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소설과 안 친한 편입니다. 읽는건 다른 흥미로운 책들이 많아서이고, 쓰는건 재주가 없어서입니다. 하지만 스토리는 다르지요. 스토리를 대하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것도 관심이 많습니다.
김연수의 책은 스토리텔링을 문장이라는 그릇에 담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김연수, 2014
책은 여러 낱글을 모아 창작론을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일필휘지로 썼다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글들이 잘 짜여져 전달됩니다. 이음새가 느껴지지 않는게, 천상 글쟁이 맞습니다.
책 내내 수필 같은 자기 이야기, 농섞인 아재유머 등이 수놓고 있지만, 이 책은 소설쓰기 창작법입니다. 책을 관통하는 공식이 하나 있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 - 얻지 못한 욕망)/세상의 갖은 방해 = 생고생
여기에서 캐릭터와 플롯이 나옵니다.
주인공은 독자의 감정이 이입되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왜?와 어떻게?를 반복하면서 배경스토리와 디테일을 통해 주인공의 인물상을 구체화해나갑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지죠. 세상이 뭘 뺏어가거나, 주인공의 장점이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플롯 포인트. '그러지 않았더라면' 여기게 될 순간이 나타나고, 이후 이야기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넙니다. 보통의 이야기는 두개의 단절적 플롯 포인트를 지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3막이 전형적 구조이고요.
캐릭터에게 일을 만들 때 두가지 질문이 유용합니다. '왜 하필이면?' 그리고 '설마?'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쌓아나가면 플롯이 됩니다. 주인공의 내적 변화화 성장을 메인으로 하는 캐릭터 중심 이야기와 서사로 끌어가는 플롯 중심의 이야기로 나뉘지요.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스토리텔링이라면, 소설 작법만의 특성이 있습니다. 문장입니다. 다른 이야기 형식과 분기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건 직접 설명하지 말라는겁니다. 주인공의 가치관, 욕망, 감정은 표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오로지 캐릭터의 표정, 몸짓, 행동, 말로만 드러나야 합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선, 흔치 않은 표현을 구사하려 각고의 노력을 해야한다는 점입니다.
결국 김연수의 말처럼, 소설가는 쓰는 사람이고, 소설쓰기는 고쳐쓰는 작업입니다. 플롯만으로는 좋은 소설이 나오기 어렵고, 단번에 좋은 소설이 써지지도 않습니다.
Inuit Points ★★★★☆
저자 김연수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소설보다 작법을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즐겁게 읽었습니다. 워낙 이쪽은 문외한이라 배우고 깨달은 지점도 많습니다. '문장의 일'의 아류인가 싶었는데 제목만 비슷하지, 이게 더 진쪽입니다. 책의 인용처럼, 소설가가 아닌 평론가, 문장 소믈리에는 '하렘의 환관'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지 않고도 살수 있다고 생각되면, 글을 쓰지 말라.
-릴케
이 문장이 좋아 따로 적었습니다. 김연수의 생각이기도 할테고, 프로페셔널의 자세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별 넷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