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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형제 Feb 04. 2024

답십리 소방학원

수석 소방관리사 제임스 최


길을 걷던 대니얼은 멈춰 섰다.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명함 하나를 꺼내 들었다.


제일 소방관리사 학원

원장/수석 소방관리사  제임스 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답십리 47가 99번지 5층


대니얼은 명함 속 주소가 눈앞의 허름하고 오래된 상가 건물을 가리키고 있음을 확인했다. 고개를 들어 건물 꼭대기 층을 올려다보았다. '제일 소방관리사 학원'이 한 글자씩 창문에 표시되어 있다. 허름한 건물만큼이나 학원의 간판이나 창문의 글씨도 너덜너덜하다. 상가 건물로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5층을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학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카운터 앞에서 직원인 듯한 아가씨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둘은 대니얼을 보고 잠시 얼어붙은 듯 멈췄다가 다시 말싸움을 이어갔다. 학원비를 환불해 달라는 할아버지와 안된다는 여직원은 서로 언성을 높이면서도 그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대니얼의 눈치를 보았다. 보다 못한 여직원이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여직원은 머리를 뒤로 묶은 포니테일 헤어스타일을 했고, 눈매가 가늘게 위로 올라간 매서운 인상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다. "흠!"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한 후에 대니얼은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원장님을 좀 뵈러 왔습니다."


 "아, 그러니까 어떤 일로 오셨냐고요."


젊은것이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투가 그게 뭐냐. 움찔했지만 겉으로는 무표정인 얼굴로 주머니 속에 있던 명함을 꺼내 여직원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대니얼이 건네는 명함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두 눈을 크게 뜨고 한동안 명함 속 글씨를 하나씩 뚫어져라 보는 것이었다. 명함을 보는 그녀의 얼굴이 점점 더 놀라는 표정으로 바뀌어갔다. 더 이상한 것은 조금 전까지 언성을 높이며 다투던 노인은 여직원이 명함을 보고 놀란 이후부터 순한 양처럼 잠잠해졌다는 것이다. 마치 보석을 감정하듯 여직원이 명함을 꼼꼼히 살펴보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노인은 기다렸다. 들키지 않게 힐끔힐끔 대니얼을 볼 뿐이었다. 이윽고 여직원이 눈동자가 벌겋게 되어 고개를 들더니 대니얼에게 말했다.


 "잠깐 기다리세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옆쪽 복도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슬리퍼를 신은 그녀가 발을 뗄 때마다 탁탁탁하는 소리가 났지만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복도 끝 방까지 한숨에 달려가 문을 벌컥 열었다. 왈가닥 소녀 느낌이다.


 "아빠!"


 "앗, 깜짝이야! 노크 좀 하고 열어라. 쫌!!"


중년 남자의 호들갑 떠는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둘이서 무언가 속삭이듯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가만, 아빠? 그럼 원장 딸이라는 거네. 뭐 그런가 보지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자 아까 그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노인은 대니얼과 눈이 마주치자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이 갑자기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들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저기요."


복도 끝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았다. 멀리서 보아도 머리숱이 듬성듬성한 중년 남자가 고개를 빼꼼 내민 채 말했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대니얼은 복도를 지나 중년남자가 부른 원장실로 향했다. 복도에는 강의실로 보이는 여러 개의 방이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리는 것으로 보아 수업을 하고 있는 건 아닐 테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두 텅 빈 강의실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원장실 앞에 다다르자 최실장이 몸을 옆으로 틀며 폭이 좁은 복도를 향해 스치듯 나갔다. 그녀의 머리끝에서 옅은 샴푸 냄새가 풍겨왔다. 하지만 그 찰나의 향긋함은 원장실에 들어서자 코끝을 찌르는 향냄새로 인해 사라지고 말았다.


 "음, 여기 앉으세요."


중년남자는 티테이블 쪽의 의자를 가리켰다. 원장실 안은 뿌옇게 향 연기로 자욱했다. 창문 쪽으로 등지고 앉을 수 있는 원장의 책상이 있었고 그 위로 각종 책자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방 한쪽으로 커다란 책장이 있었고 알 수 없는 책들이 하나 가득 꼽혀 있다. 맞은편에는 서울지도, 대한민국 지도, 그리고 세계지도가 벽에 붙어 있다. 꼬질꼬질하다. 방을 둘러보며 접이식 의자에 엉덩이를 올려놓자 삐걱하는 소리가 났다. 대니얼의 맞은편 의자를 당겨 중년남자가 앉으며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이상하다.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를 묻기도 전에 이름부터 물어보다니.


 "대니얼입니다."


 "그렇군요, 대니얼. 제가 이 학원의 원장 제임스 최입니다."


원장은 전형적인 중년 남성의 모습이었다. 배가 올챙이처럼 볼록한 내장지방형 몸매에 탈모로 정수리 부분에 얼마 머리가 남아있지 않았고, 턱과 코 밑에는 까슬까슬하게 수염이 올라와있었다. 머리와 수염 곳곳에 흰 가닥이 제법 많은 것으로 보아 60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외모이지만 젊은 딸이 있는 것을 보니 50대 중반 정도 되었으려나.


 "여하튼 대니얼씨,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오느라 큰 결심이 필요했을 텐데 용기 있는 결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네?"


뭔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니얼은 되묻고 있지만 원장은 못 들은 척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소방수가 된다는 결심은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한 법이지요. 큰 결심하신 만큼 저도 최선을 다해 지도해 드리겠습니다."


 "저, 잠시만요. 저는 학원에 등록하러 온 게 아닙니다."


 "물론, 저희도 그냥 학원이 아닙니다."


 "학원이 아니면 뭐죠?"


 "그야 당연히 블랙 포스, 즉 검은 세력에 맞서는 퇴마 소방수를 양성하는..."


 "뭐라고요?"


원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니얼은 펄쩍 뛰며 되물었다. 원장도 당황한 듯 대니얼을 쳐다보았다.


 "저는 돌아가신 저희 고모가 남겨 놓으신 편지를 보고 와보게 되었어요. 편지 안에는 그 명함이 같이 들어있었고요. 편지에는 세상을 위해서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면 그 명함 속의 사람을 만나보라고만 되어 있었어요."


 "돌아가셨다는 고모님의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안젤라예요."


이름을 들은 원장의 눈썹은 치켜 올라갔다. 입술이 바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가쁜 숨을 몰아 쉬더니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책상 위에서 담배를 집어 물고 가스라이터로 불을 붙이려 했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에도 가스라이터에서 불꽃이 나오지 않자 "젠장!"하고 신경질적으로 가스라이터를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창가틀에 피워 놓은 향을 하나 집어 들어 입에 문 담배 끝에 가져다 댔다. 뻐끔뻐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콜록콜록' 기침을 해댔다. 그러고는 숨을 고르듯 몸을 수그리고 있는 것 같이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우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애써 진정한 듯한 모습으로 돌아온 원장이 다시 입을 떼었다.


 "그래, 자네가 그 대니얼이었군. 고모는 어쩌다 돌아가셨는가?"


갑자기 반말이다. 하지만 대니얼은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당시 미혼이었던 고모가 자신을 받아주어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친자식처럼 키워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고모 덕분에 미국에 유학을 갈 수 있을 정도로 좋은 교육을 받았으나 고모는 끝내 자신에게 병을 알리지 않고 한국에 남아 혼자 조용히 생을 마감하셨다는 것도 이야기했다. 대니얼은 고모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아 학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몇 달을 처박혀 아무것도 안 했다고. 그러다가 고모가 돌아가신 지 3개월이 지났을 때쯤 그때까지도 손도 대지 않았던 고모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대니얼에게 남겨진 편지를 발견했다고. 마침 삶의 방향성을 잃고 큰 절망에 빠져있던 대니얼은 고모의 편지를 잃고 이곳에 와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끝까지 아무 말 않고 듣고 있던 원장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돌아가신 안젤라 고모는 자신의 연인이었다고 했다. 말도 안 돼. 저런 대머리 배불뚝이와 사귈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은 내가 이런 꼴이어도 젊었을 땐 카리스마 있었지."


회상에 젖은 듯한 눈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원장이 말했다. 고모와 연인이었던 것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라고 했다. 그러다 대니얼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신 후 대니얼을 맡아 키우기로 결심한 때쯤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대니얼의 고모, 안젤라도 퇴마 소방수였다는 것이다.


 "퇴마 소방수라는 것은 뭐죠?"


 "세상 사람들이 좀비가 되지 않도록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지."


원장은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블랙 포스의 존재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강력한 주술을 사용한다고 한다.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주술의 힘이 미치도록 하기 위해 전파를 사용한다. TV, OTT, SNS, 인터넷 같은 매체에 많이 노출되는 사람일수록 이들의 주술에 더 많이 영향을 받게 되고 점점 다양한 형태로 이상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도에 따라 정서의 획일화, 극단적 이기주의, 그리고 반사회성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배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서로 대립하고 불신하게 되고 그러다 결국 공동의 파멸을 향해 가게 되는 것이다. 혼돈의 시대가 되면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은 대중을 선동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 된다. 약간의 자극만으로도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로 하여금 전쟁이 답이라고 믿게 만들었었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에게 맞설 수 있죠?"


 "그것은 세상을 구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제대로 된 퇴마 훈련을 받는다면 가능하지."


원장은 계속해서 이곳이 그런 퇴마사를 양성하는 학원이라는 것을 설명했다. 표면적으로는 '소방시설관리사' 국가자격시험 학원이다. 직장생활을 은퇴한 이후의 경제활동을 위해 중년, 노년의 수강생들이 주를 이룬다고 하지만 학원은 텅텅 비어있다. 어쨌든 '소방시설관리사' 자격대비반 수업을 수강하러 오는 사람들과는 달리 '퇴마 소방수'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은 추천인으로부터 명함을 받아서 방문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 명함에는 자신들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럼 저도 그 퇴마 소방수라는 거 훈련을 받아볼 수 있는 건가요?"


 "음. 그럼. 가능하고 말고. 추천장을 가지고 여기에 온 사람은 자격이 있는 셈이지. 그 명함 말이야."


이렇게 말하며 대니얼이 가져온 명함을 가리켰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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