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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sh Oct 12. 2024

풍경

저 세상 풍경을 만나다

겨울 시리즈


출근길 갑자기 흩날리기 시작하는 눈발에 당황스러움을 뒤로하고 눈 내리는 길을 내달리다 갑자기 눈앞을 가로막는 하얀 세상에 차를 세우고 만다.

금없는 시간에 나를 불러 세우는 한 겨울의 원더랜드에 나는 잠시 당혹스러웠다가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아지는 이야기를 만난다.

어느 날 갑자기 친구의 성화로 눈 오는 지리산에 오른 적이 있다. 대학교 4학년인가 화통한 성격의 친구가 수업 끝나고 지리산에 가자고 한다. 겨울 코트에 단화를 신고 온 터라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오래가지 못해 그 친구의 추진력에 이끌려 첫 지리산 산행길에 나서 본다. 발도 시리고 춥기도 했지만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자 그날도 이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가 곧 지금껏 보지 못한 함박눈으로 화면전환 같은 새로운 세상을 순식간에 만들어 낸다. 눈꽃들이 겨울나무에 이 세상 이 아닌  듯 내려앉고 전방의 모든 사물이 하얗게 변하면서 살짝 현기증이 나기도 한다. 추운데 쓰라리게 아름답구나. 이런 날씨에 등산을 나선 우리처럼 무모하지는 않은 사람들이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 오이를 나눠 주고 김밥 건넨다. 등산할 때는 이런 걸 챙겨야 하는구나 깊은 가르침을 얻는다.

모든 여유 장비를 기꺼이 내어 준 한 등산객 덕분에 말도 안 되는 시작을 한 우리는 나중에는 겨울을 사랑하게 되었다. 단화에 코트를 입고 거기를 어떻게 간 건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처음 보는 이들과 인사를 주고받고 끝을 알 수 없는 선의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여행이었다.

시골길을 따라 장거리 출퇴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집에서 일터까지 가는 길을 따라 눈을 뗄 수 없는 풍경에 운전을 멈추고 내려 본 적이 그때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강이 주는 아름다움은 어스름한 새벽안개가 끼거나 비 온 뒤 운무 속에서 눈이 다시 뜨이는 듯한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준다. 적당한 비율의 나무와 풀들이 균형을 맞추어 바위에 어깨를 기대면 달력 속의 그림을 만나게 된다.

사진에 담아서 두고두고 꺼내보리라 안개가 걷히면 날아갈 그 순간이 아까워 서둘러 멈추어 사진을 찍으려 해 보지만 몇 번을 찍어도 눈앞의 풍경을 담을 순 없다. 포기하고 이 출근길이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그 자리를 벗어나 가던 길을 이어간다.

담을 수 있는 사진을 찍지 못했기에 사진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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