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는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가방을 대충 던져놓은 채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그날도 비슷한 대화였다. "숙제 다 했어?"라는 내 말에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새벽에 아이방 불이 켜져 있었고 문을 열어보니 아이가 책상에 앉아 연습장을 펴놓고 문제를 풀고 있었다. "숙제 다 했다고 하지 않았어?"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다그쳤다. 아이는 놀란 얼굴로 나를 보더니, 그제야 솔직히 털어놨다. "까먹고 안 했어…"
그날 나는 혼을 냈다. "왜 거짓말을 해? 솔직하게 말하면 될 걸!"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거짓말한 게 속상했다. 그런데 지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처음부터 솔직할 수 없었던 건 내 탓일지도 모른다.
"오늘 학교 어땠어?"
잠시 정적이 흐른다. 아이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대충 대답한다. "그냥."
나는 한 번 더 말을 걸어본다. "친구들이랑 뭐 했어?"
아이의 손가락이 휴대폰 화면을 스크롤하며 움직인다. "그냥 놀았어."
나는 또 다시 조심스럽게 묻는다. "숙제는 다 했어?"
그제야 아이가 나를 힐끔 본다. "응."
하지만 어쩐지 찜찜하다. 며칠 전처럼 또 거짓말을 한 걸까. 내 입에서 무심코 말이 튀어나온다.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아이의 손이 멈춘다. 한숨을 쉰다. 그러고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쓴다.
"왜 맨날 의심해?"
아이가 작게 중얼거린다.
나는 그 순간 깨닫는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아이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인데, 내가 아이의 솔직함을 막고 있는 건 아닐까.
부모는 아이가 자신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길 바란다. 사소한 고민부터 친구 관계까지, 아이의 하루를 낱낱이 공유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다. 모든 걸 말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고,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원하는 것은 100%의 솔직함이지만, 아이는 부모에게도 숨기고 싶은 것들이 있다.
부모는 "내가 널 다 이해해줄게"라고 하지만, 정작 아이는 "엄마, 아빠가 다 알 필요는 없어요"라고 생각한다.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거짓말이 되는 건 아니다. 어쩌면 부모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부모는 아이의 반응이 모호하면 자연스럽게 의심하게 된다. 그러면 아이는 부모의 반응이 두려워 거짓말을 하게 된다. "혼나기 싫어서", "어차피 말해도 반응이 뻔하니까", "그냥 넘어가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솔직함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나는 문득, 내가 사춘기였을 때를 떠올린다.
"어디 갔다 왔어?"
"학원에서 공부했어." 사실은 친구들과 놀다가 늦었다.
"시험 준비 다 했어?"
"응, 거의 다 했어." 실제로는 벼락치기 중이었다.
그때 부모님이 "넌 원래 거짓말을 하잖아"라고 했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아마 그 순간부터 정말로 솔직하지 않은 아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부모가 아이를 계속 의심하면, 아이는 점점 더 솔직할 이유를 잃어간다. 부모가 믿어주지 않으면, 아이도 믿음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모는 아이와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첫째,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줘야 한다. 부모는 아이가 말을 하면 본능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가르치려 한다. 하지만 아이는 조언보다 그냥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부모를 원할 때가 많다.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라는 말보다 "그때 네 기분은 어땠어?"라고 묻는 것이 아이에게 더 큰 위로가 된다. 때로는 해결책이 아니라, 그냥 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둘째, 부모도 솔직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솔직해야 해"라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감정을 숨길 때가 많다. 아이가 "엄마, 왜 화났어?"라고 물었을 때 "아무 일도 아니야"라고 답하면, 아이는 부모의 감정을 믿지 못하게 된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때, 아이도 자기 감정을 숨기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아이의 거짓말을 비난하지 않고, 이유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 아이가 거짓말을 했을 때 부모는 본능적으로 "왜 거짓말했어?!"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친구들과 놀다 늦었는데 "학원 갔다 왔어"라고 거짓말했다면, "엄마가 걱정할까 봐 그랬어?"라고 먼저 물어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아이의 사소한 비밀도 존중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가 사소한 일도 숨기면 "왜 말 안 해?"라고 답답해하지만, 아이에게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아이가 친구와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하지 않을 때, "뭐 숨기는 거 있어?"라고 다그치기보다 "네가 이야기하고 싶을 때 말해도 돼"라고 말하는 것이 신뢰를 쌓는 방법이다.
다섯째, 약속을 지키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솔직하면 혼내지 않을게"라고 말해놓고, 아이가 솔직했을 때 혼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아이는 부모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아이가 "나 사실 게임 오래 했어"라고 말했을 때,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러면 내일은 게임 시간을 조절해 볼까?"라고 답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부모가 먼저 아이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믿어주지 않으면, 아이도 부모에게 솔직해질 수 없다. 의심보다는 먼저 믿어주고, 아이가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넌 원래 거짓말하잖아"라는 말보다 "나는 네가 솔직하게 말할 거라고 믿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이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
퇴근 후, 다시 집에 돌아왔다. 아이는 여전히 방에 있었다. 문을 살짝 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어땠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이는 휴대폰 화면을 넘기다 말고 천천히 말했다.
"음… 그냥, 친구랑 좀 다퉜어."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잔소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기분은 어때?"
아이의 손이 멈췄다. 그러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별거 아니야. 근데 좀 신경 쓰이긴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아이는 다시 휴대폰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 내일은 다시 괜찮아질 거야."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솔직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