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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형제 Mar 17. 2024

훈련 수료

드디어 석방인가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니얼은 알람 소리와 함께 눈을 떠 똑같은 일과를 반복했다. 아침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오후엔 명상을 했다. 저녁이 되어 일과의 마지막으로 리포그램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Moog의 'Tunnel Run'이라는 곡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때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는 대니얼의 뒤편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흠칫 놀란 대니얼은 뒤를 돌아보았다. 들려오던 음악도 멈췄다.ㅁ


 "오랜만이네. 지낼만했나?"


제임스가 서재 문 옆 책장 쪽에 서있었다. 대니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임스를 쳐다보기만 했다. 제임스는 발걸음을 옮겨 대니얼 쪽으로 다가오며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들어 올렸다. 괴테의 '파우스트'이다. 


 "이제 밖으로 나가도 되겠어."


제임스가 이렇게 이야기하자 방금 전까지 서재였던 공간이 강의실로 바뀌어 있었다. 대니얼이 약 1년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하러 들어와 앉았던 그 강의실이었다. 대니얼은 아무런 말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강의실 문쪽으로 향해 걸었다.


 "아무리 그렇게 오래 갇혀 있었다고 해도, 막상 그냥 나가려니 아쉽지 않나? 선생님이 종례를 마쳐야 끝이 나는 법인데 말이야."


 "선생?!!! 누가? 당신이? 도대체 뭘 가르쳐줬는데?!!! 다짜고짜 가둬두기만 했잖아!!!"


 눈 깜짝할 사이 제임스의 코앞까지 날아온 대니얼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제임스는 대니얼의 대시에 일순간 당황한 듯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제임스의 발뒤꿈치 아래는 낭떠러지로 변해 있었다. 세찬 바람마저 불어오고 있었지만 대니얼의 부릅뜬 눈은 제임스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훗' 코웃음을 지으며 제임스는 낭떠러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대니얼의 몸은 어느샌가 차가운 강물 속에 있었다. 강물 표면이 얼음으로 뒤덮인 채 대니얼의 몸은 계속 떠내려가고 있었다. 숨을 참기가 점점 어려워져 코와 입으로 차가운 물이 들어왔다. 양 주먹으로 얼음을 두들겨 보았지만 끄떡도 하지 않는다. 점차 의식이 희미해졌다. 


그때 갑자기 주변이 바뀌며 따뜻한 해변 모래사장이 나타났다. 대니얼은 숨을 몰아쉬며 모래 위에 엎드려져 있다. 제임스가 다가와 벌겋게 달구어진 인두를 대니얼의 왼손 손등에 지졌다.

 

 "아아악!!!"


 대니얼은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제임스는 손에 들고 있던 인두를 내던졌다. 인두는 'X'라는 글자 모양이었다. 


 "일어나. 이제 자네는 퇴마단의 일원이 된 거야. 퇴마단은 철저한 계급사회니까 상급자한테 까불지 말고."


 제임스는 이렇게 말하며 모래밭을 나뒹구는 대니얼을 구둣발로 툭툭 건드렸다. 대니얼은 방금 인두로 지져졌던 왼손등을 보았다.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는 통증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눈에는 어떤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문질러보았다. 선명하게 'X'라는 표식이 나타났지만 이내 사라져 버렸다. 신기하게도 통증은 금방 사라졌다. 몸을 일으켜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제임스의 머리 위에 흰색 불꽃이 보였다. 그리고 손등에는 'V'라는 표시가 있었다.


 "따라오게."


 제임스가 몸을 돌려 걸어갔다. 어느새 주변은 아까의 그 강의실이었다. 대니얼은 그를 따라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원장실로 제임스를 따라 함께 들어간 대니얼은 갑자기 창문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한가득 쏟아지는 햇살과 바람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밖은 이미 밤이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원장실에서 대니얼은 제임스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간의 훈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손등에 지진 인두는 주술이 걸려 있는 것으로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머리 위에 흰 불꽃은 퇴마단의 일원임을 나타내고 손등의 표식은 계급이다. 퇴마사는 내공을 키우기 위해 콩을 먹지 말아야 한단다. 설정술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순서도 뒤죽박죽에 두서없는 듯 설명하였지만 제임스는 어느새 친절하고 푸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궁금한 점은 없나?"


 제임스의 물음에 대니얼은 그저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 어색한 웃음을 웃은 제임스 원장은 대니얼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이것으로 수료식은 마치고!!! 회식하러 가자"


 "예?"


 눈이 휘둥그레진 대니얼을 데리고 원장실을 나와 복도를 걸어 내려왔다. 그러면서 클레어를 향해 말했다.


 "딸!! 복이네 식당 전화해서 자리 좀 잡아라! 4명! 오래간만에 회식 좀 하자."


 "알았어. 근데 왜 4명이야?"


 클레어가 이렇게 되물을 때 원장실에서 걸어 나온 둘은 클레어 앞 카운터에 다다랐다. 클레어는 대니얼을 보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금세 표정을 다잡고 말했다.


 "용케 잘 버티고 나왔네? 축하해. 하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한 거 알지? 지금처럼 선배한테 눈깔 부라리면 혼날 줄 알아, 알겠어?"


 클레어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대니얼을 제임스가 흔들어 어깨에 손을 얹고 데리고 나왔다. 이어 클레어가 전화를 거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전화를 한쪽 어깨에 끼고 통화를 하며 학원 문을 잠갔다. 슬리퍼를 딱딱 거리며 끌고 두 사람의 뒤를 쫓아 달려왔다.


 "아빠! 루카스는 어떻게 해?"


 "당연히 오라고 해야지."


 "그런데, 루카스는 그만둔 거 아니었어?"


 "그 양반이 그만둔다고 난리 친 게 어디 한 두 번이냐? 회식이라고 하면 득달같이 달려올 거다."


 "응. 알았어. 그럼 오라고 연락할게."


 제임스는 기분이 좋은 듯 대니얼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길을 걸으며 쉬지 않고 말을 해댔다. 동대문지부의 과거 활약상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는데 지나가는 젊은 여자들을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느라 이야기가 자주 끊겼다. 대니얼은 제임스에 이끌려 회식 장소로 가는 동안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조그만 검은 공이 하나씩 떠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탁구공 크기,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 공 같은 것이 정수리 위에 둥둥 떠있는 것이다. 



 "응. 저거? 저 검은색 공이 클수록 빙의될 확률이 높은 거야. 저 검은 공 크기가 클수록 블랙 포스 애들이 쉽게 알아챌 수 있어서 표적 주술을 걸기가 좋아지는 거지. 그런데 꼭 표적 주술이 아니더라도 일단 크기가 주먹만 해지면 이상행동 단계로 언제 넘어가게 될지 몰라. 요샌 표적 주술보다도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이상행동 빙의체들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파."


 "이상행동이요?"


 "응, 클레어가 오리엔테이션에서 설명 안 해줬어?"


 "네, 그런 얘기는 없었어요."


 제임스는 뒤따라오고 있던 클레어를 돌아보고 소리쳤다.


 "이것아! 오리엔테이션에서 자세히 좀 설명해 줬어야지! 뭘 시켜도 그렇게 건성으로 하면 어떡하냐?"


 "아, 몰라."


 클레어는 문자메시지를 입력하느라 손에 든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은 채 아빠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대니얼이 보니 클레어의 손등엔 'VII'이라는 표시가 보였다. 7급이라는 뜻이다. 'X'를 받은 대니얼은 10급, 'V'인 제임스는 5급이라는 뜻이네.


 "아빠, 루카스가 오긴 올 건데 좀 늦는대."


 "왜?"


 "몰라. 또 병원 갔다가 오겠지."


 "저... 그런데..."


 대니얼이 갑자기 입을 열자 두 사람의 시선이 대니얼에게 집중되었다.


 "루카스라는 분은 누구예요?"


 "응, 만나보면 알아. 자네 선배인데, 하긴 이제 들어온 신입이니까 다 자네보다 선배들밖에 없겠구먼. 허허허. 여하튼 루카스는..."


 "아빠!"


 루카스에 대해 설명하려는 제임스의 말을 가로막듯 클레어가 제임스를 불렀다. 제임스를 바라보는 클레어의 눈빛에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루카스는 말이야.... 만나보면 알아. 말이 참 많아."


 너도 말이 너무 많거든? 이렇게 제임스는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잠자코 제임스가 이끄는 대로 회식장소로 따라가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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