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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bae Feb 17. 2019

포르투의 관람객

Chapter Europe


시작하기 전, travel journal B의 인트로 읽기

<travel journal B>

오랫동안 써왔던 손노트의 정리입니다.  

그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매일 지겹게 오가는 일에 지쳐 놓고 무리하게 교통편을 짜 놓은 내가 한 편 못마땅하기도 했다. 

3년의 한 번, 한 달의 안식휴가가 나오는 회사였다. 나의 두 번째 안식휴가였고, 결혼 후 첫 안식휴가이기도 했다. 항상 그렇듯이 큰 계획도 없으면서 두세 달 전부터 앉은자리에서 엉덩이가 들썩 거렸고, 왠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았다.

나는 매번 흔한 가이드북 한 장 보지 않았고, 때문에 항상 도시 이름 하나만 들고 비행기를 타는 꼴이었다. 처음 여행할 때는 내가 바빠서 그런 줄 알았지만, 여행을 네댓 번 다녀보니 알 수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는 비행기 티켓팅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나라는 걸. 하지만 이번은 안된다.

뭔가 특별해야 했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게 무엇이든 생애 꼭 봐야 할 10가지 아니, 100가지 안에 드는 것 중 하나라도 보고 와야 했다.


“포르투라고? 거기까지 갔는데 다른 곳은 안 가보는 거야?"

“가우디 투어 안 해봤어?”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린 세비아 거리를 걸어봐야지”

'나는 따뜻한 남프랑스 작은 마을에서 그냥 빈둥거리고 싶은데..'


우선 포르투에서 일주일을 보내겠다고 정하자 주변에서 이런저런 추천이 쏟아졌다. 예전 같으면 지나쳤을 추천이 모두 일정이 되었고, 결국 빈둥거림과는 상당히 먼 여행 일정이 꾸려졌다. 한 달 동안 짧고 긴 비행 네 번과 야간 버스까지. 녹록지 않은 일정이 되어버렸다. 24시간이 걸려 첫 목적지인 포르투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야 이게 정말 지금 나에게 필요했던 여행일까, 내가 꼭 와야만 했던 여행일까 싶어 졌다. 

왜 꼭 포르투 였을까. 돌아보면 아무 이유가 없었다. 간혹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를테면 대학입시 원서를 넣거나, 어떤 남자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는 순간 같은. 그런 순간이 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더 차분히 가라앉으며 정해진 선택지 안에서 아주 가볍게 고르게 된다. 그냥 어떤 흐름에 가만히 나를 내버려 두는 거다. 우리는 이미 대단한 결정들은 매일 하고 있다. 오늘 무얼 입을까, 점심에는 무얼 먹을까. 그래서 막상 그런 순간이 오면 그냥 매일매일 쌓아온 대단한 결정들이 만들어 놓은 일상 속, ‘나’라는 흐름에 그냥 그 결정을 올려두는 거다. 왜냐면 또 나는 오늘 저녁에 무얼 먹을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르투도 그랬다. 이번 여행은 다시 오지 못할 여행이라고 느꼈다. 그날 오후는 일요일이었을까. 한 눈에 세간 살림이 다 들어오는 방 한구석에서 하나씩 물건들을 살펴갔다. 시간도 나도 천천히 흘러 손바닥 아래서 멈췄다. 그리고 나는 읽고 있던 유난히 진도가 나지 않는 책에 주인공이 사는 도시로 떠나게 되었다. 


난 예술평론가도 아니고 특정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다. 건축가는 어지러운 많은 일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더더욱 난 건축가가 아니고, 그저 서로 맞물려 있는 공간을 주의 깊게 여행하는 사람일 뿐이다.
 

P9 도미니크 마샤베르로랑 보두앙 공저 / 류근수 역 『 알바루 시자와의대화 』 동녘, 2014 


‘알바루 시자’ 와의 인터뷰집이었다. 『어떻게 죽을것인가』『아픔이 길이 되려면』같은 책을 강권하고 다니는 내가 절대 들고 있지 않았을 책이었다. 어떻게 내게 왔을까. "장소는 지금 그대로의 성격과 언젠가 되고자 하는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p67)는 그의 말처럼, 나는 언젠가 되고자 하는 사람처럼 그 책을 들고 있었고, 그의 고향으로 갔다.

그는 포르투 근교에서 태어나 이 곳에서 자라고 공부했다. 건축가가 되었고 자신이 공부한 학교에서 다시 학생들을 가르친다. 포르투는 굉장한 번화가도 아니고 크기도 크지 않다. 제2의 도시라고 하지만 항구를 끼고 있어, 포르투갈어로 <항구>라는 단어가 이름이 되었다니... 뭐랄까.. 그저 나고 자란 도시에서 일하고 있었을 뿐이데,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그처럼 도시도 그를 닮아 있었다.


인터뷰는 그가 지은 건물을 오가게도 하지만, 때로는 포르투나 리스본을 천천히 걷게도 하고 '도시'라는 일반명사의 복잡한 구조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책에 나온 포르투 건축학부 건물 사이에 앉아서 들어가 보지 못하는 그의 건축의 상징과 같다는 구조를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더듬어 보기도 하고, 그의 사무실이 있는 동네를 천천히 거닐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외려 그를 더 많이 읽었던 시간은 시자의 말에는 없는 공간에 서있을 때였다. 


포르투에서 가장 유명한 건 아마 조앤롤링이 해리포터의 배경으로 삼아서 더 유명해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렐루가 아닐까.


리스본으로 가는 길


시자가 세계적인 건축가 반열에 오르게 된 계기는 리스보아 화제에 재건축 프로젝트 진행이다. 번화한 리스본에 곳곳에 가만히 서서 그가 말한 장소가 가진 특성이라거나,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리스본 번화가에서 올려다 본 중심가 뒤에 건물 연결부


포르투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렐루가 있다면 리스본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버트랜드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에서 책을 판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서점 '버트랜드'는 사실 말해주지 않는다면 관광지인 지 알 수 없다. 여느 서점처럼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잡지 따위가 비치되어 있고, 사람들은 서서 책을 보기도 하고 구매해가기도 한다. 아마 이번 주말도 그들은 다음주에 비치 할 신간을 이야기하고, 1732년에는 이야기 하지 않았던 아동서적이나 입시서적을 이야기 할거다.

300년 전에는 아주 몇몇의 특정 계층에게만 판매를 했겠지. 그 때도 그들은 아주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이번주에 배치할 고가의 양피지 책을 이야기 했을거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속에 아찔한 우아함이 있었다.

중요한 결정도 순간도 이런 정적과 일상 안에 있다.

1732년이라는 숫자 외에는 휘장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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