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형제 Mar 03. 2024

사람이 난폭해지는 과정

휴대폰 과다사용자를 향한 표적주술, 그리고 빙의

그녀는 불을 끄고 침대 위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휴대폰을 손에 든 채 OTT 신작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다. 유명 여배우가 정신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각양각색의 정신질환 환자들의 이야기와 병동에서 이들을 마주하게 되는 의료진의 이야기가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예전부터 로맨스물에 자주 출연했던 여배우에 대한 익숙함과, 인기 웹툰을 드라마화한 작품이라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해 시청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마음의 병이 생기게 된 사연이 나오는 부분이나, 병원 의료진의 고충 같은 것들이 묘사될 때는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하며 보게 되었다. 그녀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에 공감할 포인트가 많이 있다고 생각하며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시청하는 OTT 드라마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몇 개의 OTT 드라마, TV 드라마를 보고 있으며 자주 시청하는 유튜브 채널도 수십 개 있다.



그녀의 직장생활은 지루하고 재미없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동안만큼은 아무런 부정적인 생각 없이 힐링되는 느낌을 받는다. 퇴근하고 회사를 나서면서부터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가로로 기울인다. 퇴근하는 길은 1시간 정도 걸리지만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내려 길을 걷는 중에도 시선은 휴대폰에 고정되어 있다. 매일 출퇴근하는 길이라 눈 감고도 다닐 수 있다고 자부했다. 집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혼자 해결하고 귀가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 식사를 하면서도 눈은 항상 휴대폰에 향해 있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불이 꺼져 컴컴한 거실이 그녀를 맞이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혼자 생활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째가 다 되어 간다. 등뒤로 현관문이 닫힘과 동시에 하루 동안의 피로감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렇게 잠이 들 때까지 원 없이 원하는 드라마를 시청하고 TV 예능 다시 보기를 이어간다.

알람 소리를 듣고 깨면 가장 먼저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밤새 온 메시지는 없는지 등등 확인하고 이내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한다. 화장실의 변기 앞, 욕실의 세면대 앞에는 휴대폰 거치대가 놓여 있어서 양손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영상을 볼 수 있다.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고 옷을 입을 때에도 영상 시청에 집중할 수 있다. 출근하는 길은 많이 붐비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지만 그녀는 꽤 익숙하다. 한 손으로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휴대폰을 들고도 만원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는다. 출근길에는 길게 집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숏폼 영상을 시청한다. 인스타에도 들어가 친구들의 스토리에 좋아요를 남기고, 릴스 영상을 보느라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시선은 휴대폰에 고정되어 있다.


출근 후 일상은 지루하고 재미없다. 영상 속에서 느낄 수 있던 재미와 웃음, 힐링 같은 것들은 현실에 없다.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암울한 시간들만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 대가로 월급을 받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은 그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월급은 만족스럽지 않고 회사의 요구는 성가시기만 하다. 그렇기에 회사에 대한 애착 같은 것은 없다. 한 가지 그녀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갈수록 신경이 예민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웃어넘길 수 있는 일들도 요새는 그녀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질 정도로 변한다. 다른 사람의 사소한 실수 같은 적은 그냥 넘어 기가도 할 정도로 상식적인 그녀였지만 이제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어깨를 밀치는 사람에게도 눈을 흘겼다. 급기야는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점점 까칠한 인물로 인식되어 갔고 그러는 사이 몇 년간 사귀었던 남자친구와도 다툼이 잦아져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은 직장 스트레스가 심한 것 아닐까 생각했지만 차마 그녀에게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남자친구도, 회사 사람들도 전부 자신에게 트집을 잡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갈등의 원인은 항상 '내'가 아닌 '남'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몇 달 후 그녀는 자신의 빌라 위집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것 보세요. 잠깐 나와 보세요!"


무자비하게 현관문을 두드리며 소리 지르는 바람에 놀란 남자가 현관문을 반쯤 열고 안에 서서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저 아래층에 사는 사람인데요. 지금 몇 시인줄 아세요? 이렇게 늦은 밤에 쿵쾅거리고 시끄럽게 하시면 어떡해요?"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일 없고요. 지금 자다가 그쪽이 문 두드려서 나온 거거든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내가 아래층에서 얼마나 시끄러웠으면 이 시간에 이렇게 올라왔겠어요?"


 "저는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쿵쾅거리고 시끄럽게 한 적 없습니다."


 "그럼, 내가 있지도 않은 일로 시비 걸러 왔다는 거예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괜히 와서 난리를 치니까 그렇죠. 여하튼 난 아니니까 상관 말고 가세요."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 현관문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잽싸게 앞으로 다가서며 문틈에 발을 끼워 넣고 손으로 현관문을 붙잡았다.

 

 "어딜 그냥 들어가려고 해? 당장 사과해!!!"


 "아니, 이 여자가 미쳤나..."


 "당장 사과해!!!!!!"


 목청 터져라 소리치는 그녀의 목소리가 새벽 1시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같은 빌라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인근에 사는 주민들에게도 다 들렸을 것이다. 옆 건물 주민인가 싶은 사람이 불을 켜고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남자는 문을 닫으려던 힘을 빼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녀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눈빛은 사람의 눈빛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글이글 불타 오르고 있었다. 섬뜩함을 느낀 남자는 그녀를 밀쳐내고 재빠르게 현관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자 그녀는 현관문을 두드리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이 개새끼야!!!! 당장 나와!!! 당장 나와서 사과해!!!"


그렇게 몇 분인가를 목이 터져라 악다구니를 하던 그녀는 몸을 돌려 자신의 집을 향해 계단을 내려왔다. 씩씩거리며 집으로 들어선 그녀는 다용도실로 들어가 스프레이형 살충제 한 통을 들고, 주방 서랍을 뒤져 가스라이터 하나를 찾아냈다. 그녀는 그 남자의 집 현관문에 스프레이형 살충제를 흠뻑 뿌린 다음 거기에 불을 붙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개자식 어딜 감히 나를 속이라고? 죽여 버리겠어."


 이렇게 혼잣말을 되뇌며 살해 준비물을 손에 들고 다시 현관문을 나서려는 순간 갑자기 그녀의 몸이 멈췄다. 양손에 스프레이형 살충제와 가스라이터를 들고 집을 채 나서기도 전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고 신발장 옆에 서있더니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자 그녀의 집 현관문 도어록이 열렸다. 그리고는 현관문이 스르륵 열렸다. 거기엔 클레어가 서있었다.


 "Into the light, I commend thee! (명하노니, 빛으로 나오라!)"


 클레어가 말하자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의 눈빛에 공허함이 가득했다. 정수리 위에 검은 불꽃이 주먹만 한 크기로 타오르고 있었다. 공허한 눈빛으로 클레어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 여자를 살리고 싶거든 대답하라.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영화는 무엇이냐?"


 이것은 스핑크스 신화와도 같은 상황이다. 신화 속 반인반수 스핑크스는 길을 걷는 나그네에게 수수께끼를 내어 정답을 맞히지 못하면 잡아먹었다고 한다. 클레어는 눈을 감고 양 손바닥을 모아 가슴 중앙으로 가져갔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가장 재미있는 영화라니, 너무 주관적이잖아. 하긴 원래 텔레퀴즈는 항상 주관적인 질문과 답변이 가능하지. 난 최근에 본 '파묘'가 재미있던데. 아냐. 그런 재미있는 것 말고 웃기는 류의 코미디를 답해야 하는 건가. 웃기는 영화라면 좀 오래되긴 했지만 '데드풀'이 웃기긴 했지. 잠깐, 로맨틱 코미디를 빼놓을 순 없어. '러브 하드' 너무 재밌잖아. 그렇지. 그런데, 이건 텔레퀴즈야. 저 녀석의 허를 찔러야만 해, 허를.'


 몇 초가 지났을까. 클레어가 눈을 떴다. 그리고 말했다. 세상 발랄한 표정과 목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영화는 말이지, 바로 네가 안 본 영화야. 생각해 봐. 영화관에 가서 팝콘과 콜라를 사고 자리에 앉아서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가장 기대되는 순간이지.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알아? 그런 개념인 거야.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재미있는 영화이거나 혹은 재미없는 영화 둘 중 하나로 귀결하게 되지. 하지만 영화를 보기 직전에는 재미있는 영화라는 사실과 재미없는 영화라는 사실이 중첩된 상태로 동시에 존재하게 되지.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직전엔 그 영화가 네가 본 영화 중에 가장 재미있는 영화일 수 있는 상태가 존재하게 되는 거야. 언더스텐?"


 설명을 들은 그녀, 아니 표적주술의 빙의체는 당황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양자... 역학..이라고? 음... 슈뢰 고양이... 알지!!! 그럼! 오케이! 꽤 참신한 답변으로 인정!!!"


 이렇게 말하더니 휙하는 바람이 일순간 불어왔다. 어느새 정수리 위에 있던 검은 불꽃도 사라지고 그녀의 눈빛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는 클레어를 보며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클레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손에서 가스라이터를 빼들고는 말했다.



 "소음 신고로 충동한 경찰입니다. 말씀하신 사항은 다 해결되었어요."


 "아, 그래요? 죄송해요. 사실 경찰까지 오실 일은 아니었는데, 일이 커졌네요."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클레어는 진짜 경찰처럼 거수경례를 했다. 클레어의 마법으로 그녀에게 당분간은 경찰관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녀의 집 현관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 클레어는 계단으로 내려왔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응, 아빠."


 '딸, 잘 해결했어?'


 "응. 그럼. 별거 아니었어."


 '그래, 수고했다. 오는 길에 말이야...'


 거기까지 들은 클레어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들어오는 길에 담배를 사 와달라는 아빠의 심부름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성가시기도 했고 아빠가 이제는 그만 담배를 끊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다시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한숨을 내쉰 클레어는 수신전화 거절 버튼을 눌렀다.


 "으이그, 지겨워 정말!"




<다음 화에 계속>

이전 05화 퇴마단 한국지국 대책회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