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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Sep 05. 2024

가을과 걷고 싶었다. 묵호 논골담길!

120. 동쪽여행

The 푸르고 높은, 가을 논골담길!

3일, 가을 문턱에서, 모처럼 묵호 '논골담길'을 걸었다. 논골담길은 동쪽나라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묵호진동 묵호등대마을을 기준으로 앞뒤 4개의 길로 조성된 길이다. 가을의 중심인가? 오늘따라 논골에서 본 하늘은 높고 푸르다. 묵호항과 동해를 만나는 논골담길의 가을은 에메랄드 빛 바다와 마주하는 환상적인 캔버스였다. 이 길은 동해의 묵호등대마을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좁다란 골목들이며, 지역의 생활문화와 이야기가 녹아있는 곳이다.

묵호를 내려다보며 논골 3길을 걷다. 사진_ 부두완

이날은 멀리 제주에서 찾아온 기자 취재 일정에 합류했다. 사실을 바탕으로 나의 생각을 입히며 현장이야기와 생생한 사진을 담는 르포 취재를 나온 아시아투데이 부두완 제주본부장과 함께한 흔치 않은 시간이다. 묵호등대 종점에 도착, 우리는 그곳에서 등대가 뱃길을 안내했다면 직접 묵호등대를 세우는 일, 논골담길을 안내하는 일에 참여하고 등대를 지켜온 손만택(남, 84) 어르신을 만났다. 6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킨 분으로 논골담길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마을의 산증인이다. 그분과의 짧은 인사가 마을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원동력임을 깨달았고 여행자들도 늘 문안인사처럼 만나는 첫 손님이다.

인사동 전시 준비 중인 화가도 만나

우리는 논골 3길을 따라 걸으며 입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사하고 밝게 웃는 한 수묵화 작가와 작가의 지인을 마주쳤다. 그중 작가는 묵호의 밤과 낮을 화폭에 담아내며, 그 작품들을 올가을 인사동에서 전시할 예정이라 했다.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논골담길의 밤과 낮의 인사동 출장? 반갑고 기대감이 커 꼭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길의 24시간과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옮겨 담고 있다는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그의 아쉬움도 함께 들었다. 작품을 공개하고 토론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그의 말은 예술가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예술은 자유로운 공간에서 피어나는 법인데, 그가 느낀 제약이 안타까웠다.

잊혀 가는 논골담길?

2010년 동해문화원을 비롯해 각 기관, 단체가 힘을 모아 조성한 이 길은 묵호를 재해석하는 이유이자, 마을의 고유한 삶과 역사를 간직한 복제할 수 없는 문화였다. 그 문화는 조금씩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논골의 원형이 남아있는 2길과 3길을 둘러보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방치되고 있는 무너진 담벼락,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풀들은 마을이 조금씩 잊혀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아름다워야 할 이 길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왔고,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물론 저는 논골담길을 '민관 거버넌스로 지속성을 유지한 사례'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사회적 현상으로 반영한 소논문을 쓰기도 했었다. 현장에서 잠시 아쉬웠던 이유는 오늘날 묵호가 재도약을 준비 중인 중심은 2010년부터 진행한 논골담길이 원형이 아닐까 생각하며, 논골담길에 대한 무관심, 묵호의 주민의 삶과 지역의 정체성이 담긴 그 원형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기항지, 묵호!

하지만 그 속에서도 묵호의 이야기는 2길에서 묵호극장과 이어지고 우리 모두의 묵호에서 만났다. 만복이와 원더할매의 이야기는 아직 논골담길이 희망이 있음을 알려주는 현장이었다. 가난과 희망을 함께 품었던 묵호의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역사를 길 위에 새기고 있었다. 묵호극장가에 도착했을 때, 묵호가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기항지” 였음을 상기했다. 이곳에는 한때 묵호, 보영, 문화, 동호극장 등 4개의 극장이 있었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희망과 꿈을 꾸었던 곳이다.


가을과 나는 논골담길에서 희망과 쇠락이 공존하는 풍경을 마주했다. 이 길은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발길이 끊기지 않도록, 깊이 있는 이곳의 이야기가 이어지길 희망한다. 걸음마다 느껴지는 가을의 서늘함 속에서, 저는 논골담길의 무게를 마음에 새기며, 잠시 뒤면 아름다운 노을에 이어 별빛 내린 이 길의 멋진 밤을 기대하며, 가을에 문득 걷고 싶었던 논골담길 오늘 걷기를 마무리했다.

논골 3길 방향으로, 사진_ 부두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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