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3. 혈액종양내과 실습
지난 겨울, 한 언론사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난 한 기자님은 취재 자체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매일 글 쓰는 일이 루틴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조금 힘들다고 하셨다.
화요일에는 처음으로 내가 케이스를 맡은 환자를 직접 보러 갔다. 환자분은 CML(만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병을 앓고 계신 분인데, 실습학생이라고 신분을 밝혔음에도 흔쾌하게 이것저것 대답도 잘해주시고 신체진찰에도 기꺼이 응해주셨다.(실습과정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케이스 발표는 해당 환자를 초진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쓰인다-처음 보았을 때 신체 소견, 검사 소견, 그로 인해 추정되는 진단, 그 진단들을 감별하기 위한 다른 검사들, 최종 진단을 포함하는 식이다)
내 기억 속 백혈병은 '가시고기'라는 책 안에서만 떠다니던, 그런 존재였다. 아버지가 처음에는 신장을 팔아서라도, 나중에는 아들을 위해 각막까지 바치게 한 병. 백혈병은 크게 병의 중한 정도가 급성, 만성인지, 문제가 되는 세포가 골수성인지, 림프성인지에 따라 4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CML(만성, 골수성)은 치료제의 표적이 되는 대상이 하나밖에 없어 예후가 매우 좋은 편이다. 그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내 환자분은 마냥 밝기만 하셨다.
혈액종양내과의 입원병동에는 단순히 혈액암 관련 환자들만 계시지 않다. 위암이나 대장암이 온몸으로 전이된 분들, 코 뒤쪽 종양이 왼쪽 눈을 침범해 실명까지 된 경우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이 계신다. 그런 분들 사이에서 아침 회진을 돌 때마다 가끔씩 눈물이 핑 돌 때가 많았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도저히 밥을 못 드시겠다고, 너무 괴롭다고 하실 때마다 교수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손을 꼭 잡으시며 힘내시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구토, 오심, 식욕부진과 같은 위장관 부작용이 심하다고 곧바로 TPN(정맥영양요법의 방법-팔에 링거 같은 것으로 식사를 대체하는 것)을 시행했다가는, 나중에 다시 입을 통해 식사를 시작할 때 소화기계, 예를 들면 간담도에 담즙 정체 같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더욱이 여러 약물을 이미 투여받고 있는 암환자에게는 이미 투여되고 있는 약물들이 단백질이나 지방 제제와 섞이게 되면 침전이 생길 위험도 있어 항상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의 사망원인이 췌장암이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췌장은 몸속 깊이 자리 잡고 있어 조기진단도 어렵고, 췌장암의 경우에는 상당히 진행되고 나면 그제야 배가 아프면서 등까지 번지는 통증이 느껴지게 된다. 바로 그런 증상으로 남편과 외래에 오신 한 40대 여성 환자 분이 계셨다. 한참 설명을 듣고, 몇 가지를 계속 되묻고 나서 문으로 가는 몇 안 되는 발걸음 중에 남편은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췌장암은 5년 생존율이 10%가 채 되지 않는다.
의사 국가고시 실기 항목에는 '나쁜 소식 전하기'라는 항목이 있다. 백혈병을 투병 중인 환자에게 여명이 3개월 남짓하다는 검사 결과를 통보하고 호스피스 치료를 권유하는 식이다. 시험을 치며 모의환자인 걸 알았음에도 말을 떼기가 너무 힘들었다. 특히나 치료를 열심히 받았으니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는 환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모의환자를 보는 학생도 그런데, 실제 진료를 보는 선생님들의 마음은 어떨까.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본 선생님들 중 환자 앞에서 진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들은 단 한 분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 선생님께 왜 혈액종양내과를 선택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왜 그런 걸 묻냐 싫은 티를 내면서도 "항상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며, 매일 자신을 돌아보게 해 줍니다."라고 답해주시던 진지한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