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계절이 던져주는 파편은 때로는 색깔로 때로는소리로 온다. 산에서 바람이 불 때 시윈한 소리와 함께 나뭇잎들의 색깔비가 내리는 계절이다. 산아래에서 초록나무를 보고 올라왔는데 산등성이에 있는 작은 사찰을 감싸고 있는 병풍같은 나무들이 단풍이 들었음을 요란하게 뽐내고 있다. 쨍한 빨강의 단풍잎들과 누렇거나 갈색으로 익은 상수리잎, 황금벌판과 색을 맞추어 반짝이는노란 잎들로 언제나 시선을 빼앗는 은행나무는 이 가을의 주인공임을 여실히 보여주며 오래 서 있던 그 자리를 지킨다.
가을이 깊게 숨을 쉬는 골짜기의 풍경이다. 초록의 나무일 때 벌써 예정된 시간의 약속은 무서우리만큼 정확한 약속과 계산된 우주의 법칙을 험난한 온난화의 시대에도 아직은 여전히 지키고 있다. 이 그림같은 색의 향연이 전설이 되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많은 시와 글이 아쉬운 한숨을 내쉴 것인가. 아름다운 날은 지는 날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주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