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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y 23. 2024

행복함이 부끄러움이 되어버린 세상

솔직히 말해보세요. 소리 내어 "나 행복합니다"를 이야기한 적이 얼마나 되었는지요. 저는 꽤나 오래된 듯하네요. 내가 나에게 혹은 내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 행복해라고 말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아요. 


그렇다고 내가 불행하게 살고 있냐구요?


천만해요. 나는 꽤 잘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 잘 살고 계시고, 투닥거리는 아내와 지지고 볶아가며 살고, 토끼 같은 아이들은 셋이나 있습니다. 은행 대출을 잔뜩 끼긴 했지만, 자가예요.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평수도 넓어요. 차두 있구요. 가족들 잔병치레는 해도 크게 아픈 곳도 없어요. 나날이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 육아는 힘들지만 때때로 웃음도 지어요. 사춘기 큰 딸이랑은 이제 반은 친구처럼 치고받고 싸웁니다. 매번 잔소리를 해도 잘 듣질 않아요. 유치원 막내는 아주 보기만 해도 힐링되는 애교쟁이구요. 씩씩하게 잘 크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꽤나 행복한 집안 아닌가요? 뭐 집뿐만이겠어요? 아내가 하는 사업도, 계절을 타기도 하고, 경기를 타기도 하지만 아직은 굴러가고 있어요. 뭐 돈벌이를 잘 못하는 제가 문제긴 한데. 그래도 사는 게 나쁘지 않아요. 주관적인 생각에도 객관적인 판단에도 이 정도면 대한민국에서 꽤나 부족함 없이 잘 살고 있는 편일 거예요. 물론 객관적인 지표로야 상위권보다는 중산층 언저리 어디쯤이겠지만, 그게 어딥니까? 암튼 저는 꽤나 성공한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나 행복해요." 란 말을 자랑스럽게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겸손이 미덕인 나라에서 살아서일까요? 타인의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재수 없다 보여서일까요? 우리는 본인의 행복을 이야기할 때도 꽤나 겸손하게 이야기를 하네요. 그래야 점잖게 보여서 인가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
"이러저러 힘들지만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답니다."
"감사하게도 큰 탈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힘든 일 없음에 감사하며 살고 있죠"
"덕분에 무탈하게 지냅니다"


이런 인사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지요. 타인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힘들게 버텨내고 있는지 모르는 때 저 혼자 행복해요라고 외치는 모습이 꼴보기 싫을 수도 있어요. 때때로 우린 그런 실수를 하기도 하지요. 난임의 부부에게 본인의 아이를 자랑하는 모습처럼. 자녀 문제로 속상해하는 부모에게 본인 아이의 자랑을 팔불출처럼 하는 것들이 물론 좋게 보이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때로 이런 걱정에 너무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지금 자신의 삶이 행복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행복이 저 멀리 어디엔가 있는 것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가요. 행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삶의 모습은 칭찬하면서, 지금 행복함을 누리고 살고 있다는 사람의 자랑을 철없다 여기지는 않을까요?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요. 지금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자유롭기를 원하며 살고 있지요. 돈을 많이 벌고, 건강을 유지하고, 많은 경험을 하는 것들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이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항상 행복은 저 멀리 있고, 나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삶 속에서만 살고 있어요. 행복은 결승선을 넘어서 주어지는 등수 배지 같은 것이 아니잖아요.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만 "나 행복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언젠가 그 목표를 이루었을 때 그때가 되면 우리는 "나 행복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더 높은 기준을, 더 높은 목표를 찾을지 몰라요. 우리는 항상 노력해 왔지, 누린 적은 별로 없잖아요. 행복함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사람에게 행복이 주어저도 그것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요? 


아내는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여행도 다니고, 텃밭도 가꾸고, 캠핑도 다니자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말하지요. 우리는 지금 서로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데, 그때가 되면 우리가 서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평생을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바쁜 생활을 한 부부가 아이들이 다 컸다고, 여유의 시간이 생겼다고 그 시간을 오롯이 둘이서 알콩달콩 보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보낸다고 한들, 지금 현재에 경험할 수 있는 그 행복감과 같을까요? 


왜 우리는 행복하다 쉽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요? 


야속하게도 우리는 좋은 기억과 감정에 금방 익숙해지지요. 새로운 인연의 만남, 보석 같은 아이의 탄생, 어릴 적 꿈을 실현한 기쁨. 새로운 여행지의 해방감과 이국적인 느낌들. 이런 좋았던 감정은 금세 적응이 되어요. 으레 이런 삶을 누렸던 것처럼,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해 당연한 보상처럼 생각하지요. 나는 당연히 이런 것을 누려야만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지요. 그리고 반대로 어렵고, 상처받고,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는 민감하지요. 나는 이런 일을 경험해서는 안 되는 사람인데, 왜 내게 이런 시련을 내려주시는지. 매번 곱씹고, 되뇌지요. 쉽게 잊지 못해요 본인에게 닥친 불행의 순간들을. 


당연한 행복과, 낯선 불행은 우리를 불행의 순간에 집중하게 합니다. 힘겨운 일을 극복하면 당연히 행복이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의 순간보다 불행의 순간을 기억하고 되뇝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 여기며. 


우리는 알고 있어요. 무엇이든 경험해 본 사람들이 더 잘하는 법이라고, 열심히 물장구를 친 사람이 수영을 잘하는 법이구요. 열심히 골프 연습장을 다니는 사람이 골프도 잘 쳐요. 노래방에 열심히 다닌 사람이 노래도 잘하는 거구요. 행복은. 행복은 다를까요? 


지금의 행복을 오롯이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행복함을 느끼며 살 수 있을까요? 지금 주어진 현재가 행복한 일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행복이 와야 행복임을 알게 될까요? 그저 주어진 오늘의 무탈은 당연함으로 여기며, 내일의 행복만을 꿈꾸지는 않을까요? 


행복한 사람에게서 행복한 일들이 생길 거예요. 행복을 소리 내어 말하고, 행복함을 표현하는 사람에게서 행복은 머무를 거예요. 미래의 행복만을 꿈꾸는 사람은 지금의 행복함을 잊기 쉬워요. 나중에 찾아올 행복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도 되지 않을지 몰라요. 여행도 다녀 본 사람이 여행지의 참 멋을 느끼며, 많은 음식을 접해야 진정한 미식의 세계도 알 수 있어요. 지금의 행복을 느끼고 표현해야, 힘든 시기에 찾아오는 행복을 더 제대로 누릴 수 있어요. 


돌이켜 보세요


지금의 우리는 별일 없이 행복한 순간입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지금이 상처받을 일이 없기에 행복한 순간인 것입니다. 억지라구요? 그럴지 몰라도 저는 지금의 행복을 오롯이 즐겨보려 합니다. 내가 행복하다는데 다른 사람의 딴지가 무슨 소용 있겠어요. 


자~ 다 같이 


나는 행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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