 10급이 어딜 기어오르려고 해?"


 "그럼, 보여주세요.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야야! 고기 탄다. 얼른 고기나 먹어!"


 제임스가 성가신듯한 말투로 둘을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한번 자극받은 클레어는 그냥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 결국 식당 안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범위 내에서 실력차이를 겨루어보기로 했다. 먼저 대니얼에게 물컵에 담긴 것을 사이다로 바꾸어보라고 했다. 대니얼이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물이든 유리컵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컵 안의 물이 탄산수의 기포를 만들어냈다. 이것을 본 제임스와 클레어는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클레어가 확인을 위해 마셔보더니 웃음을 머금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실패네. 10급 막내 놈아."


 "그럴 리가."


 대니얼이 잔을 들어 마셔보았다. 톡 쏘는 탄산이 들어있긴 했으나 그냥 탄산수였다. 사이다는 아니었다. 대니얼은 충격을 받았다. 잔을 향해 내공을 뿜으며 강한 암시를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완성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충격받은 얼굴을 하고 있는 대니얼에게 클레어는 검지 손가락을 들어 가로저었다.


 "잘 봐."


 클레어가 자신의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마시고 내려놓았더니 콜라로 바뀌어 있었다. 이번엔 소주가 담긴 소주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방금 클레어의 입으로 소주를 부어 넣었는데도 소주잔의 소주는 그대로였다. 젓가락을 들어 접시에 담긴 김치를 한 조각 들어 올렸다. 그것을 연탄불 위의 석쇠에 올려놓았다. 어느새 김치는 고기로 변해 있었다.



 "등급이 높다는 건 경험이 많다는 것이고, 경험이 많을수록 내공을 키울 기회가 많았다는 거야. 알겠냐, 신입?"


 "자네처럼 신입은 처음엔 복장 정도 스스로 바꾸는 것만 해도 잘하는 거야."


 "원장님은 몇 급이세요?"


 "난 5급이지."


 "5급이면 지부에 계실 수준이 아니신 거잖아요."


 "뭐, 그럴 사정이 있기도 했고. 내가 원해서 동대문지부에 있겠다고 한 것도 있고."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쯤 클레어가 손을 들어 소주를 한 병 더 주문했다. 그때 '드르륵'하고 새시 문이 열리며 누군가 식당으로 들어섰다. 제임스가 그를 향해 손짓했다. 대니얼이 등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대니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다. 나이가 못해도 70은 되어 보인다. 그런데, 아웃도어 브랜드로 몸을 휘감았다고 해야 하나. 등산용 모자, 등산용 배낭, 등산화, 점퍼와 바지까지. 과한 컬러에 보는 눈이 불편해졌다. 



 "루카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아니, 오늘 등산모임이 있는 날이잖아. 산에 있다가 연락받고 급하게 내려온 거야. 급하게 내려왔더니 무릎이 다 시큰거리네. 아, 갑자기 이렇게 회식을 잡으면 어떡해?"


 루카스는 제임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배낭을 내려놓으며 대니얼 옆의 빈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여기 우리 신입. 오늘 훈련 수료했거든요."


 제임스가 대니얼을 인사시켰다. 대니얼은 루카스를 향해 고개를 꾸벅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오! 반가워요. 반가워. 나는 루카스. 8급이에요. 축하하고 또 환영합니다. 하하하!!! 건배하자구!!"


 제임스가 말한 대로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크며 액션이 과하다. 대니얼이 딱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잔을 들어 올려 부딪치고 호쾌하게 술을 들이켜는 루카스를 보며 대니얼은 어디에서 보았을까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 표정을 마주 앉은 클레어가 눈치챘는지 입을 열었다.


 "너 루카스 얼굴 정말 생각 안 나? 너 처음에 학원에 왔을 때 나랑 카운터에서 티격태격하고 있던 할아버지잖아."


 "아!"


 외마디 소리와 함께 대니얼의 머리에 그때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는 환불을 해달라면서 실랑이하고 계셨던 것 같던데, 그만둔 거 아니셨어요?"


 "맞아. 지금까지 한 열네 번 정도 그만두셨었지, 아마."


 클레어가 이렇게 말하자 루카스는 부끄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다음날 와서 잘못했다고 다시 받아달라고 그럴 거면서 왜 맨날 그만두겠다면서 그 난리를 치는지 몰라."


 "아, 이거 신입 앞에서 면 안서게시리.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술이나 마셔."


루카스의 당황한 이 한마디에 제임스가 크게 웃었다. 그렇게 넷은 밤 열한 시가 될 때까지 소주잔을 기울였다. 자리를 파하고 헤어지려고 하는데 루카스가 대니얼을 붙잡으며 한 잔만 더 하자고 졸랐다. 나이 지긋한 선배에게 첫날부터 티 내며 거리를 두고 싶지는 않아서 대니얼도 거절하지 못하고 끌려갔다. 


 "루카스, 내일 그 친구 본부에 등록하러 가야 하니까 너무 많이 먹이진 마세요."


 "응. 알지. 알았다고.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 최원장."


 걱정스러운 눈빛의 제임스를 향해 루카스는 혀가 풀린 발음으로 대답했다. 이미 걸음걸이도 비틀거리고 있었다. 대니얼은 앞날이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