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락교시대 09화

동물들의 축제

by 차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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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동물들의 축제---생 상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하게 된다。

--- 조지 산타야나(미 철학자、시인)



“10여 년 만에 고향에 왔구나。”

아버지가 잠깐 들렀다。

“곧 부자가 상봉하게 될 거다。그 때 다시 함께 내려오마。”


부자 상봉、전쟁이 아닌 인간 탐욕에 의해、더구나 낳은 어머니나 그 가족에 의해 억지로 떼어져 있어야 했던 3년이 이 한 단어로 일축된다。'그래도 아이는 엄마가。。。' 하지만 예외가 하필 왜 내 아이와 나에게。


어느 누구도 탓하지 말자。

탓을 하려거든 다 내 탓이다。

그렇다고 나를 위축시키지 말자。


마음을 다져야 했던 3년、내 탓으로 돌리는 일은 과거를 지우는 것이다。과거를 지워야 미래가 달라진다。


구림초등학교 2학년으로 전학 올 아들 맞을 준비를 한다。한동안 한 방에서 함께 지내겠지만 아들 방을 따로 마련한다。그 동안 오면 읽어 주겠다고 모아 둔 동화책들을 마련한 아들 방 책장에 꽂아놓다가 제목으로 눈을 잡는 동화가 있어 펼쳐 읽는다。<하늘을 나는 거북이> 아들에게 들려주듯 소리내 읽는데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아빠、 거북이는 날개가 없잖아' 이렇게 나누어야 할 시간은 없었다。아들에게 동화 읽어 주기、얼마나 하고 싶었던가。읽어 주며 같이 들으면 좋을 음악을 튼다。생 상스의 <동물의 축제>다。사자、 닭、 당나귀、이 노래에도 거북이가 출연한다。코끼리、 캥거루、물고기들의 어항、뻐꾸기、새장 속의 새들、동물만의 축제가 아닌가 보다。생 상스는 왜 피아니스트도 담으려 했을까。작곡가도 참가하고 싶었던 축제에 또 화석이라니。。。 시간을 넣고 싶었나 보다。시간 없는 축제는 없다。그 시간은 꼭 현재만은 아니다。먼 태초의 과거도 축제에 초대한다。백조를 끝으로 동물의 축제는 끝을 맺는다。생 상스가 악기들로 동물들을 표현했듯이、나는 아들에게 동화 하나를 지어 부자상봉의 축제를 준비한다。남의 동화보다 아빠의 아들을 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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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아기주머니를 가진 캥거루를 보고 싶어。”

헤어질 무렵、내 배를 꼭 안고 이런 말을 했다。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여섯 살 꼬마는 간절했을 것이다。그럼에도 아들과 아빠는 강제로 떼어지고 말았다。

“돌아오게 돼 있다。”

아버지의 말대로 됐지만 3년이 걸렸다。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와 쓴 3년 전에 자작동화 한 편을 노트북에서 찾는다。



캥거루는 빵을 좋아해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인 2016년에 동물원에서 보면 <캥거루 탈출사건>이, 도시에서 보면 <캥거루 습격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순한 캥거루가 왜 탈출했고 어디를 습격했는지 궁금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동물원 안의 캥거루 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떠올려보겠습니다. 예. 그렇지요? 두 종류의 캥거루 사는 곳이 생각납니다. 하나는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캥거루답게 껑충껑충 맘껏 뛰어다니는 야생 캥거루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좁은 철창우리 안에서 밖을 향해 앉아 있거나 졸고만 있는 동물원의 캥거루들입니다. 한 곳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또 다른 한 곳은 갇혀 답답할 것 같습니다. 같은 캥거루인데 그들이 사는 집은 무척 다릅니다. 지금 아쉽게도 우리가 볼 수 있는 캥거루는 동물원 우리에 갇힌 캥거루뿐입니다. 천 년 전, 옛날에도 그랬을까요?

그 때 어디서, 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제 천 년 전, 2016년으로 거슬러 역사여행을 해보겠습니다.


주의사항

캥거루를 정말 사랑한다면,

빵이나 과자를 주지 마세요.

이것들을 먹으면 캥거루가

아프답니다.

-캥거루 보호원 원장


캥거루 탈출은 동물원에서 걸어놓은 이 안내문 때문이었답니다.


“캥거루는 풀이나 당근보다 빵을 좋아해.”

어느 날부터 너도나도 빵을 가져와 캥거루에게 줬습니다. 캥거루는 빵만 먹으려하지 전에 먹던 풀을 뜯으려거나 당근을 씹어 먹으려하지 않았습니다. 빵맛을 알기 전에는 당연히 풀 등 채소를 먹었지요. 그런데 빵맛을 알고 난 뒤부터는 채소보다는 빵이 더 구수하고 더 부드러워 더 맛있습니다.

“캥거루가 좋아하니까.”

빵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만 다가오니 캥거루를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사람은 동물원으로의 여행 출발 때부터 빵을 챙깁니다. 빵을 먹고 있을 때는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빵 더 달라고 바싹 달려듭니다. 이러니 캥거루와 함께 멋진 기념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었습니다. 더 가까이 다가오니 셀프샷도 충분히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진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너무 귀여워. 어떻게 이렇게 친구 같이 붙어서 찍을 수 있었니? 사진, 정말 잘 나왔다.”

생각하고 주저할 것 없이 대답합니다.

“빵이면 다 돼!”

이러기 전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캥거루에게 빵을 주면 안 돼요.”

“왜요? 캥거루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입이 좋아하다고 몸에도 좋은 건 아니에요. 달콤한 맛은 캥거루를 망가트립니다.”

“잘난 척은. 그러면 당신은 캥거루가 싫어하는 당근이나 주세요. 나는 캥거루가 좋아하는 빵을 줄 테니까. 캥거루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참견은 참!”

“뭐라고요? 당근을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아무튼 빵은 캥거루에게 해롭다니까요.”

“정말 못 말리겠네. 각자 알아서 주면 되잖아요. 당신이 여기 입장료 내줬어요? 잘난 척은 혼자서 다해! 내 자유를 막을 생각일랑 하지마세요.”

당근? 빵? 이 싸움에 누가 승리했을까요?

빵이 이겼답니다. 캥거루가 빵이 더 좋다는 걸 어떻게 말린담.

이후 동물원 측에서도 캥거루먹이로 빵을 따로 준비해야할 지경에 이릅니다.

“초원의 이 많은 풀들은 어쩌지?”

캥거루가 풀을 뜯어먹으려하지 않았거든요. 넓은 초원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뛰어다니지 않으니 작은 우리로도 충분했습니다.

“초원에 빵 만들 밀이나 심자.”

캥거루는 빵을 갖고 오는 사람만 기다리며 점점 게을러졌어요. 움직이려하지 않으니 새끼를 낳아도 건강하지 않아 다 자라지도 못하고 죽곤 했어요.

동물원에선 뒤늦게,

“안 되겠다. 이러다가 캥거루가 멸종해버리고 말겠는걸.”

이래서 <주의사항> 안내문을 걸게 되었던 거지요.


주의사항

캥거루를 정말 사랑한다면,

빵이나 과자를 주지 마세요.

이것들을 먹으면 캥거루가

아프답니다.

-캥거루 보호원 원장


“캥거루를 정말 사랑한다면?”

“정말이라고?”

“정말 사랑?”

캥거루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정말 캥거루를 사랑했습니다.

“좋아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니네.”

“빵 대신 풀과 당근을!”

다시 풀을 뜯어먹고 자유롭게 살던 그전으로 돌아가리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캥거루들은 풀이며 당근을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맛좋은 빵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지요.

‘빵 아니면 죽음을 달라’

빵만 찾는 캥거루들은 채소를 거부했습니다. 오로지 빵만 찾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귀가 쫑긋쫑긋하고 눈이 말똥말똥한 캥거루가 다른 캥거루들에게 동물원 높은 담 너머의 도로를 달리는 트럭 하나를 턱으로 가리켰습니다. 트럭엔 먹음직스러운 빵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다른 캥거루들이 모두 목을 길게 위로 뽑으며 끄덕거립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동물원 담장 밑에 캥거루들이 다 모였습니다. 몇 마리의 캥거루들이 담장 벽을 따라 고개를 수그리고 나란히 섰습니다. 조금 후 어제 본 빵그림트럭이 지나가자 담장 벽에 줄 지어 수그리고 있던 캥거루의 등을 타고 날쌘 캥거루들이 담을 뛰어넘기 시작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트럭을 따라 갔습니다. 빵그림트럭은 도시의 빵집을 돌며 빵을 배달하는 중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십여 일을 굶은 캥거루들이 빵이 동네 빵집으로 옮겨지기도 전에 빵에게 달려들었니다. 배가 불러올 정도로 먹어댔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했습니다. 구수한 빵 냄새가 물씬 나는 빵집으로 또 돌진해 들어갔습니다. 배달될 빵을 기다리던 시민들이 놀라 달아나고 도망쳤습니다.

“순한 캥거루들이 왜 저래?”

캥거루들은 성난 멧돼지 같이 코를 킁킁거리고 거리를 쏘다니며 빵집을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시내의 모든 빵집이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동물원은 물론 시내 소방차들이 다 동원돼 막아보려 했지만 성난 캥거루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속수무책에 한 소방관이 꾀 하나를 내놓았습니다.

“캥거루를 빵으로 유인합시다!”

다들 환호하며,

“좋소. 좋아. 바로 그거야!”

캥거루들을 동물원에 다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도 빵이었습니다. 빵 굽는 기계를 트럭 뒤 짐칸에 싣고 트럭에서 빵을 구웠습니다. 더 진하게 풍기라고 대형선풍기까지 틀어 캥거루 쪽으로 빵냄새를 보냈습니다. 캥거루는 정신없이 빵 굽는 트럭을 따라 붙었습니다. 캥거루끼리 부딪히고 넘어트리며 서로 싸워댔습니다. 거리는 온통 난장판 캥거루들로 혼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캥거루들은 오로지 빵 구워대는 트럭으로만 돌진했습니다.

“문 열어, 어서!”

동물원의 큰 문이 열리고 빵 굽는 트럭을 바짝 뒤따르던 캥거루들은 자기들이 어디로 들어가는 지도 모른 채 트럭꽁무니만 좇아 내달렸습니다. 마지막 캥거루가 동물원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어서 빨리 문 닫아!”

동물원으로 들어온 캥거루들은 좇아온 빵트럭에는 냄새만 있을 뿐 빵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빵 아니면 죽음을 달라.”

잠시지만 다시 빵맛을 되찾아 맛본 캥거루는 더욱 입을 꽉 물었습니다. 빵 외에는 먹으려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동물원 측에서 회의를 열었습니다.

“방법이 없어. 빵만 찾는 캥거루를 격리시키는 수밖에!”

넓은 초원 대신 철창으로 사방이 꽉 막힌 좁디좁은 우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철창 우리 속으로 들어간 캥거루는 넣어주는 빵만 받아먹고 살아갔습니다. 빵만 받아 먹으려하지 풀을 뜯기 위해 걷거나 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웅크리고만 앉아 빵 기다리는 캥거루에게 다른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빵캥거루’

초원에서 뛰놀며 풀을 뜯어먹고 사는 날렵한 캥거루와는 달리 빵처럼 둥글둥글 뚱뚱한 빵캥거루가 새로 생겨났습니다. 돼지처럼 생겨 캥거루가 아닌 다른 동물 같아 보였습니다. 아기를 안고 뛸 이유가 없는 엄마 빵캥거루는 아기주머니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 아기주머니 자리는 배불뚝이처럼 불쑥 튀어나와 빵주머니로 진화됐습니다. 아기를 보호하던 새끼주머니는 빵만 먼저 서로 차지해 넣어둘 빵주머니로 바뀌었던 거지요. 배만 보면 복어 같아 보였어요. 놀리듯 ‘빵복어’라고도 부르는 사람이 있었지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이제 캥거루 철창 우리 앞에는 당연히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걸려 있습니다.


빵만 던져주세요.


갇혀있어도 행복해보일 때는 오로지 던져주는 빵을 받아먹을 때뿐입니다. 이때의 캥거루 표정을 보면 이런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오물오물거립니다.

‘너희가 빵맛을 알아?’

빵캥거루를 보는 사람들은 얼굴은 웃으면서도 가슴은 슬퍼집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누가 캥거루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정말 사랑이란 것은 무엇일까?’

캥거루 우리 앞에서 한 아이가 얼굴을 갸우뚱하며 엄마에게 묻네요.

“엄마, 옛날엔 어떻게 엄마캥거루가 아기캥거루를 배에 안고 뛰어다닐 수 있었지?”


인간의 알량한 호의가 오히려 동물을 망가트린다는 우화에는 아들에 대한 아빠의 우려가 담겼다。쓸데없는 걱정、기우이길 한편 바라면서。。。


“이 음악、 동물사육제 아님니껴?”

<소녀의 기도> 부부가 <브람스의 짝사랑>을 찾아왔다。봉길의 사투리가 구수하다。

“안에도 그림을 그려 넣을라꼬예? 이유가 있지 싶다。”

아들 방이라는 걸 알고 부부가 더 반긴다。

“아주 아주 잘 됐꼬마。그래서 동물인갚네예。”


온 세상 동물들을 다 그려 넣으려면 벽 두 개로는 부족하겠다며 스마트폰을 뒤져 그림 하나를 내보인다。하마 위에 하마、네 마리의 하마들이 채곡채곡 쌓여 사다리 같다。키 큰 기린과 키를 맞췄다。맨 위 하마가 기린과 입을 맞추고 있다。달팽이、 물고기、 새들도 한 장의 그림에 담겨 있다。동물의 축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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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 정말 좋은데요。”

“그지예? 우리 다 함께 그려 보입시더。”

“남의 그림인데 괜찮을까요?”

“아들을 위해 빌려오는 건데 뭐라 할라꼬예。괜찮습니더。내가 책임지지예。”


봉길 아내 영임도 스마트폰의 그림 하나를 손가락으로 밀어 확대해서 보여 준다。

“이건 안 될까예? 벽에 그려 넣기엔 적절치 않은가예? 난 이 그림、 참 좋던데예。넘어진 덩치 큰 호랑이의 발을 잡아 일으켜 주려는 자그마한 새! 예쁘지 않아예? 우짜지? 하는 작은 새의 애절한 마음이 들어 있잖아예。애닲은 표정의 호랑이 샛눈도 귀엽고예。”


이런 걸 카톡의 프로필 배경 사진이라고 하나? 자신의 얼굴이 아닌 '희망 사항'을 대신 넣었을 터、아마도 힘든 시간을 보냈던 부산시절에 올린 게 아닐까。그 그림처럼 '비록 지금 나약하지만 나도 일어나서 좌절하고 넘어진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마음이려니。흑백 세밀화다。


“물론 그릴 수 있지요。근데 이 집 안 좁은 곳에 그려 넣기엔 너무 아깝네요。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이면 더 좋을 텐데、 어떠세요?”


이장인 양순 씨와 상의하기로 했고 이지음 순창군수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또는 소문을 듣고 구림면 벽화를 보고 갔다고 말이 들린다。그 뒤 지원금 얘기가 나왔다。관청에서 늘 하듯이 이름이 먼저 떠돌아다닌다。'클래식 음악거리' 주민들은 모였고 '군청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것인가?' 라는 주제로 주민 토론을 했다。


“지원금을 받게 되면 관에 끌려간다。”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소소하게 욕심내지 말고。。”

주민들 다수의 생각이다。주민의견이 전달되자 군수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지원하되 군에선 전혀 참견하지 않겠다。”

몇 점의 벽화로 외지에서 관심을 갖게 되고 이곳에 와서 살고 싶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양순 씨가 나섰다。


“양보다 질이 중요하제。아몬、그 질이란、얼마나 우리 마을을 사랑하느냐에 있다。진심으로! 안 그려?”


모두 환호했고 군수 역시 반겼다。구림면 입구가 마땅하지 않겠냐는 군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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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그림 하나가 나 하나만 살린 게 아니네예。어쩜 더 많은 분들이 힘을 얻어서 나처럼。。”


많으면 더 좋을 사람들 중에 나는 내 아들도 끼워 넣는다。어른들로 인해 몸도 마음도 다 망가져있는 내 아들도 그럴 수 있다면。。。 지금은 바닥에 넘어진 호랑이일지 모르지만 작은 새의 손에 이끌려 다시 되살아날。넘어져 있는 호랑이는 아들이고 일으켜주려고 내민 아빠의 손。지금 비록 미약하나마 이 마음이라면 언젠가는 꼭!


군에서 구림면으로 들어서는 곳에 입간판을 세워 줬다。이 곳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림은 여러분들이 알아서!”


부자상봉의 날에 그 그림을 볼 수 있겠지。보면서 아들과 동물맞추기놀이를 해야지。생 상스의 <동물들의 축제>를 크게 틀어 놓고、

“이 노래 안에는 많은 동물들이 들어 있단다。이 동물들을 잘 기억해 두렴。사자、수탉과 암탉、당나귀、거북이、코끼리、캥거루、어항 속의 물고기들、귀가 긴 동물도 있단다。뻐꾸기、그리고 새장 안의 새들、백조。그리고 동물은 아니지만 피아니스트도 있고 화석、알지? 이것들에 대한 노래를 이제 듣게 될 거야。열네 곡을 나눠서 들을 건데、한 곡이 끝날 때마다 어떤 동물을 노래하고 있는지 우리 맞춰보기 해 보자!”


벽화 앞에서 아빠는 아들 맞을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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