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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형제 Jan 28. 2024

소방수 대니얼

프롤로그

'띠링'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문자메시지가 아니다. 대리운전 요청을 하는 콜 알림음이다. 부천행이다. 지금 있는 곳은 인천 주안역이다. 요금 2만 5천 원으로 콜이 들어왔다. 대니얼은 얼른 수락 버튼을 눌렀다. 고객에게 통화 연결이 활성화된다.


 "고객님, 대리기사입니다. 부천 가시는 거 맞죠? 지금 계신 곳이 어디신가요? 네, 네. 저도 지금 주안역 근처에 있거든요. 네네. 아! CGV 뒤쪽 한신포차요? 네, 알아요. 그쪽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5분 정도 걸립니다. 네네. 도착해서 전화 한 번 다시 드릴게요."


 능숙하게 고객과 통화를 나누는 대니얼. 통화를 마치기도 전에 이미 발길을 목적지로 옮기기 시작했다. 민첩한 발걸음으로 밤거리를 달리듯 걸었다. 살짝 흐트러진 머리, 깍지 않아 까슬까슬 올라온 수염, 진한 청색 새미 정장에 흰 셔츠를 입었다. 검은 테두리 안경 뒤에 날카로운 눈매를 숨기고 있다. 눈빛에 서려있는 총명함 때문에 숨기려 해도 그 비범함을 숨길 길이 없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대니얼은 고모의 손에 컸다. 대니얼의 고모는 비혼주의자였지만 한 순간에 부모를 잃은 어린 조카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런 고모에게 보답이라도 하듯이 대니얼은 놀라운 학업 성과를 보여주었다. 대니얼은 영특했지만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대니얼의 떡잎을 알아보았던 고모는 대니얼이 해외에서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다행히 대니얼도 그런 고모의 뜻에 수긍해 주었다. 그리고 프린스턴 대학의 입학 허가를 받아냈다.


그런 그가 왜 지금은 한낱 대리기사로 일하고 있는가. 물심양면으로 대니얼을 지지해 주던 고모가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뉴저지에서 학업에 열중하고 있던 대니얼은 고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모는 암으로 병세가 악화되는 것을 대니얼에게 철저하게 숨겼기 때문이다. 부모님에 이어 고모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자 대니얼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학벌이며 연봉이며, 좋은 집과 좋은 차 이런 것들은 죽으면 아무것도 소용없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학업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딱히 무언가를 해야 할 목적성을 잃고 방황하기만 했다. 그래도 고모가 남겨주신 약간의 재산과 생명보험금으로 당장의 생계는 해결할 수 있었다. 몇 달 동안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고 지냈다.  


칩거하는 동안 루빅스 큐브, 추리소설에 몰두했다. 밤바다 돌아가신 고모가 찾아왔다. 돌아가신 고모와 밤새 대화를 나누고 낮에 잠에 드는 패턴이 몇 달동 안이나 이어졌다. 고모는 대니얼의 부모님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살아계셨을 때 즐겨 부르던 노래도 했고, 대니얼의 친구들 안부를 물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기간의 칩거를 깨고 바깥세상으로 나왔을 때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는 한 남자를 향해 대니얼이 물었다.


 "부천 가십니까?"


 "네. 엄청 빨리 오셨네요?"


 "근처에 있었거든요. 어느 차죠?"


 "아, 이거입니다."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스마트키의 열림 버튼을 누르자 바로 옆 흰색 닛산 알티마가 방향등을 깜빡이며 딸깍하는 소리를 냈다.


 '곧 텔레퀴즈가 시작되겠군.'


 대니얼은 운전대를 잡은 채로 룸미러로 뒷자리에 앉은 남자를 힐끗 보며 생각했다. 술을 마신 사람들은 보통 말이 많아져 이런저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해대기 일쑤였지만 이번 손님만큼은 과묵하기 그지없다. '검은 세력'의 빙의가 시작되기 전에는 대상자가 말 수가 적어지며 눈빛이 흐릿하게 변한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이상할 것 없는 현상이지만 대니얼은 그 미묘한 변화 속에서 암울한 기운을 감지해 낸다.


세상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검은 세력'이라고 불리는 신종 오컬트 테러조직이 존재한다. 이들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들의 본거지는 알려진 바 없으며 비밀스럽게 행동한다. '검은 세력' 조직원들은 주기적으로 모여 강력한 주술행위를 펼친다. 이 주술로 인해 세상 사람들은 빙의된 듯이 의식을 조종당하게 된다. 피해를 당하게 되는 대상과 인원수는 무작위이다. 의식이 조종당하는 상태를 풀어내는 방법은 텔레퀴즈뿐이다.


부드럽게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져 가던 차가 신호등 앞에 잠시 멈추었다. 룸미러를 들여다보니 손님은 잠이 든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다. 대니얼이 시선을 정면으로 돌리며 목을 좌우로 꺾었다. 관절에서 '우두둑'하는 소리나 났다. 잠시 후 초록 신호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대니얼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려던 순간 뒷좌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세상에서 없어지더라도 아무 지장을 초래하지 않지만 없어지지 않는 것 세 가지를 말하라."


대니얼은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슬쩍 룸미러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손님의 머리가 검은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검은 세력'의 주술에 의해 빙의되면 피해자의 머리는 검은 불꽃에 휩싸이게 된다. 이 불꽃은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형태의 것이다. 실제 화재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그 상태로 두면 피해자는 10분 이내에 자의식을 잃고 좀비처럼 변해버린다. '검은 세력'이 의도한 대로 사고의 획일화가 용이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텔레퀴즈를 풀어 주술의 힘을 끊어야 한다.


텔레퀴즈는 일반적인 퀴즈는 아니다. 질문은 평이할 수 있지만 어떤 답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기발하고 참신한 답으로 허를 찔러야 주술을 풀 수 있다. 뻔한 답을 하는 순간 피해자를 구할 기회는 없어지는 것이다.


 "국회의원."


대니얼은 첫 번째 답을 말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신분증명, 금전거래, 법률소송까지도 해결하는 시대이다. 굳이 원시적인 방법으로 투표를 해서 국민의 대표를 뽑을 필요가 없다. 고대 그리스, 로마처럼 직접 민주주의를 해도 된다. 그것이 오히려 국민의 의사를 정책에 더 잘 반영할 수 있다. 괜히 불필요한 국회의원 세비나 축나고 각종 부정부패만 난무한다. 국회란 국민들의 의견을 잘 수집하고 찬반 투표 결과를 집계하여 관련 정책을 입안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행정처리만 해주면 된다. 선거구 주민들의 의사를 대변해 줄 국회의원 따위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좋아. 인정. 그럼, 두 번째는?"


 "사형."


대한민국은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한 적이 없다. 사형제도에 대한 논란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는 주제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판사들이 사형을 선고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집행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형을 선고한다고 한들 종신형이나 마찬가지로 운영되겠지만, 판사들은 그것조차도 선고하지 않는 것이다. 즉, 그런 무거운 형을 선고함으로써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할 실익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흠... 좋다. 인정. 마지막 세 번째는?"


조금 뜸을 들이던 빙의체는 검은 불꽃 속에서 계속해서 다음 답을 요구해 왔다. 그렇지만 대니얼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은 불꽃이 득의양양하게 타올랐다.


 "어서 세 번째 답을 말해보아라!!"


 "......"


 "어서!!!"


 "......"


 "셋을 세겠다. 하나!"


 "......."


 "둘!"



정면의 신호등이 눈에 들어왔다. 사거리 횡단보도와 정지선 위에 짙은 회색 신호등이 달려 있다. 신호등은 4개의 구를 가지고 있는데 지금은 빨간 구에만 불이 들어와 있고 나머지는 불이 들어와 있지 않다. 굳이 왜 신호등은 3구 혹은 4구로 만든 것일까? 옛날에는 백열전구를 사용했고, 색을 바꿔서 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납득이 간다. 하지만 지금은 LED로 원하는 색도 표시할 수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신호등은 구가 여러 개일 필요가 없다. 예컨대 빨간색과 초록 색이 동시에 켜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많아봤자 두 칸만 있더라도 모든 상황에 다 대처가 가능하다. 그런데 왜 그걸 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여러 구(칸)을 유지하는 것일까?


 "4구 신호등!!"

  

 "흠......"


빙의체의 머리를 휘감았던 검은 불꽃이 심하게 흔들렸다.


 "어쩔 수 없군. 인정!! 퀴즈를 통과하였으니 이 사람은 살려주도록 하겠다."


말이 끝나자 검은 불꽃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잠들어 있던 손님은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깼다.


 "여기가 어딘가요?"


 "거의 다 왔습니다. 손님. 깜빡 잠드신 모양이네요."


 "네, 그러게요."


자신이 조금 전까지 어떤 일을 당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 손님을 보며 대니얼은 다행스러운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대니얼은 오늘 이 사람이 좀비가 될 뻔한 것을 막아냈다. 좀비가 된다는 것은 사고가 획일화되어 '검은 세력'의 의도대로 조종당하는 상태를 말한다. 언론과 미디어에 의해 쉽게 선동되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는다. 창작과 고차원적 사고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계속 숏폼 동영상에 탐닉하고 OTT 콘텐츠에 빠져든다. 대중의 관심을 그런 쪽으로 돌린 후 '검은 세력'은 부와 권력을 손에 넣고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대니얼과 같이 검은 세력의 주술을 일선에서 막아내는 사람들을 '소방수'라고 부른다. 어떤 의미에서는 퇴마를 시전하는 엑소시스트와도 같다. 검은 불꽃을 잠재우는 것이 그들의 역할인 것이다. '소방수'들은 세계 각지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검은 세력의 침략에 정면으로 맞서는 선봉 역할이다.


이윽고 손님이 요청한 주소지에 도착해 무사히 주차를 마친 대니얼이 운전석 문을 닫고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만 오천 원입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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