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지우개로 지우기 시작한다. 내가 책에 그어둔 줄을, 메모를.
내가 읽은 책을 온라인 중고서점에 팔려고 그런다. 우선 책 제목으로 검색을 해서, 온라인 서점에서 매입을 하는지 살펴본다. 가격도 괜찮으면 책을 검사하기 시작한다. 나는 연필로, 마음 가는 대로 책에 밑줄을 긋고 낙서도 한다. 책을 접지는 않는다. 그림도 그리지 않는다. 밑줄은 연필로만 긋는다. 그건 다행인 점이다.
아내는 나한테도 지우라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냥 누군가에게 주는 게 제일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은 자꾸 집으로 들어오고, 어떤 책은 딱 한 번만 읽히고 마는 경우도 많다. 아내는 그 책들을 빨리 팔고 싶다. 그렇게 거의 반나절을 책을 깨끗하게 하는 데 쏟았다. 유치원생 딸도 엄마 옆에 앉아서 지우개질이다.
아내는 절대 내게 '와서 같이 좀 지워.'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도 슬금슬금 다가가 지우개를 들었다.
한 스무 권을 팔고 그 돈으로 아들이 좋아하는 '~에서 살아남기' 책을 샀다. 아내는 기분이 좋다.
헌데, 이제 내게 고민이 생겼다. 두 번 읽고 싶거나, 가끔 꺼내보고 싶거나,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들이 아닌 책들은 또 아내 손에 걸려들 텐데, 또 아내가 지우개를 들고 반나절을 보내게 만들고 싶지가 않다.
불편하지만 포스트잇을 꺼냈다. 웬만해서는 낙서도 하지 않는다. (이런.. ) '내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이 들면 그때는 낙서도 하고 밑줄도 팍팍 그을 수 있으려나. 아니다. 당분간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메모는 포기하고, 밑줄도 포기한다.
이렇게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너무 쩨쩨한가?
밑줄 긋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