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며칠 동안 꽂혀서 반복하고 있는 놀이 몇 개를 정신없이 신나서 하다가 더 늦기 전에 학교 옆 마을의 이발소로 친구 몇 명을 데리고 간다. 이발소는 동네의 끝 쪽 모퉁이에 있는데 의자가 온통 나무로 되어 있었고 순서가 될 때까지도 친구들과 뛰어노느라 앉아서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모퉁이 이발소에 쌀 한 가마니를 주고 정기적으로 가서 머리를 깎게 했다. 머리가 긴 것이 무슨 죄인지 길 사이 없이 때 되면 가서 깎고 오라 하신다. 군소리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얌전히 깎으러 갈 수밖에 없었는데 선택의 여지가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발소 아저씨는 늘 하던 대로 앞머리, 옆머리, 뒷머리를 순서대로 자르고 뒷꽁지는 거품을 내어 면도날로 마무리한다. 동그란 머리가 또다시 완성되었다. 그리고 다시 은호는 친구들에게 돌아가서 놀이에 합류한다.
은호는 어릴 때 딸들 중에서도 얼굴이 하얗고 커다란 눈이 특별하게 예뻐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보곤 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몰래 훔쳐 가려했다는 전설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고모는 늘 같은 말을 한다. 어릴 때 그렇게 예쁘더니만 이라고 말을 흐리면서.
그런 은호는 자라면서 점점 짧은 머리 선머슴처럼 뛰어다니고 놀이에서의 기술도 갈수록 나아져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빛을 발하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는 학교놀이를 하며 선생님이 되었다가 아카시아꽃이 지나가는 이의 코를 붙잡을 때쯤이면 은호와 친구들은 동네어귀에 있는 바위들이 방처럼 나뉜 곳에서 각자의 구역을 집으로 삼고 풀과 꽃을 뜯어서 소꿉놀이를 한다. 문방구에서 파는 소꿉놀이 완구 세트는 없었지만 널려있는 돌과 나무들이 찧고 빻고 하는 도구와 그릇이 되어 주었다. 해가 지도록 엄마가 되었다가 아기가 되었다가 하는 일이 지겨워지는 날은 다 같이 모여 큰 나무를 진삼 아서 진놀이를 하고 줄넘기를 하고 숨바꼭질을 한다. 산으로 들로 안 가본 곳으로 간혹 미지의 탐험을 떠나기도 하며 놀이의 레퍼토리를 완성해 간다.
매일매일 즐거운 모험과 친구들의 고함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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