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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형제 Feb 25. 2024

퇴마단 한국지국 대책회의

이상행동 살인범 발생 예방책

 '저벅저벅'


 골목길에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골목길 끝에는 오늘의 목적지인 빌라 건물이 보였다. 교복 차림에 가방을 멘 그녀는 빌라 앞에 도착하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냈다.


 '빌라 앞에 도착했어요.'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자 곧 '띠링'하고 상대에게서 답이 왔다.


 '402호예요.'


 상대방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그녀는 안경을 콧등 위로 한 번 밀어 올리고는 빌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402호 문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안에서 "잠시만요"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현관문이 열렸다. 단아한 인상의 하얀 피부의 여성이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그녀가 현관에 들어서고 문이 닫혔다.


 며칠 후, 402호 빌라를 방문했던 그녀의 얼굴이 TV 뉴스에 보도되었다. 사람들이 전해 들은 뉴스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자신을 중학생으로 속이고 영어 과외교사를 구한다면서 피해자를 물색했다고 했다. 범행 당시 교복을 입고 피해자의 빌라를 방문했으며 가방 안에 준비해 간 흉기를 휘둘러 피해자를 살해한 후 사체를 훼손하여 유기했다. 사체 처리 과정에서 준비한 흉기로는 충분치 않자 피해자의 옷으로 갈아입고 인근 마트 등에서 사체 훼손과 유기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여 다시 살해 현장으로 돌아오는 기이한 동선이 CCTV에 잡혔다. 명확한 살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범인은 외부와 접촉을 차단하다시피 은둔하여 살아왔으며 범행이 있기 세 달 전부터 범행을 준비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피의자의 휴대전화 사용 기록에는 친구나 지인 등과 연락을 주고받은 기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취업에도 번번이 실패하였습니다. 피의자 정윤정은 자신의 취업 실패 등의 원인이 영어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고, 자신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타깃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습...'


 남자는 TV 전원을 꺼버리고 리모컨을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툭 던져 버렸다. 회의실의 가운데 가장 상석에 앉은 이 남자의 이름은 리처드. 40대 중반의 건방지고 날카로운 인상을 가졌다. 양 옆으로 각 두 명씩 앉아 있는데 모두들 표정이 심각하다. 국내 퇴마단의 4개 지역본부를 맡고 있는 본부장들이다. 그중 나이가 많고 두꺼운 안경을 쓴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니콜라스. 2급 소방수로 현역에서 활동해 왔으며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나 영남 지역본부장을 맡고 있다.


 "국장님, 블랙 포스의 주술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만 봐도 그렇습니다. 표적 주술도 아닌 광역 주술만으로 이렇게 반사회적 행동을 보인 전례는 최근까지 없었습니다."


 "그걸 누가 모릅니까? 심각하니까 원인을 찾고 대책을 마련하자고 모인 것 아닙니까?"


 안경 쓴 중년 남자의 맞은편에 앉은 여성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끊고 들어왔다. 30대 초반으로 보이지만 눈빛에서 중년 남자를 압도했다. 예쁜 외모는 아니었지만 도회적이고 이지적인 느낌이다. 줄리아. 그녀는 수도권 지역본부장이다.  


 최근의 빌라 살인사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학창 시절부터 존재감이 없었다는 둥, 사이코패스라는 둥 살인범 정윤정에 대한 갖가지 설들이 난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퇴마단은 정윤정이 이상 행동을 보인 것과 블랙포스의 주술 사이에 모종의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몇 년 전부터 블랙포스의 광역주술에 장시간 집중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이 극단적인 반사회성을 보인 것이다. 휴대폰, PC, TV를 이용한 영상 시청 시간이 일반인들의 평균치를 몇 배나 상회하는 이들은 심한 감정 기복, 높은 충동성, 사회부적응, 소통부재, 낮은 자존감, 쉽게 무언가에 중독되는 증상을 공통적으로 보였다. 퇴마단 내에서도 이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일찍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효과적인 대응책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서울의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부터였다. 당시 살인범 김성만은 어릴 적부터 사람들과 소통하길 꺼려한 채 휴대폰 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왔으며, 그러다가 심각한 조현병, 망상장애를 얻게 되었다고 알려졌다.


 니콜라스는 여전히 억울한 표정으로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줄리아는 상석에 앉은 리처드를 향해 고개를 돌려 말을 이었다.


 "국장님, 솔직히 몇 년 전부터 저희 본부에서 계속 원인으로 제기해 왔었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대비책 없이 넋 놓고 있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닙니까. 그러니 지금에라도 EMP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건 안된다고 했잖나. 다른 대책을 강구해 봐."


 "국장님! 지금 사태가 계속 이렇게 심각해지고 있는데 우리는 블랙포스 주술의 근원지도 못 찾고 있습니다. 이대로 계속 두었다가는 어떤 변종이 발생할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이 주술을 태워 보내는 디지털 기기를 못쓰게 하자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어디 있습니까?"


 EMP(Electromagnetic Pulse)란 전자기 펄스, 전자기파라고 하는 것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강력한 전자기파로 전자기기의 회로를 파괴하는 것을 말한다. 대규모 코일을 만들어 전기를 흐르게 한 뒤 폭파시키면 폭발로 인해 전자가 공기 중으로 빠르고 급격하게 퍼져 나가게 되는데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쓰나미와도 같다. 이 쓰나미가 쓸고 지나가면 모든 전자기기들의 회로가 다 타버리는 식으로 파괴된다. 블랙포스의 광역 주술이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되지 못하도록 디지털 기기들을 파괴하자는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사용할 경우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영상 미디어 기기들 뿐만 아니라 자동차, 항공기, 의료기기, 보안장비 등 필요한 장비들까지 일순간 못쓰게 되어버리고 만다. 게다가 이런 무기를 사용하게 되면 정부에서 테러단체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퇴마단의 실체를 파헤치게 될 우려마저 있다.



 "그걸 사용했다가 발생되는 부작용은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 대책은 가지고 있는 거야? 다짜고짜 쓰고 보겠다는 식으로는 누군들 얘기 못하겠어? 엉?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고 해도 그렇지 자폭하겠다는 얘기랑 뭐가 달라?"


 줄리아는 리처드의 질책에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항상 강한 신념을 가진 행동파였다. 임무에 임할 때는 저돌적으로 한 가지 목표에만 집중해 왔다. 그런 덕분에 퇴마단 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본부장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국내 지역본부 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큰 수도권 본부를 맡은 것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진취적인지 알 수 있다.


 "그 EMP라는 것 말인데요. 그걸 소형화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효과 범위를 한 50미터 내외로 할 수 있다면 위급할 때 임시방편으로라도 써볼 수 있지 않을까요?"


 왼쪽 구석에서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던 한 남자가 목소리를 냈다. 호남지역 본부장 테드였다. 회의실 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소형화해서 사용하는 것은 생각해 볼 수 있겠으나, 그렇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EMP를 사용하게 되면 다량의 전자기파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 전자기파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우리 퇴마사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도..."


 강원충청지역 본부장 로이. 호기롭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지만 리처드가 도중에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가로막았다.


 "그런 문제라면 됐고! 테드가 그 EMP 소형화 작업 추진하시는 것으로 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테스트해서 퇴마단에 보급합시다! 다음 주까지 테드 본부장은 진행상황 보고해 주세요."


 리처드 국장은 의사결정이 빠르고 단호하다. 하지만 정확한 판단을 요하는 순간에 크고 작은 실수를 범한 과거가 있어서 그런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본부장들을 모두 불러 모아 의견을 듣고 결정한다. 대신 귀가 얇아 남의 말에 잘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


 "이것으로 회의를 마칩시다."


 리처드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줄리아."


 막 회의실 문을 나서려고 하는 줄리아를 리처드가 불러 세웠다. 리처드가 손짓을 보내자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고 돌아서 여전히 테이블 상석의 의자에 앉아 있는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옆에 다가온 줄리아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아 안은 후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히며 물었다.


 "화났어?"


 "몰라요."


  뾰로통한 표정을 한 채 먼 곳을 쳐다보며 줄리아가 대답했다. 리처드는 한 손으로 줄리아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말했잖아. 회의할 때는 냉정해지자고."


 "그래도 제 의견을 그렇게 무참히 밟으실 필요까진 없었죠."


 "내가 좀 세게 말했나? 그럼 미안해. 그걸 그렇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되질 않네요."


 "그럼 어떻게 하면 마음을 풀어줄 거야? 뭐든 말해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뭐든."


 "..."


 "괜찮다니까. 뭐든 말해봐."


 "한 가지 있긴 한데, 정말로 말해도 돼요?"


 이렇게 물으며 줄리아는 리처드를 향해 얼굴을 돌려 마주 보았다. 뾰로통했던 표정이 어느새 풀어져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했다.


 "그럼. 내가 자기한테 보상하고 싶어서 그래."


 "그렇다면..."


 줄리아는 몸을 숙여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무언가를 말했다. 커다란 회의실에 둘만 있었기 때문에 굳이 귀속말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줄리아의 말이 끝나가 리처드는 놀라듯 고개를 뒤로 젖히며 눈을 크게 떴다.


 "왜요? 안 돼요?"


 줄리아는 양손으로 그의 볼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마이클의 눈이 당황한 것 같아 보였다.


 "아니야. 뭐 어려운 일도 아닌걸."


 "정말요? 고마워요."


 이렇게 말하며 줄리아는 리처드의 목을 끌어안았다.



 몇 달 후, 답십리 소방학원. 숨을 헐떡거리며 학원 문을 열고 들어온 제임스의 손에는 택배상자가 들려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5층까지 오느라 계단을 올라왔던 것이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자동으로 '딩동'하는 소리가 들러왔다.


 "아화야?"


 양치질을 하며 탕비실에서 클레어가 소리쳤다.


 "헉헉헉, 엉, 이... 이거, 택배 왔더라, 헉헉, 열어봐라."


 "어라고?"


 여전히 밖을 내다보지 않은 채 양치질을 하며 소리쳤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제임스는 재차 말할 기분이 아니었는지 탕비실로 가서 딸에게 택배 상자를 내밀었다.


 제임스가 원장실에 들어와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을 때, 원장실 문이 갑자기 벌컥 하고 열렸다. 제임스는 깜짝 놀라 의자에서 미끄러졌다.


 "아빠!!"


 "야, 간 떨어질 뻔했잖아. 노크 좀 하라고 노크 좀!!!"


 "아빠, 이거 봐. 퇴마단에서 보내온 것 같은데 신기하게 생겼어!"


 아빠와 딸은 주먹 만한 크기에 구리 코일이 칭칭 감겨있는 이상한 물체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아빠의 지시로 클레어는 택배 상자에 동봉되어 있던 QR코드를 촬영하여 퇴마단 대한민국지회 모바일 웹사이트로 접속하였다. 공지 게시판에 나와있는 설명을 아빠에게 읽어주었다. 괴상하게 생긴 이 물건의 정체가 소형화된 EMP탄이며 최근의 변종 광역 주술 피해자들이 이상행동이 잦아져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거 엄청난 물건이다 야. 함부로 만지지 말고 잘 보관해 둬라. 나중에 출동할 때 가지고 가보자."


 "응, 알았어."


 클레어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휴대폰으로 퇴마단 웹사이트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공지 게시글 중에 '강원충청지역 본부장 인사발령'이라는 제목을 눌러보았다. 강원충청지역 본부장이었던 로이가 해임되고 그 자리에 줄리아가 새롭게 선임되었다. 줄리아는 수도권지역본부와 강원충청지역본부를 둘 다 맡게 된 것이다. 이로써 줄리아는 퇴마단 한국지회 내에서 막강한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었다.


 "그나저나, 대니얼 그 녀석은 잘하고 있더냐?"


 "뭐, 그럭저럭."


 제임스는 딸이 들여다보고 있는 휴대폰을 낚아채었다.


 "야, 아빠가 물어보면 성의 있게 대답을 제대로 해야지."


 "아, 그렇게 궁금하면 아빠가 들여다보면 되잖아!"


 휴대폰을 빼앗긴 클레어는 이렇게 소리치며 아빠 손에 있는 휴대폰을 다시 되찾아갔다.


 "이것이 진짜!!! 확 그냥 혼나볼래?"


 "응. 맘대로 해봐."


 "이게 정말!!!"


  답십리의 한 허름한 건물 5층에서는 아빠와 딸의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대니얼이 들어가 있는 1번 강의실 문틈으로 번쩍번쩍하는 불빛이 새어나왔다. 대니얼이 1번 강의실에 감금된 지 약 4개월이 되어가고 있었다. 대니얼이 없는 바깥 세상은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기웃기웃 해가 저물어간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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