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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상한 시절입니다.
이런 책 제목은 밋밋하면서도 흔하지만, 그 레이 달리오의 신작입니다. 냉큼 읽었지요.
Ray Dalio, 2021
책은 방대하지만, 재미납니다. 입담 좋은 교수님의 세시간 연강 같습니다. 지나고나면 꽤 길지만 듣는동안은 몰입해서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이미 알던 이야기도 새롭게 들립니다. 그리고 어조는 내내 엄근진 + 아카데믹 합니다.
책의 골자는 이겁니다.
모든 나라에는 세가지 빅 사이클이 있다.
금융의 사이클, 내부질서의 사이클, 외부질서의 사이클.
이 모든 사이클은 부(wealth)와 그 등가물인 권력(power)를 목적하며 쌓아 올려졌다 무너져 내린다.
이 빅사이클을 이해하지 못하면 투자 실패는 명약관화하며, 운 나쁘면 생존도 보장하기 힘들다.
그럼 그 사이클은 어떻게 순환할까요. 달리오는 8가지 핵심 지표를 말합니다.
Education
Innovation & Technology
Competitiveness
Military strength
Share of world trade
Economic output
Financial center strength
Reserve currency status.
이런 요소야 누구나 떠오르는대로 주워 삼킬 수 있지만, 달리오의 차별점은 데이터 중심으로 접근한다는 점입니다. 각 지표의 하부 지표를 설정하고 최대한 정량적으로 통합합니다. 그리고 수백년에 걸쳐 지표를 표현하려 노력합니다. 설명력이 나올 때까지 변수를 가감하고 가중치를 조정합니다.
즉, 어느 석학이 통찰적으로 뽑은 몇가지 지표와 달리, 설명력이 좋도록 선별하고 제련한 공학적 결과에 가깝습니다. 브리지워터 헷지 펀드를 운영하기 위한 자료이다보니, 주먹구구를 피하려고 세심한 극도의 노력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사한 패턴이라면 합리적으로 예측도 가능합니다. 실제로 책에서 보이듯, 네덜란드, 영국의 명멸은 그 사이클이 매우 유사합니다. 이미 미국도 사이클의 70%까지 진행되었다고 하지요.
모든 사이클의 기반은 생산성입니다. 생산성이 좋으면 돈을 벌고 강해지고 기축통화가 됩니다.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면 기축통화는 경화에서 멀어지고, 점점 fiat가 되어가다가 내전, 전쟁, 자연재해 등의 사건이 계기가 되어 경제가 파탄나고 쇠락하게 됩니다.
연단위나 십년 단위로는 놓치기 힘든 힘의 부상과 몰락을, 백년 단위, 제국의 명멸이라는 매우 큰 틀에서 보면서 잊기 쉬운 교훈을 다시 새기게 한다는 점이 좋습니다. 경제적 만트라는 구간 내에서의 진실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예컨대,
빚지지 말아라
집사면 돈된다
주식도 안하고 뭐하냐..
이런 말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경제라는 렌즈로 다시 쓴 근대 서구 세계사이기도 합니다. 어느 면에선 21세기 자본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Inuit Points ★★★★☆
재미난 책이지만 별 넷 줍니다. 겸허하지만 단호한 선언적 스타일의 문장은 카리스마가 넘치고, 교조적 웅변엔 이끌림도 생깁니다. 실은 일반적 통념의 재진술입니다만. 물론 매우 엄밀한 데이터 노고는 독보적이고 논지의 전개는 아름답습니다만 메시지 차원에서 그렇다는 거죠.
그리고, 중국 관련한 예측은 꾸준히 지켜 볼 어젠다 같습니다. 제가 감히 달리오의 엄청난 데이터와 노련한 통찰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만, 데이터 중심의 접근이 주는 한계를 생각해 봅니다.
현재 미국에 대적하는 단 하나의 떠오르는 국가가 중국이라는 점에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하지만, 달리오의 생각 처럼 대만을 기점으로 한판 붙으면 미국이 쉽게 질까 상상해봅니다. 미국이 여전히 강하다 믿기보단 중국이 아직은 충분히 강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달리오 지표에서 경제와 군사력 이외의 질적 지표는 시간을 갖고 면밀히 지켜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내적 양극화[보이지 않는 중국]와 독재 시스템의 비효율, 부패의 자원 배분 왜곡[레드 룰렛], 경제력에 후행(lagging)하는 총합으로서의 시민의식 등이죠.
제 보기엔 문제가 있는데 그냥 동양적 정서로 퉁치고 넘어가는 진술은 변형 오리엔털리즘에 가까운 맹목이며 좋게 말해 낭만적 대중국 정서입니다. 물론 달리오 정도의 인물이라면, 알면서도 비대칭적이고 편향적인 미국 중심의 시각을 교정하고자 평형잡기(counter balancing)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그걸 헤아려가며 이해해줄 일은 아닌듯 하고요.
아무튼 이번 펠로시의 방문의 맥락을 미리 설명한 그의 탁견엔 찬사를 보냅니다. 오랜만에 생각도 많이하고 중간에 떠오르는 생각들도 정리하느라 바빴던, 재미난 독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