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락교시대 11화

사랑의 기쁨

by 차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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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사랑의 기쁨---마르티니


서양인의 눈에 비친 우리 전통의

생김새가 아니라 동양의 눈으로

때묻지 않은 고유한 우리의 눈으로

본 우리 음악이 알고 싶다。

--- 주성혜(음악 평론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다。'


선천적 자폐아가 동물학 박사가 됐다。미국의 템플 그랜딘이다。남들에게 놀림을 받았지만 그녀의 능력을 알아보는 선생이 있었다。'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다。' 그가 제자에 대해 한 말이다。


부모인 우리도 자식에게 그런 선생이 돼 줄 수 있다면。。。 그러나 여기 이 부부에겐 그럴 시간이 없다。의사의 말에 의하면 스무 살을 넘기기 힘들다는 것。태어나면서부터 달고 나온 혈소판 감소증이란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들은 지금 중학교 2학년 생이다。


“스무 살까지도 힘들 것 같아。”


아버지는 의사이고 엄마는 간호사 출신이다。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 난민 구호 활동의 자원봉사자로 일하다가 만나 결혼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원망하고 있을 때 우연히 유럽의 한 남학생이 한 말을 듣게 됐다。죽음을 앞둔 14살 어린 학생이다。


“내가 아니면 남이 이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나 대신 남에게? 난 그럴 순 없다。”


내가 걸려 다행이라고 했다。좋은 일을 하면 하느님께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부는 여기저기 기부를 했다。그러나 구호 단체들이 기부금을 제대로 쓰지 않고 심지어。。。 그들이 홍보하는 선행과는 다른 일로 아이가 사망하는 사건도 생겨났다。이를 보고 오래 전 르완다에서 부부가 함께 목격한 일을 떠올렸다。대한적십자 총재라던 목사가 르완다에 왔었다。목적은 르완다 난민을 위한 구호였다。하지만 그는 언론사 카메라 앞에 사진만 찍고 내내 사파리 내의 호텔식 방갈로에서 묵으며 놀며 즐겼다。그 자뿐만이 아니다。구호단체의 홍보영상물을 찍으러 온 한 연예인은 아프리카 아이들을 껴안아 주는 동영상을 채 한 시간도 찍지 않고 르완다에 체류하기는 커녕 케냐 나이로비의 초대형 호텔에 머물며 호텔 카지노에서 도박을 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기자들도 알았던 게 분명하다。

“기자들도 그들과 어울려 같이 놀았다잖아。돈은 그 연예인이나 아니면 그 총재 또는 후원사가。”

후원사로 온 가스기기로 유명한 기업체 대표도 있었다。공범자는 같은 편이다。그러자니 더 앞장서서 숨겨야 한다。자원봉사로 온 의사나 간호사들이 혀를 쳤다。그 안에 이 부부도 있었다。


이후、부부는 모든 기부를 끊었다。우리가 좋은 일을 하면 하느님께서。。。 이런 바람도 나만을 위한 이기주의에 불과하다。점점 쇠약해지는 아들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어 주는 것으로 후회할 일을 줄여보기로 했다。1년 휴직을 했고 전국 여행을 다니고 있던 중이다。


“엄마、여긴 왜 다 외국사람만 있어?”


중학생의 이 말을 식당에서 나、유나、양순 그리고 봉길-영임 부부가 함께 들었다。아이의 목소리가 컸기도 했지만 그 말의 뜻이 귀를 쫑긋하게 해서다。그 학생의 외국 사람이란、우리 동네벽화를 두고 한 말임을 바로 알아채서다。양순 씨가 먼저 입을 뗀다。


“그러고 보니 참말로 그렇구먼。”


나를 쳐다본다。그리고 둘러본다。양순 씨의 눈엔 우리가 브람스、쇼팽、베토벤、엘가로 보였을 것 같다。양순 씨가 그 가족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아가、그럼 아는 한국 작곡가 있니?”


중학생을 아가라 하고、아는 한국 작곡가? 뜬금없이 들렸을 것이다。이 가족이 이 곳에까지 오게 된 사연을 듣게 됐다。또、이 가족은 이 산골마을에 어떻게 음악거리가 생겨났는지、그 사연도 들었다。


곧 맞이할 아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브람스의 짝사랑> 문간방으로 그들을 초대해 1박을 할 수 있게 이끌었다。


“이 방은? 벽화를 보니 어린아이의 방 같은데요。”


부자 상봉을 곧 하게 된다는、내 사정을 짧게 들려줘야 했다。다음 여행지로 떠나는 부부에게 양순 씨가 직접 담근 순창 고추장을 선물했고 중학생 아들에게는 스케치북 한 권을 선물했다。


“이 스케치북에 한국 작곡가를 그려 보라고 주는 건께 편하게 맘대로 써。나중에 여기 올 일이 생기면 갖고 오면 좋겠구먼。이 집 주인 아저씨가 그려 줄 껑게。다시 올 수 있겄지? 이 할민 언제까지나 여기서 기다릴 거니께。참 이름이?”

“종민이에요。”

“그래。이름도 멋지네。이 할민 말여。 종민이가 여길 다시 꼭 올 것 같은디? 꼭 말여。”


그렇게 떠나보냈던 가족은 3년 후에나 다시 볼 수 있었지만 부부만 왔고 종민인 없었다。종민이 대신이라며 그 스케치북을 종민이 엄마가 내놓는다。

“그 사이 벽화가 더 많이 늘어났네요。”

무엇부터 말해야 하나。그 3년 사이 구림에선 무엇이 일어났지? 내가 아들과 만나。。。 내 얘기는 뒤로 미루자。우선 달라진 건 매일 하루 네 번 구림면사무소 앞 사거리에 울려퍼지던 영임의 <소녀의 기도>와 함께 <사랑의 기쁨>도 울려 퍼졌다。

“기도만 하고 있을 순 없었어요。”


영임은 결실을 맺게 하고 싶었다。종민이가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싶어서 바로 이 제목 <사랑의 기쁨>을 떠올렸다。하지만 마르티니의 사랑의 기쁨은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잊지 못하는 한 남자의 애끓는 비련의 마음을 노래한 이탈리아가곡으로、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남았네。

눈물로 보낸 나의 사랑이여

그대 나를 버리고 가는가。

아、야속한。


“피아노를 치다 보면 곡이 너무나 아름답고 또 아련해서 제목 그대로 사랑의 기쁨만 노래하는 줄 알았는데。。。”


유행가 가사 같지만 사랑하기에 안타깝고 그렇기에 안쓰럽고 또 그러니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종민의 부모 마음도 그럴 것이다。얼마나 아들을 사랑하면。

이제 벽화집 주인만 모이지 않는다。우리 집에도 그려 줘! 하며 거의 주민 모두 참여하고자 했고 그 중 한 집이 70대 노부부가 40년 넘게 꾸려가고 있는 사거리의 슈퍼마켓이다。


“전번에 딸이 왔다 갔는디 <사랑의 기쁨>은 다른 노래도 있다는겨。”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이다。

“난 피아노를 못 칭게 뭘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혀도。。。”


무언가로 함께 하고 싶었다。다시 부모를 찾아온 딸은 블루투스스피커를 가져왔고 아버지의 핸드폰에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만 아니라 <사랑의 슬픔>을 담아 틀어서 듣는 방법도 가르쳐줬다。딸이 이랬단다。

“우리 집이 비록 슈퍼지만 한 쪽에 음악가를 그려 넣어보는 건 어때? 우리도!”

노 부부는 <소녀의 기도> 봉길-영임 부부에게 물었다。

“이런 먹는 것 파는 데에 음악가를 그려 놓으면 쫌 거시기 하겄제?”

“왜 예。더 좋지 않겠어예。구림슈퍼에선 사랑도 판다 아닙니꺼。아닌겨?”


결정됐고 누굴 그려넣을까 하다가 “한국인 음악가는 왜 없어요?”라고 했던 중학생 종민이의 말을 유나가 떠올리며 한국인으로 그려넣자고 했다。마침 샹송 <사랑의 기쁨>을 우리말로 부른 조수미를 모두 환영했다。그 때 누군가 그랬다。

'특히 서양노래를 부를 때 절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동양적인 매력을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대에 섰다。'

고 말한 조수미가 너무 멋지지 않느냐고。

“아 그래서、 조수미가 여기에。。。”


“결국 종민이가 그려넣은 거지요。”


봉길이 아내 영임의 어깨를 톡 치자、이내 알아듣고 <소녀의 기도>로 올라갔고 피아노 소리가 메아리처럼 돌아 내려온다。마르티니의 <사랑의 기쁨>이다。이 곡이 끝나니 길 건너에서 이어 들려오는 노래、조수미의 목소리로 듣는 <사랑의 기쁨> 그리고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


모인 우리는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노래가 들려오는 슈퍼마켓의 조수미를 바라본다。슈퍼마켓에 이름도 바뀌었다。<우리 슈퍼、사랑의 기쁨>

사랑의 기쁨의 노래에 맞춰 조수미 옆에 쓰인 시를 유나가 낭독한다。


사랑이란

그처럼 어려운 것이 아니야。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아。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과의 작은 약속도 지켜나가는 거야。


노래도 낭독도 끝날 무렵 영임이、

“엄마 아빠에 대한 종민이의 마음일 것 같아서 우리가 옮겨 적었답니데。”

종민이의 마음。。。 모여앉은 어른들의 가슴이 저려온다。


“우리 종민이가 살아서 우리 곁에 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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