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jeju island
시작하기 전, travel journal B의 인트로 읽기
<travel journal B>, 오랫동안 써왔던 손노트의 정리입니다.
딱 내 손바닥만 한 저널 속에 소소한 일상과 그림들이 늘어 놓여있습니다.
내 손을 떠난 것은 내가 아니게 되어, 그때의 나를 어렴풋이 짐작해 보기도 하고, 그때의 나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실제 있었던 일에 살이 붙은 경우도 있고, 덜어낸 경우도 있습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합니다.
제주의 길은 따갑다.
한참을 이어진 당근밭과 양파밭을 따라 걸으며 우리는 말을 잃었다.
아마 그 숙소를 나오는 길에서는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걷는 게 신나서 돌 모양을 가지고 이야기 나눴던 것도 같다. 넓고 깨끗한 도로에 덩그러니 놓인 돌들. 그 위에 바램도 없는 작은 돌을 켜켜이 쌓으며 지나니 바다도 요원하고 갈 길도 끝이 없었다. 이게 언덕인지 모르고 다 올랐을 쯤, 빨래방과 편의점이 보였다.
이 빨래방에 나 같은 뚜벅이 여행객이 또 있을까.
다들 차를 끌고 와서 여기서 빨래를 하는 모양이지.
이제야 군데군데 건물이 보였다. 반가운 것은 건물들보다는 길이었다. 여기를 우리가 걸어도 되는 걸까,
도로에 꽉 차는 대형버스나 덤프트럭이 지나갈 때는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풀숲으로 급하게 뛰어들며,
우리는 휘청 거렸었다.
셋 다 말없이 사람의 길을 찾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돌들은 경계를 만들고, 어제 바로 밀어낸 것 같던 지글지글한 시멘트 도로는 한 풀 꺾였다.
경계 안쪽에서 걷고 있으니 그제야 배가 고팠다.
일반적으로 음식점에 체험관이라는 말은 붙지 않으니, 나는 들어서면서도 모양새가 좀 어색한데 둘은 앉자마자 한라산을 시켰다.
‘용왕 난드르 향토 음식 체험관’
이 곳에서 가장 낯설고 또 좋은 것은 모든 건물은 그 건물에 쓰임새만 가진다는 것이다. 지하에 노래방에 있고, 1층에는 고깃집과 카페가 그리고 그 위에는 피아노 학원이 있는 내 친구네 집 같은 건 이 동네에 없었다. 농협 옆에 파리바게트는 단층에 반 블록 정도 오롯이 혼자 파리였다. 난드르는 2층 건물인데, 1층은 우리가 앉은자리에서 모두 볼 수 있었다. 보이는 모든 자리에 해가 들고,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소주는 아빠가 가르쳐줬다. 엄청 쓰니까 무조건 한 입에 털어 넣으라고 했다. 세상 오묘한 인생의 맛이 있는 건 줄 알았는데, 그냥 쓴 물이었다. 맥주는 누가 가르쳐줬었지? 미지근한 기억 위에 한라산이 끼얹어졌다. 기억에도 팔뚝이 있다면 거기 오소소 소름이 돋아 올랐을까. 다시 제주를 오면 나도 어엿하게 한라산을 시킬 것이다.
고기국수와 성게미역국, 흑돼지고기가 나왔다. 메뉴판에도 나온 음식에서도 잡지에서 보던 왁자함은 없었다. 고기국수도 성게미역국도 흑돼지고기도 그냥 조명 없이 상위에 올랐다. 한라산은 계속 비워졌고, 음식은 다 비워졌는지 잘 모르겠다.
밖에 나왔을 때 해는 똑같이 거기 있었다.
그림 그리는 회사원
회사에서는 그림 그리지 않는 그림 그리는 회사원
- 방송 삽화 한 번, 매거진 일러스트 작업 한 번, 브랜드 협업 한번, 개인의뢰를 한 번
- 한 번 받고, 한 번씩 일하기도 한 번도 제대로 못하기도 혹은 두 번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