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은 감금 중
'띠리리리리링'
정적을 깨는 알람소리가 시끄럽게 침실에 울려 퍼졌다. 이내 대니얼은 손을 뻗어 알람을 끄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크게 하품을 하며 목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방안은 최고급 호텔 객실을 연상케 할 만큼 널찍하고 고급스러웠다. 일어나 욕실로 가서 담배를 물고 변기 위에 앉았다. 화장실 안에서 리모컨을 조작한 것인지 방안의 스피커에서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The Charlatans의 'Blackened Blue Eyes'라는 곡이다.
' I don't care too much for the second chances. Ride out into a wold of random prostitutes. I'll show you some fantastic scenes and it will be alright~♪'
물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화장실 문이 열리고 대니얼이 운동복 차림으로 나왔다. 화장실 안에 옷장이라도 있는 것일까. 러닝화까지 신고 있었다. 대니얼은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대니얼이 달라고 있는 곳은 화창한 날씨의 해변 조깅코스였다. 방안에 있던 대니얼이 어떻게 갑자기 해변을 달리고 있는 것일까. 신기하게도 음악 소리는 계속 어디에선가 들려오고 있었다.
한 가지 더 이상한 것은 조깅을 하는 대니얼의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저 멀리 도시의 빌딩들도 보이고 해변도 야자수도 보이지만 어쩐 일인지 지나가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마치 텅 빈 세상에 대니얼 혼자만 존재하는 것 같다. 하지만 대니얼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면만 보며 달렸다. 한동안을 그렇게 달리던 대니얼은 숨을 헐떡이며 멈췄다. 허리를 숙이고 숨을 고르는 동안 목덜미로 땀이 흘러내렸다.
달려온 방향을 향해 몸을 돌리자 해변 조깅코스는 온 데 간 데 없고 실내 농구장이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어느새 대니얼의 러닝화가 농구화로 바뀌어 있고 복장도 달라졌다. 2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홈구장 웰스파고 센터가 조용하다. 즉,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코트를 향해 조명이 켜져 있어 농구공을 들고 선 대니얼의 주변은 낮처럼 환했다. 어느새 또 다른 노래 Swollen members의 'Breathe'가 들려왔다. 농구공이 바닥으로부터 튀어 오를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와 농구화와 바닥이 마찰할 때마다 들려오는 '삑'하는 소리가 음악과 아우러져 들려왔다. 대니얼은 마치 눈앞에 수비수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현란하게 드리블로 돌파하는 연습을 했다. 비트윈 더 레그, 헤지테이션, 크로스 오버, 비하인드 백, 그리고 더블 크러치로 마무리. 한눈에 봐도 꽤 수준급의 움직임이다.
1시간가량 혼자 농구를 하던 대니얼은 눈 깜짝할 새 다시 호텔방이다. 대니얼은 입고 있던 옷들을 훌렁훌렁 벗어던졌다. 알몸이 된 후에 다시 욕실로 들어가고 샤워기 물소리가 들려왔다. 샤워를 마친 후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마치 대니얼이 샤워를 하는 사이 누군가 와서 음식을 차려 놓은 것처럼 가지런하게 식탁 위에 놓여있었고 심지어 따뜻하기까지 하다. 갓 구운 크루아상과 베이컨, 에그 스크램블, 터키햄, 해쉬브라운, 베이크드빈.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까지. 팔꿈치를 식탁에 댄 한 손에는 책이 들려있고 열심히 입을 움직이는 동안 대니얼의 눈은 책에 고정되어 있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다. 아침부터 저렇게 난해하고 어려운 책을 읽다니. 식사를 마쳤지만 대니얼은 아직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앉아 있다. 책의 마지막 남은 몇 페이지를 마저 읽을 생각인가 보다. 이십 분 정도 시간이 더 흐른 후에 책을 덮었다.
대니얼이 책을 들고 의자에서 일어서자 주변은 도서관으로 변해있었다. '전쟁론'을 책장에 꽂아 놓고 '피네간의 경야'라는 제목의 책을 뽑아 들었다. 난해한 문체로 읽기 어렵다고 손꼽히는 문학작품이다. 게다가 영문 원작이다. 대니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들고 돌아섰다. 대니얼이 책을 펼치며 의자에 앉자 다시 주변이 조용한 커피숍으로 변했다. 하지만 커피숍에는 아무도 없다. Lisa Ono의 'I wish you love'만 흘러나오고 있다. 대니얼은 몇 시간을 그렇게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점심으로 참치 샌드위치와 당근주스를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먹은 후에도 여전히 그의 시선은 책에 고정되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더니 책을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눈을 뜨니 이제 대니얼은 숲에 있었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이 비벼지며 파도처럼 '솨아'하는 소리를 냈다. 대니얼의 머리칼이 날리고 옷자락도 펄럭거렸다. 대니얼은 크게 심호흡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했다. 그리고는 풀숲으로 들어가 정좌했다. 눈을 감은 채 그 자세로 한참을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다. 이 순간은 어떠한 음악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뉘엿뉘엿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대니얼은 눈을 떴다.
주변은 또 바뀌어 있다. 따뜻한 실내 공기가 느껴졌다. 서재라고 부를 만한 공간에 세련된 책상이 있고 노트북 컴퓨터가 놓여 있다. Timecop1983의 'On the run'이라는 연주곡이 어디에선가 흘러나왔다. 대니얼은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는 MS word 파일을 화면에 띄웠다. 화면에는 빼곡하게 글자가 채워져 있었다. 대니얼은 마우스를 스크롤하여 글의 맨 마지막에 도달한 후 이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덧 대니얼이 감금 훈련 들어간 지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현금 500만 원으로 소방자격학원을 등록한 직후부터 강의실 1호에 들어가서 단 한 번도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원장 제임스와 그의 딸 클레어가 운영하는 소방자격학원은 위장일 뿐 퇴마단의 동대문지역 사무소이며 신입 퇴마사 양성소였다.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대니얼은 블랙포스의 음모와 퇴마단 조직의 역할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퇴마사가 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 1년간 감금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사람이 기본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식량이나 화장실, 욕실, 취침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강의실에서 1년을 버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제임스와 클레어는 대니얼을 감금했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설정술(設定術)이라는 것이 그 믿는 구석이었다. 설정술은 퇴마사들이 사용하는 마법 기술로 주변 환경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이다. 퇴마사들이 빙의체에게 접근할 때 정체를 의심받지 않으면서 접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게다가 일반인들이 퇴마 행위를 목격하는 것 등의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도 이 설정술을 통해 대처할 수 있다. 훈련에 들어간 대니얼이 가장 먼저 그리고 빨리 그 기술을 익힐수록 훈련의 효과를 더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니얼의 훈련은 별 것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설정술을 익히기 전까지는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부터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 다행히 대니얼이 갇혀 있는 강의실은 초심자를 위해 마법 효과가 조절되어 있었다. 약간의 내공만 있어도 쉽게 설정술이 구사될 수 있도록 마법 효과 민감도를 제임스가 조절해 놓은 것이었다. 덕분에 인간의 존엄성은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번은 대니얼을 혹독하게 훈련해야 한다면서 강의실의 마법 효과 민감도를 높여 놓는 바람에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굶은 적도 있었다. 뒤늦게 제임스가 발견해서 다시 민감도를 낮게 조절하려고 했지만 대니얼은 그 순간 스스로의 내공으로 설정술을 구사해 위기를 벗어났다.
텔레퀴즈에서 빙의체의 허를 찌르기 위해서는 창의력과 두뇌 순발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두뇌활동은 첫째로 뇌 기능이 건강해야 한다. 그러려면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숙면, 그리고 운동이 필요하다. 설정술을 통해 숙면을 위해 호텔 침대와 취침도구들을 가져오고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운동 중에서도 수비수를 따돌리기 위해 여러 기망 동작을 하는 농구는 신체적으로 높은 수준의 체력과 민첩성을 요하지만, 두뇌도 순발력을 발휘해야 한다. 건강한 뇌 기능과 더불어 필요한 것이 바로 풍부한 지식이다. 창의력과 순발력은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잔꾀나 말장난, 뒷북으로 끝나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방면의 책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책을 읽는 것은 전두엽을 활성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정신집중을 위한 명상도 없어서는 안 될 과정 중 하나이다. 대니얼의 글쓰기는 단순한 글쓰기로 보일 수 있지만 리포그램이다. 즉, 사용하는 활자에 제한을 둔 채 글을 쓰는 것이다. 대니얼은 지금 알파벳 'e', 's'를 사용하지 않고 영어로 소설을 쓰고 있다. 배경은 조선시대이고 장르는 미스터리이다.
제임스는 원장실에 놓인 컴퓨터로 대니얼의 일과를 지켜보고 있다. 멀쩡한 젊은이를 감금한 것으로도 모자라 프라이버시까지 침해하고 있는 셈이다. 제임스는 매번 노크도 없이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딸 클레어에게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존종해달라는 요구를 하지만 막상 타인의 프라이버시는 가볍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빠, 그 사람은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글쎄. 지금까지 훈련 성과를 보면 예상보다 빨리 나올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맞아. 내 생각도 그래. 아무 단서도 주지 않았는데 설정술을 단 하루 만에 구사한 사람은 없었잖아."
"이것아! 네가 저 사람 바지에 똥 싸게 하려고 일부러 알려주지도 않고 휙 나와버린 건 생각 안 하냐?"
"헤헤. 재밌잖아?"
클레어는 혀를 내밀며 웃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