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까지 웃던 아이가 문을 쾅 닫았다

by 성준

퇴근 후 집에 도착하니 딸아이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릴 시간인데, 웬일로 거실에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오늘 완전 최악이었어."


가방을 소파에 던지고 앉자마자, 딸아이는 자신의 하루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쏟아내기 시작했다. 친구랑 사소한 오해로 다퉜고, 체육 시간에는 넘어져 무릎이 까졌고, 엄마는 별것도 아닌 걸로 잔소리를 했다는 이야기. 나는 딸아이의 말을 들으며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그랬구나. 정말 힘들었겠다."


그런데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분위기가 바뀌었다. 딸아이가 갑자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아빠, 그때 우리 갔던 카페 기억나? 아몬드 크루아상 진짜 맛있었잖아. 거기 또 가고 싶다!"

방금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 같았던 아이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그날의 카페를 떠올렸다. 나는 피식 웃었다.


"아까까진 세상이 끝난 것처럼 말하더니?"

"아, 그건 그거고! 갑자기 생각났단 말이야!"

딸아이는 소파에 기대앉아 핸드폰을 켜고 카페 사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컵에 물을 따르며 생각했다. 아까까지 세상이 무너질 것 같더니, 이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이다.

하지만 그 행복도 오래가지 않았다.


"아, 짜증 나!"

딸아이가 갑자기 핸드폰을 휙 던졌다.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왜 그래?"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방금까지 웃으며 이야기하던 아이가 갑자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물잔을 들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사춘기 딸아이와 함께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방금 전까지 웃다가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거나, 평소 같으면 신경도 쓰지 않을 일에 불같이 화를 낸다. 감정의 파도가 밀려왔다가 사라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부모는 따라잡기도 벅차다.


사춘기 감정 기복은 어쩌면 예고 없는 폭풍 같은 것이다. 아이도 왜 그런지 모를 때가 많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작은 일에 마음이 상해 하루 종일 불편해질 수도 있다.


사춘기 감정 기복의 이유는 단순하다.

첫째, 신체적인 변화 때문이다. 호르몬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다. 어른도 피곤하면 짜증이 나듯, 사춘기 아이들은 자기 안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둘째, 감정 조절 능력이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다. 뇌에서 충동을 조절하는 부분이 아직 덜 자란 상태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감정을 참는 게 어렵다. 그러니까 사춘기 아이의 감정 기복은, 단순히 성격 때문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 기복이 심한 딸을 둔 부모의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몇 가지 원칙을 정하면, 아이와 부딪히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첫째, 아이가 감정을 폭발할 때 즉시 반응하지 않는다. 감정이 격해진 순간, 부모가 개입하면 싸움만 커진다. "왜 그렇게 화를 내?"라고 따지면, 아이는 더 거칠어진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일 때가 많다.


둘째,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사춘기 감정은 금방 지나간다. 아이가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면, 몇 시간 후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와 과일을 집어 먹을 수도 있다. 그때 "아까 왜 그랬어?"라고 다시 묻지 말고, 그냥 평소처럼 대하는 게 좋다.


셋째, 아이가 기분이 좋을 때 최대한 함께해 준다. 사춘기 아이들은 기분이 좋을 때 부모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때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오면,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맞추고 들어주자. 기분이 좋을 때 충분히 함께해 주면, 기분이 안 좋을 때도 부모를 밀어내지 않는다.


넷째,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 준다. "사춘기라서 그렇지"라는 말은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말이 더 효과적이다. 감정을 부정당한다고 느끼면, 아이는 더욱 반항하게 된다.

사춘기 딸아이를 키운다는 건,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아침에는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다가도, 점심쯤이면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서고, 저녁에는 별것도 아닌 말 한마디에 눈물을 글썽인다. 이유 없이 서운해하고, 또 이유 없이 화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이 휘몰아친 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부모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건넨다.


이런 변화무쌍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부모는 어느 순간 지쳐버리곤 한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아이조차도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때로는 과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때로는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해 폭발하기도 한다.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건, 곧 감정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이 사춘기의 특징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교정하려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다. 아이가 감정의 파도 속에서 휘청거릴 때, 부모가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다면, 언젠가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더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간 딸아이의 방 앞을 지나며 잠시 멈춰 섰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아이가, 지금은 방문 뒤에서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다. 시간이 지나면, 문이 열릴 거라는 것을.

그리고 딸아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 옆에 와서 앉아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나는 그때를 기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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