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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형제 Feb 11. 2024

퇴마학원에 등록하다

블랙 포스의 세계관

대니얼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고모의 편지를 손에 들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고모는 살아서는 대니얼을 친자식처럼 길러주었고 돌아가신 이제는 대니얼에게 삶의 방향을 정할 선택지를 던져주었다. 대니얼은 몸을 일으켜 책상 위에 고모의 편지를 올려놓았다. 창문을 여니 햇살이 싱그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살며시 불어온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대니얼은 생각했다.


이틀 전 만나고 온 퇴마학원 원장 제임스는 퇴마사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큰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고 했다. 퇴마를 행하기 위해 남들보다 비범한 능력을 갖게 되겠지만 경제적으로는 곤궁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로 인해 가정을 꾸리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부양하려면 경제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니얼의 고모는 퇴마사의 길을 걸으며 대니얼을 부양했다. 그것은 퇴마 활동을 함과 동시에 별도의 경제활동을 병행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체력적인 부담도 컸겠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퇴마력이 쇠해졌을 것이라고 했다. 검은 세력을 상대하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퇴마 행위가 적시에 효력을 발휘해 상대를 제압하면 문제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상대의 흑마법에 역습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모 안젤라는 그렇게 흑마법에 역습을 받고 내상을 입은 상태로 앓다가 돌아가신 것이 아닐까 대니얼은 생각했다.


열린 창문을 등진 채 걸터앉아 있던 대니얼은 이윽고 결심에 찬 얼굴로 창틀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외출할 채비를 했다. 집 근처 은행에 들러 500만 원을 현금으로 인출했다. 그리고 전철을 타고 답십리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5층 학원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때의 그 앳된 얼굴의 여직원이 접수 카운터를 지키고 앉아 있다가 대니얼과 눈이 마주쳤다.


 "어!"


대니얼을 알아보았는지 외마디 소리를 내었지만 인사는 하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다. 왜 또 나타났느냐는 표정이다. 대니얼은 가방에서 현금 500만 원을 데스크 앞에 내려놓고 말했다.


 "학원 등록하려고요."


 "어떤 학원을 등록하실 거죠?"


 "그야 물론 퇴마..."


 "쉿!!!"


나무라는 듯한 표정으로 대니얼을 쳐다보며 여직원은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조용히 서류 하나를 꺼내 대니얼 앞에 내밀었다.


 "등록신청서를 작성해 주세요."


 "하지만 이건..."


대니얼 앞에 놓인 등록신청서는 소방설비기사 자격반 등록신청서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장실이나 강의실 밖에서는 그쪽 분야에 대한 이야기는 입에 담지 않는 게 좋아요. 어쨌든 등록하신다니까 서류는 받는 거지만 그쪽 분야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들에 대한 인적사항은 남겨둘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일반 학원 등록서류로 받는 거예요. 그쪽 분야 사람들은 신변이 노출되면 위험하거든요. 알아들었죠?"


그쪽 분야란 퇴마 세계를 얘기하는 것이겠지. 빠르게 자신의 할 말을 마친 여직원은 잽싸게 카운터에 놓인 현금을 챙겼다. 현금 다발을 손에 들고 예의 그 복도를 후다닥 뛰어가더니 원장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아빠!!"


 "아이! 깜짝이야!! 노크 좀 하라고 몇 번을 말했냐."


원장의 고함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여직원은 돈다발을 흔들며 말했다.


 "아빠, 이것 봐. 그 사람 등록하러 왔어."


이 말을 들은 원장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여직원은 복도를 지나 카운터로 돌아왔다. 카운터 아래 책상서랍 어딘가에 현금을 집어넣고는 대니얼에게 말했다.


 "다 적었어요?"


 "아니, 아직..."


 "빨리 작성해 주세요. 첫날은 안내할 사항이 많아요."


 "네."


 "다 작성하시면 1번 강의실로 들어가서 잠시만 계세요."


이렇게 말한 여직원은 책상 서랍을 열쇠로 잠그고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나가버렸다. 어린것이 말투가 앙칼지다. 대니얼은 펜을 들고 등록신청서를 채웠다. 다 적은 등록신청서를 카운터 너머 책상 위에 올려두고 1번 강의실을 향해 복도를 걸어 내려갔다.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강의실들은 모두 비어 있는 듯 조용했다. 1번 강의실은 원장실 맞은편에 있었다. 문 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려고 하자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에 달린 작은 유리로 강의실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불이 꺼져 어두컴컴한 다섯 평 남짓한 강의실이 보였다. 아무도 없고 칠판, 책상, 의자가 놓여 있는 휑한 느낌이다. 그때 뒤에서 원장이 원장실 문을 열고 나오며 말했다.


 "자네, 왔는가."


 "안녕하세요."


 "그래. 잘 왔네. 내가 문을 열어주지."


원장은 1번 강의실 문고리를 잡고 왼쪽으로 두 번 오른쪽으로 한번 돌렸다. 그런 다음 당기자 문이 열렸다.


 "들어가게. 최실장이 오리엔테이션을 해줄 거야."


원장에게 고개를 꾸벅하고 돌아서 강의실로 들어서자 대니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급스럽게 꾸며진 거실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20평은 족히 넘을 듯한 방안에는 럭셔리한 카펫이 깔려있고 고급스러운 가죽 소파가 놓여있다. 한쪽 벽면에는 칠판 대신 초대형 TV가 설치되어 있는데 150인치는 넘어 보였다. 넋을 잃고 서있는 대니얼을 향해 목소리가 들여왔다.


 "자리에 앉으세요."


그 여직원의 까칠한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운 서라운드 오디오 시스템을 타고 들려왔다. 그래, 그 여직원, 원장딸이 최실장이었지. 대니얼은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더니 정면의 TV에서 영상이 흘러나왔다.


 '퇴마사의 길에 들어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제부터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


자막과 함께 남성 내레이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상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과거부터 비밀스럽게 움직여온 비밀 조직에 관한 이야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과거부터 여러 비밀 조직들이 자신들의 지배력을 키워오기 위한 음모를 거듭해 왔다.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등 여러 이름들이 있었다. 이들은 정보력과 경제력을 이용해 사회의 요소요소마다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계를 좌지우지해 왔다. 그러다 주요 비밀 세력 간 분열이 일어나게 되는데 악마주의 성향이 가득한 블랙 포스, 이른바 검은 세력이 봉기한 것이다. 유수의 비밀 조직들을 전부 석권한 검은 세력은 보다 급진적인 방법으로 인류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고자 시도했다. 그것은 바로 현대 기술과 흑마법의 결합이다. 즉, 강력한 주술을 미디어를 통한 전파의 형태로 전 세계에 퍼뜨리는 것이다. 은밀하게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과거의 비밀조직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악의적이고 파급력이 강하다.


 '블랙 포스의 검은 주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광역 주술입니다. 블랙 포스의 주술이 미디어를 통해 전파의 형태로 퍼져나가는 것을 말하며 범위가 광범위하지만 진행 속도는 느립니다. 그렇지만 반복적으로 장시간 노출되는 경우 피해자는 자신도 모르게 의식과 사고를 지배당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정서의 획일화라고도 부르며 이 상태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블랙 포스는 대중을 선동하기 쉬워집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한 채 무선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이 들여다보는 것은 소셜미디어, OTT 영화나 드라마, 예능 다시 보기, 숏폼 동영상 같은 것들이다. 이런 미디어에 노출될수록 전두엽의 기능이 점차적으로 쇠퇴되며 사고력과 어휘력이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중독 1기 상태이다. 이에 더해 충동적이고 감정 조절마저도 어렵게 되는 2기는 무개념 이기주의에 해당한다. 이기주의가 팽배해짐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이 상호 적대적으로 변하게 된다. 3기는 이상행동을 하는 단계이다. 비합리적인 행동을 정상이라고 믿게 된다. 예컨대 소득으로 감당하기 힘든 명품이나 외제차를 구매하는 등의 행동이다.


 '두 번째 검은 주술의 방법은 바로 표적 주술입니다. 특정 인물을 선정해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언행을 하도록 조종하거나 반사회적 행동을 하도록 합니다. 이 표적 주술에 걸리게 되면 빠른 시간 안에 빙의가 된 것처럼 의식을 완전하게 지배받게 되기 때문에 좀비화가 된다고도 말합니다. 이렇게 좀비화가 된 사람은 극도로 위험합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퇴마단의 가장 최우선 해결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화면에는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신림동 묻지 마 칼부림 사건, 정유정 사건의 뉴스 보도 영상이 보였다. 저런 사건들은 퇴마단이 사전에 막지 못해서 벌어졌단 말인가. 대니얼은 영상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퇴마단의 일원으로서 여러분의 1차 임무는 사회적으로 즉각적인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표적 주술 피해자를 조기에 발견하여 사전에 그 주술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2차 임무로 미디어 홍수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대중들을 계몽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평화로운 미래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여러분은 앞으로 1년간 많은 것을 배우고 수련하여야 할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영상이 끝났다. 방 안의 조명이 다시 밝게 돌아왔다. 그러자 방 모양이 달라져있다. 이번엔 회의실 같은 분위기의 방이다. 긴 직사각형 모양의 테이블과 여러 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 대니얼은 어안이 벙벙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앞에 있던 거대한 TV도 보이지 않고 흰 벽이 네 면을 감싸고 있다. 문이 열리고 최실장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 들고 온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자, 대니얼 씨. 저는 동대문 퇴마단 7급 클레어라고 합니다. 이 강의실 밖에서는 저를 최실장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대니얼은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복장이 달라져있다. 학원 접수데스크에 앉아 있을 때 입었던 정장 느낌의 옷은 어느새 주홍색 점프슈트로 바뀌어 있었다. 검은색 모자를 쓰고 대니얼 앞에 서서 양손을 허리에 올려놓은 채 말을 이었다.


 "이제, 1년간 당신은 이 방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네? 뭐라고요?"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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