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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wny Taewon Kim Jan 29. 2022

회색인간

리뷰

잿빛 그대로 하나도 매력 없어보이는 제목. 

원래도 소설은 잘 읽지 않으니, 다양한 추천이 없었더라면 결코 읽지 않았을 글입니다. 어쩌다 마침내 읽었고 신선한 발견이었습니다. 

김동식, 2017 


책은 기묘한 세팅의 짧은 이야기 24편을 엮어 두었습니다. 정말 짧아서 掌篇 또는 葉篇이라 불리우는 장르지요. 각 내용이 사방으로 튀기 때문에 개별 리뷰는 쉽지 않습니다. 딱 두가지 강한 인상이 들었습니다. 


첫째, SF적 상상력입니다. 젤라즈니나 테드창을 좋아하는 이유는, SF의 장르에 대한 매력을 알게 해줬기 때문인데요. 과학적 상상력으로 특이한 무대를 설치하고 거기 인간을 올려놓으면 매우 독특한 통찰을 얻게 됩니다. 가령, 어떤 이유로 영속성 가정이 깨진다면 어떨까요. 1년뒤 인류가 절멸한다든지요. 이제 장기적 노력은 의미 없지요. 그렇다고 꼭 비관적일까요. 사람들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두고 하고 싶은 일로만 하루를 채워 더 행복할지도 모르죠. 지금 익숙한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해볼 기회가 됩니다.


이 책은 SF와 유사하면서도 결이 약간 다릅니다. 정교한 과학적 세팅을 무시하는 대신, 상황에 집중합니다. 마치 그냥 오징어 게임이 열려 첫게임에 던져지거나, 지옥행 저승사자가 패악질을 한 상황 직후의 이야기인셈입니다.  


둘째, 그래서 이 작가가 관심갈 수 밖에 없습니다. 기발한 상상, 끝없는 자유분방함은 대체 어떤 이의 머릿속일까. 실은 24개 이야기보다, 엮은이가 설명해준 저자의 이야기가 더 반전이었습니다. 김동식은 집안이 어려워 공부를 접고 어려서부터 일을 했다고 해요. 최근엔 아연 주물공장에서 거친 일을 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소설이 너무 쓰고 싶어 검색엔진에서 글쓰는 법을 찾아 글을 무작정 썼습니다. 글을 오유에 올리며 주목을 끌었고요. 매번 베오베로 가면서 팬덤이 생겼고, 그들의 지지로 작가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엄청나게 틀린 맞춤법과 엉성한 작법을 댓글로 지적받고, 대댓글로 감사하며 하나하나 더 배워가며 점점 글이 나아졌습니다. 


전 사정 모르고 읽으며 '소재는 좋은데 글이 좀 아쉽다' 생각했었습니다. 글발이 투박하고, 전개가 단선적이며, 스타일의 자가복제도 좀 느껴졌고요. 허나 저자의 상황을 들으니 단박에 이해가 됐습니다. 상업작가가 자신의 처지로 글의 모자라는 품질을 보충할 순 없지만, 진행형 저자의 초기작을 본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습니다. 외려 장식없이 직진으로 문제의식에 돌진하는 그의 화법이 요즘 호흡에는 더 맞지 않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제가 특히 좋아했던 작품은 약간의 그림으로 오마주를 했습니다. 


Inuit Points ★★

부지런히 습작을 양산하는 미덕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떠오르게도 합니다. 재기발랄한 시공간의 창의는 테드창의 과작을 아쉬워하던 제게 즐거운 발견이기도 합니다. 좀 더 살을 붙이고, 글의 맵시를 부리면 꽤 대단한 작가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재미나서 좋아할만한 친구에게도 선물했습니다. 별 넷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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