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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고요 Jan 31. 2020

행복하면 글 안 써

불행의 감정을 파고드는 글쓰기의 무용함

작년 한 해 하반기는 내게 유난히 혹독했다. 한 때 절절하게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과 억지로 정을 떼는 일,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의지하는 관계들의 붕괴와 재건, 미뤄왔던 과제 마무리를 위한 과거로의 다이빙. 무엇보다도 믿고 의지했던 존재들의 상실 그리고 사랑의 실체에 대한 불신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주제였고...... 과중한 업무로 몸과 마음이 소진된 채로 집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맡기고서도 감정의 격동과 부정적인 생각을 좀처럼 떨쳐내기 힘들었다. 실체 없는 상상과 고뇌는 나의 활력을 앗아갔다.


이대로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하여 글쓰기, 명상, 향초, 요가 등에 쏟아붓는 시간과 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는 방법으로 부단히 고요를 좇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나를 좀먹는 생각들은 좀처럼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면서 주변을 맴돌았다. 내 영혼과 육신은 결국 뇌의 끊임없는 노동에 시달려 소진되는 상태에 이르고 말았던 11월 중순. 그러다 어느 날 괴로운 날마다 몰두해 썼던 내 글들을 꺼내 읽어보았다. 허망함, 청승맞음, 상실감, 불신, 무기력함 등 부정적인 기운들로 점철된 글들이 어조만 다르게 변주되고 있었다. 나의 노트는 감정의 쓰레기통일 뿐이었고 불행한 나의 글쓰기는 불행이라는 감정을 더 각인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글쓰기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앞만 보기로 결심했다. 2020년이 오면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나는 오늘 해야 할 일을 닥치는대로 해치우며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비우는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11월 18일 밤, 여느 때처럼 심장의 박동을 진정시키기 위한 일기를 작성하는데 후련하고 깨끗한 마음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날 하루종일 이상하리만치 대담하게 이곳 저곳을 정신없이 다니면서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해묵은 것들을 정리하고 청산해버렸던 것이다. 1000번의 생각에 갇혀 허덕이고 있을 그 시간에 에너지를 발산하며 부딪히고 행동하고 결단을 내려버리니 한 순간에 내 일상의 바이오리듬이 전환되었다. 1개의 과제를 해결할 때마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갈무리한 것 같은 가벼운 기분이 들었고 안심이 되었다. 그 후 일주일 내로 지난한 시기를 청산하고 남은 것은 무언가를 지독하게 미워하고 질투했던 불안하고 연약해져버린 나 자신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생각과 감정은 내가 아니었다. 실체 없는 가짜, 환상일 뿐. 마주해야 할 것은 나를 조금이라도 걱정하게 또는 괴롭게 만드는 실재들을 제거하고 날려버리는 전략을 짜고 그게 논리가 있든 없든 간에 무작정 행동하는 것 뿐이었다. 이런 점에서 끊임없이 상황을 파고 드는 글쓰기를 하는 일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지. 불행할 때 유난히 일기에 의존하고 나에 대한 글쓰기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문제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으려 하고 노력과 학습, 훈련으로 마음을 교정하려고 애쓰는 인위적인 노력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 시간에 차라리 나의 성장과 행복에 유리한 것을 탐색하고 체화하는 데 몰두하겠어.


2019년 그 시간들은 벌써 옛날 일처럼 흐릿하게 떠오를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글쓰기를 멀리하고 무언가에 대해 집요하게 결론을 내고 답을 찾아야겠다는 집념이 사라졌다. 내 일기는 그저 그 날의 동선과 식단, 만난 사람들 그리고 주고 받은 것들을 기록하고 있을 뿐. 1차원적인 서술로 가득 찬, 단순히 시간과 사건을 따라가는 글들은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의 글처럼 해맑고 유치하다. 1월의 일기들을 읽는데 아무 생각이 안 들고, 읽고 나니 식욕이 돌면서 웃음이 난다. 2020년의 일기장은 활기와 욕망이 넘쳐흐르는 단어와 생각들로 채워야지. 그리고 이 브런치는 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고 영리하게 사는 데 필요한 전략과 아이디어를 담는 곳으로 만들고자 한다. 어쨌든 몽치 프로젝트는 시작되었기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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