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골담길이 보인다. 이미자 '눈물의 묵호항구'

Q19. 기획자가 답하다. 묵호 논골담길

by 조연섭
눈물의묵호항구, 앨범표지_1966년 발표
묵호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한층 더 선명하게 그려낸 노래… 눈물의 묵호항구!

아~ ~ ~ 눈물의 묵호항구 떠나갑니다

정든 남편 무덤 앞에 마지막 통곡하고

옥수수가루 죽에 고픈 배를 움켜잡는

어린 자식 앞 세우고 고향 찾아 떠납니다

아~ ~ ~ 떠나갑니다


아~ 눈물의 묵호항구 야속합니다

고기잡이 떠난 남편 그 배는 소식 없고

망망한 동해바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한이 많은 가슴 안고 살 곳 찾아 떠납니다

아~ ~ ~ 떠나갑니다.


국민가수 이미자가 25세 되던 해 1966년에 부른 노래 눈물의 묵호항구 가사다. 박용재교수(극작가, 뮤지컬 감독, 단국대학교 대학원)는 눈물의 묵호항구 노래를 듣고 '가난, 죽음, 이별의 바다를 건너, 살 곳 찾아 떠나야 했던 슬픈 역사'의 기록이라고 노래 감상 소감을 말씀하셨다. 이미자 선생님 공연 단골 연주를 맡은 재즈 연주자 A모씨에 따르면 ‘눈물의 묵호항구’ 이 곡은 이미자 선생님도 발표될 당시 몇 번 부르고 불러 보지 못한 귀한 곡이라고 했다.

가난, 죽음, 이별의 바다를 건너, 살 곳 찾아 떠나야 했던 슬픈 역사_ 극작가 박용재

이 노래는 현재 논골담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묵호항 사람들의 삶과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 노랫말이다. 앳된 당시 이미자의 젊은 목소리로 ‘묵호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한층 더 선명하게 그려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미자 선생님이 부른 이 노래를 재 해석하는 다양한 시도가 있다.


2017년 11월 11일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가 동해시 동쪽바다 중앙시장에서 열린 인문학 콘서트에 참여해 바다 노래 동해 배경 음악을 소개하면서 이미자의 희귀 음반 '눈물의 묵호항구'를 선보인적이 있다. 최 평론가는 ‘눈물의 묵호항구‘는 당시 강연을 준비하면서 얻은 ’ 최대의 발견‘이었다고 했다. 묵호를 그리워하는 이미자의 눈물의 묵호항구는 1966년 발매됐는데 처음 듣는데도 구슬픈 선율이 정말 아름답다고 소개한 뒤 즉석에서 들려주기도 했다. 평론가는 동해시를 포함해 강원도와 관련된 옛 노래를 보면 대부분 도시로 올라간 젊은이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들이 많다며 강릉을 소재로 한 곡이 46곡, 속초 20곡, 동해 6곡, 묵호·삼척 5곡 등 강원도 지명 곡이 적지 않아 나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2022년 동해문화원은 연주 음원이 없어 군에서 갓 제대한 청년 작곡가 ‘송영’씨를 섭외해 직접 음악을 듣게 하고 절대음감으로 악보를 완성했다. 피아니스트 ‘서별’의 반주와 후배 가수 목소리로 10월 7일 동해문화원 주최로 개최된 강원해양문화대축전 개막식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이 행사는 해양문화를 키워드로 추진한 공모사업이었는데 해양배경 음악으로 창작곡과 함께 ‘눈물의 묵호항구’를 함께 소개해 큰 박수를 받았다.


같은 해 12월 북평원님답교놀이의 송사마당을 음악극 마당놀이로 만든 ‘동해랑’에서 등장하는 유랑극단에서 주인공인 ‘해랑’이에 의해 ‘눈물의 묵호항구’가 소개되기도 했다.


눈물의 묵호항구를 즐겨 듣던, 나포리다방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찾기 어려운 눈물의 묵호항구를 즐겨 듣던 다방도 이때 호황을 이뤘다. 당시 유명한 다방으로는 나포리다방, 장미다방, 양지다방, 상록수다방, 초원다방 등이 유명했다. 안묵호 게구석 입구에 있던 나포리다방은 커피를 날라주던 레지가 78명이 있을 정도로 번창했다. 이들 다방에서는 서울서 일류기술자를 데려와 원두커피를 직접 내려서 손님들에게 내놓았다. 아침에 계란 노른자위를 동동 띄워주는 모닝커피에서부터 위스키를 잔에 담아 내놓는 티(T)까지 팔았다. 당시 다방은 고급건달에서부터 사업가, 선원들이 즐겨 찾았다. 이들은 환담을 나누며 정보를 교환하거나 약속 장소로 이용했다.

묵호에 극장이 4개?

노래를 듣다 날씨가 궂은날이면 극장가도 초만원을 이뤘다. 묵호에는 동호극장, 묵호극장, 문화극장, 보영극장 등 극장도 4곳이 문을 열었다. 신성일 엄앵란 주연 영화와 차중락의 ‘낙엽 따라가 버린 사랑’등 멜로물이 들어오면 극장가는 술집아가씨와 청춘남녀로 성업을 이뤘다.


묵호는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불야성의 시대에 흥청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배고픔의 고통을 참아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묵호항어판장과 어시장에 쓰레기통에 버려진 오징어 내장(이까여리)을 뒤져야만 했다. 시장에 버려진 배추 잎을 주워 오징어 내장과 함께 끓여 먹으며 배고픔을 참아야만 했다. 그리고 묵호항역 적탄장에서 임항철로에 떨어진 가루탄을 훔쳐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다락방 자취생은 주인이 끓여 먹던 5원짜리 라면 냄새를 맡으며 허기진 배를 움켜잡아야만 했다. “

강원도민일보 전제훈 기자 기사 중에서

눈물의 묵호항구는 바다와 항구 문화 등 지역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를 한곡의 노래로 표현한 가치 있는 발견이며 앞으로도 뮤지컬 제작 등 다양한 재해석 시도가 필요하다. 가수 이미자는 1941년으로 데뷔곡 열아홉 순정이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외모지만 노래만큼은 최고였다. 타고난 미성에 꾸밈없는 그녀의 애절한 창법은 듣는 이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로 추앙받는 이미자에게는 엘레지의 여왕, 살아있는 트로트의 역사, 국민가수라는 찬사가 늘 따라다닌다.대표 곡은 역시 ‘동백아가씨’ 최초로 100만 장 음반판매시대를 연 영광스러운 노래이건만 한동안 왜색(일본풍) 가요로 금지의 낙인이 찍혀 깊은 좌절을 안겨준 곡이기도 하다. 하지만 40여 년 동안 500여 장의 음반과 2,000 곡 넘는 노래를 발표해 한국 최다음반, 최다 취입곡 가수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이미자는 우리 가요사상 최고의 여가수중 한 명이다.

눈물의 묵호항구 앨범 뒷면
Q. 오종식_동해문화원장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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