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게 걸렸다
대니얼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1년 동안 못 나간다고요?"
"네, 그래요. 이 방 안에서 1년간 공부하고 훈련하고 생활하게 되실 거예요."
"아니, 화장실이랑 샤워, 밥 같은 건 어떻게 해결하죠, 그럼?
"차차 알게 되실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인지..."
하아, 하고 한 숨을 한 번 내쉰 클레어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 방에 처음 들어오셨을 때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텐데요."
"네, 강의실인 줄 알았는데 거실처럼 바뀌었다가 지금은 회의실로 바뀌었네요."
"그렇죠. 지금은요?"
대니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방은 사우나로 바뀌어 있었다. 뽀얗게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습한 열기가 훅훅 볼에 다가왔다. 깜짝 놀란 대니얼은 클레어를 쳐다보고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죠?"
"이걸 배우는 것도 한 과정입니다."
얼빠진 얼굴로 입을 벌리고 앉아 있는 대니얼을 향해 클레어가 말했다.
"곧 퇴마단의 정식 일원이 되기 위해 기초부터 훈련을 시작할 텐데요. 그에 앞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할 거예요. 먼저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어요. 혈액형이 어떻게 되시죠?"
"A형이에요."
"MBTI는요?"
"그런 걸 왜 묻죠? 그게 퇴마에 필요하긴 한가요?"
"그냥 묻는 말에 답해요."
"ISTP입니다."
"취미나 전공, 특기 같은 게 있나요?"
"취미는 추리소설 읽기, 전공은 경영학, 특기라면 스노보드 타기 정도."
"좋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종교는 뭐죠?"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인데 퇴마 같은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나요?"
"어차피 기독교도 하나님과 악마의 존재에 대해 믿느니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을까요?"
"네, 그럼 좋아요."
대니얼의 대답을 적던 노트패드와 펜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클레어는 뒤로 돌아 벽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대니얼의 정면에 큰 화이트보드가 나타났고 클레어는 보드 마카를 들고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퇴마단의 직제는 이렇게 되어 있어요. 퇴마단 국제본부는 티베트에 있고 한국 중앙본부는 전남 강진에 있습니다. 중앙본부 산하에는 지역본부가 각 시, 도, 군 단위로 있어요. 그 지역본부 아래에는 지부가 있고요. 우리가 속한 지부는 동대문지부예요. 왜요? 뭐가 이해가 안 되나요?"
설명을 듣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대니얼을 금방 알아채고 물어왔다.
"아니, 왜 본부들이 다 시골 같은 곳에 있는 거죠?"
"가급적 미디어 공격의 피해가 덜 미치는 곳에 본부를 설치해야 하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니얼은 납득하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퇴마단에 속한 퇴마사들을 소방수라고 부르고 경력과 업적에 따라 등급을 부여합니다. 1급부터 10급까지 존재하며 등급에 따라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달라지고 부여받는 임무의 중요도도 달라집니다. 처음 퇴마사로 임관한 소방수는 10급에서 시작합니다. 10급부터 6급까지는 소속된 지부 영역에서만 활동합니다. 즉, 우리 동대문지부 소속 6급 이하 소방수는 동대문구에서 발행한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5급부터 3급까지는 지역본부까지 커버하고 더 어려운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2급은 전국구로 활동할 수 있고 1급은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소방수로서 국제무대에서 세계 평화를 지키는 것은 꿈과도 같은 일이지요. 누구나 바라는 일이지만 1급으로 활동하고 있는 소방수는 세계적으로 9명밖에 안됩니다."
클레어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지금 퇴마단의 주적은 블랙 포스예요. 그중에서도 우리 일선 퇴마 소방수들은 주로 표적 주술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과 연관 지어 말하자면, 우리는 동대문지부에 속한 퇴마 소방수로서 동대문구에서 발생하는 표적 주술을 구제하는 것이지요."
"그... 표적 주술이라는 게 얼마마다 한 번씩 발생하나요?"
"그걸 설명하려고 하고 있잖아요. 자꾸 말을 끊지 마세요."
더럽게 까칠하네. 대니얼은 알았다는 듯 손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우리 지부 단위에서 발생하는 표적 주술은 한 달에 두세 번 꼴이에요. 예전에는 한 달에 한 번 꼴이었는데 점점 그 주기가 짧아지고 있어요. 블랙 포스가 표적 주술을 사용하려면 적어도 여섯 명 정도의 멤버가 한 곳에 모여 강령회와도 같은 의식을 치루거든요. 그때 강력한 영적 에너지가 발산되게 되고 그 에너지가 대상이 되는 한 사람에게 쓰이는 거죠. 우리는 그 영적 에너지를 감지해 내는 탐지기를 24시간 가동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에너지가 우리 지부 관할 내에서 발생하게 되면 즉시 출동해야 합니다."
24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출동한다니. 그야말로 소방수 같네. 그래서 소방수라고 부르는 것일까 대니얼은 생각했다.
"표적 주술의 대상이 된 사람은 머리 위에 검은색 불꽃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훈련된 퇴마사의 눈에만 보입니다. 퇴마사는 이때 기도를 통해 표적 주술 피해자의 영혼을 깨우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주술자들이 이를 감지하고 기도를 방해하는 행동을 취하는데 그게 바로 텔레퀴즈라는 것입니다. 퇴마사들이 평소에 잘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한 질문을 하는데 평이한 대답을 하면 실패합니다. 허를 찌르는 창의적인 대답을 해야 주술이 풀리고 피해자를 구할 수 있습니다. 주술이 풀리면 대상자의 머리 위에 있던 검은 불꽃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를 그 불꽃을 끄는 소방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구나. 검은 불꽃을 끄는 소방수라.
"그런데요. 만약에 텔레퀴즈라는 것에 답을 하다가 실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피해자는 주술에 걸린 대로 조종을 받아 반사회적 행동을 하게 되고 퇴마사는 내상을 입습니다. 내상이 누적되면 몸에 병이 생기게 되죠. 퇴마행위 중에 생긴 내상으로 얻은 병은 그 진행속도가 엄청 빨라서 의학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훈련해야겠지요. 안 그래요 대니얼씨?"
"네, 그렇네요."
대니얼은 고모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퇴마사의 훈련은 명상, 공부, 운동, 마법 이렇게 4가지로 되어 있어요. 이 방에서 머무르는 1년 동안 매일같이 그 네 가지를 훈련하게 될 텐데요. 가장 먼저 생존을 위해 터득해야 하는 것. 뭔지 아시겠죠?"
방이 또다시 변했다. 이번에는 큰 창고다. 슬슬 화장실에 가야 할 텐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유자재로 방을 바꿀 수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대니얼은 클레어의 입에서 그 방법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자, 그럼. 이것으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겠습니다."
"저, 잠깐만요. 방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는지 얘기해 주셔야죠."
"아니요. 그건 혼자 알아내셔야 해요."
"뭐라고요? 말도 안 돼!"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