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 [기억되지 않는 대화들]의 첫 번째 이야기
4. 생존은 선택 사항입니다
토요일 저녁이 찾아왔다.
저녁 내내 민준은 식사에 집중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선 이미 이후의 시나리오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며칠 동안 상상했던 순간들이 이제 현실이 되려는 찰나였다. 서연도 어쩐지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아마도 그녀도 이 특별한 데이트가 주는 긴장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
해가 저문 도심의 골목. 낡은 상가건물로 향하는 동안 서연은 민준의 팔을 살짝 잡았다.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으스스한 골목 분위기 때문일까. 하지만 중요한 건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기대어 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계획했던 대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삐걱이는 계단을 올라 4층에 도착했을 때, 복도 끝자락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방탈출 카페의 입구는 마치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처럼 보였다. 낡은 금속 문 위로 '<스페이스 오디세이 2024>'라는 간판이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었다.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안내자가 그들을 맞이했다. 검은 옷을 입은 그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분위기를 풍겼다. 창백한 피부, 움직임 하나하나가 부자연스러울 만큼 정제된 모습. 마치 오래된 인형처럼, 그의 존재 자체가 이 공간과 하나가 된 듯했다.
안내자는 말없이 벽을 가리켰다.
'모든 지시를 따를 것. 생존은 선택사항입니다.'
민준과 서연은 서로를 바라보며 살짝 웃음을 참았다. '컨셉에 충실하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미세한 불안감이 스며있었다. 마치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느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