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락교시대 10화

볼레로

by 차쌤
10-1.jpeg

10。볼레로 --- 모리스 라벨



남을 따라 시늉을 하면 피곤할 뿐、

아무리 성공한들 결코 기쁠 수 없다。

---러셀




“빰빠라밤 빰빠라밤。。。。。”


동네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는 할머니가 열심히 이 노래만을 부르며 구석구석 동네를 마실다닌다。옷차림이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게 한다。주름치마만 입는데 색은 매일 다르다。주로 70대로 보지만 결코 환갑은 넘지않았다고 보는 이도 있다。


“아픈 과거가 사람을 저렇게 늙게 만들어 놓은 거랑께。”


양순 씨다。8년 전、 이곳을 찾아온 여자는 멀쩡했다。단、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뻔하다며 수군대길 '이혼하고。。。。。。' 혼자 살면 거의 다 부정적으로 말한다。특히 여자에게。헐뜯는 것이다。왜 이럴까? 이것도 집단에 의한 폭력이 된다。양순 씨는 처음 이장으로서 그녀를 종종 만났지만 늘 혼자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양순은 부러웠다。양순에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평생 한이 되었다。그땐 다 살기 힘들었고、더구나 농사를 짓는 시골에선 손이 하나라도 더 필요했기에。그러나 아버지의 이 한마디는 잊을 수가 없다。


“여자가 무슨 공부。중학교까지 나왔으면 남자가 박사 한 거나 다름없다。”


독서하는 그녀를 자주 찾아갔고 남을 들이지 않는 서재를 보곤 많은 책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가까워졌지만 지난 과거에 대해 묻진 않았다。이장이어서 알게 된 건 이름 그리고 생년과 서울 출신이라는 것 뿐。결혼을 안 했으니 이혼을 했을 리 없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하게 된다。

--- 조지 산타야나


하지만 마크 트웨인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무엇도 기억할 필요가 없다。


3년 전부터 그녀는 또 한번의 동네 사람들의 입방정에 올랐다。

'혼자 저리 살더니 이젠 완전 미쳤네。'


그녀의 입으로 밝힌 이름이 아니니 여기서도 그저 그녀라고 하자。그녀는 걷기유산소운동으로 보일만큼 걸음이 매우 빠르고 쉬지 않지만 동네에 벽화가 생겨난 뒤로는 어느 그림 앞에서든 멈춰 서서 한참 바라 보았다。

“그 뒤 일 거여。무슨 노랜가 중얼중얼 부리기 시작한게 말여。애들이나 부를 노래를 계속 그것만 거듭 중얼중얼 한당께。”


처음 알아본 건 유나였다。

“볼레로、아닌가요?”

스마트폰에서 찾아 라벨의 볼레로를 내게 들려준다。

“그렇군요。같은 리듬이 15분간 계속되는 곡이지요。”

“예。169번이라든가。그 곡으로 라벨은 치매환자로 취급받기도 했다잖아요。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같은 음을 계속 썼겠느냐、이러며 치매환자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미쳤다는 말이다。라벨은 죽기 5년 전 실어증으로 더 이상 작곡할 수 없게 되었다지만 그 이전에 지은 곡이 볼레로다。


“남을 지청구해서 구설복에 말려들게 혀는 것도 죄지、왜 아무것도 모르면서 헐뜯는지 참。아주 못된 버릇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댄다니깐 참말로。제 입이라고 맘대로 놀려된다지만 다 되돌아오고 만당께。거 있잖여。되로 주고 말로 받는단 말、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니껜。”


그녀가 <쇼팽과 상드> 앞에 멈춰서 있을 땐 유나는 꼭 라벨의 노래를 튼다。볼레로만이 아니다。라벨은 <거울>이란 이름으로 다섯 곡을 작곡했는데 아마도 실제가 아닌 거울에 비친 장면들을 악보에 담은 듯하다。그의 <물의 유희>는 처음 물방울이 떨어지다가 폭포가 쏟아지는 듯 볼레로처럼 크레센도로 음은 확산된다。그녀의 산책시간은 대체로 저녁 때지만 아침에 거리를 빗질하다가 그녀와 가끔 마주치는 적이 있다。그 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를 튼다。밤에 창밖에서 연인을 불러내는 세레나데는 잘 알고 있지만 아침 노래는 흔치 않다。아침 노래를 알보라다라고 한다。그녀는 “빰빠라밤 빰빠라밤”을 잠시 멈추고 웃는다。그녀의 얼굴에서 미소를 처음 본다。


“그 미소、 아르카익스마일일 것 같네요。”

“예。눈은 웃지 않지만 입가엔 미소가。。。 이 스마일이지요? 그렇네요。”

“그 아침에도 주름치마를 입었던가요?”

“예。색은。。。 옅은 하늘색、맞아요 하늘색。왜요?”

<브람스의 짝사랑> 앞에서도 그녀를 자주 보는데 볼 때마다 그녀가 입은 주름치마에서 동심원을 본다。

“물이 떨어지면 그려내는 동그란 파문 있잖습니까。”

“퍼져나가는 물결요?”

“예。 그녀가 부르는 노래로 지나치게 비약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녀의 주름치마는 라벨의 <물의 유희>를 떠올리게 하거든요。”

“예?”

유나가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수도 있겠어요。”

그녀에게 말을 붙여 봐 달라고 나는 유나에게 부탁했다。

“그녀의 작은 집 담에 그려진 라벨을 그녀를 보며 종종 상상하거든요。”


벽화를 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나도、 우리 집에도' 이런 말을 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일주일쯤 지났을까。


“라벨의 집에 라벨(래이블)을 붙이게 될 것 같은데요。。。 썰렁했나요?”


스트라빈스키는 라벨의 계획적이고 정교하고 정확한 그의 곡에 대해 '스위스 시계의 완벽한 장인'이라고 과찬했다。 라벨은 볼레로 연주를 듣고 너무 빠르다、너무 느리다며 연주시간까지 정하며 연주자에게 요구했다。'템포디 볼레로'란 말도 생겼다。'볼레로 템포로' 지나쳐서였을까。말년 5년을 말을 잃고 작곡도 못하며 살았던 라벨이었다。


우리 동네 그녀도 무언가에 몰입하며 살았던、어쩌면 마크 트웨인이 한 말처럼、

'20년 뒤에 20년 전을 돌아보며 그 때 잘못했던 일보다 미뤄서 못했던 일들로 인해 가슴은 더 아프게 될 것이다。'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트웨인의 이 말을 떠올린답니다。그리고 나에 대해서도요。”

10-2.jpeg




keyword
이전 09화동물들의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