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리 좁힐 수 있을까?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니 딸아이는 방 안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문 앞을 지나가면서 들어보니, 친구와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가끔은 속닥속닥 거리며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 진짜? 대박!"
"아니, 그건 너무한 거 아니야?"
하루 종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저녁을 먹으면서 물어봤다.
"오늘 학교 어땠어?"
"그냥."
"점심 뭐 나왔어?"
"몰라, 기억 안 나."
"뭐 재미있는 일 없었어?"
"없었어."
나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질 용기가 사라졌다. 분명 친구랑 통화할 때는 그렇게 재잘거리더니, 왜 나한테는 단답형 대답뿐일까?
학교에서 친구들과 있었던 일, 고민, 즐거웠던 순간들이 내게는 전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서운했다. 예전에는 돌아오자마자 오늘 있었던 일을 줄줄 이야기하던 아이였다. 친구랑 싸운 이야기도, 시험 망쳤다고 투덜대던 것도, 체육 시간에 넘어져서 창피했다고 하던 것도.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모든 이야기가 '없어', '몰라'라는 말로 끝나버렸다.
그런데, 친구랑은 잘 이야기하는 것 같다. 아니, 너무 잘한다. 집에 있으면 항상 친구와 카톡을 하고, 영상 통화를 하고, 심지어 가끔은 같이 게임까지 한다. '도대체 저렇게까지 할 말이 많은 걸까?' 싶을 정도로 친구와 붙어 있다.
그런데 부모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부모는 언제나 궁금하다.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기쁜 일이 있었는지. 하지만 아이는 점점 더 말이 줄어들고, 부모보다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리고 왜, 부모에게 말하지 않게 된 걸까?
아이는 왜 부모에게 말하지 않을까?
1. 말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고 느낄 때 아이들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감정을 알아줬으면 할 때가 많다. 하지만 부모는 대화를 하면 무조건 해결책을 주려 한다. "그건 네가 먼저 사과해야지" 같은 조언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닌데, 부모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에 너무 성급하게 개입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2. 부모의 반응이 부담스러울 때 "엄마, 나 친구랑 싸웠어."라고 말하는 순간, 부모가 흥분해서 "누가 먼저 그랬어?", "그 친구랑 다시 친해질 거야, 아니면 절교할 거야?"라고 묻는다. 또는 심각한 표정으로 "앞으로 조심해야겠다"며 분위기를 무겁게 만든다. 아이는 단순히 들어주길 바랐을 뿐인데, 부모는 너무 무겁게 반응한다.
3. 부모가 듣기 싫어할 것 같아서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답이 아니라, 자신이 듣고 싶은 답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냐?" 같은 질문을 던지면 아이는 대답하기도 전에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아 입을 닫아버린다. 시험 성적, 스마트폰 사용 시간, 친구 관계 등 부모가 관심 있어 하는 주제일수록 아이는 더 말하기 어렵다.
4. 부모에게 실망한 경험이 있어서 예전에 용기를 내어 고민을 말했지만, 부모가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경험이 있으면 아이는 다시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거 별거 아니야", "그건 네가 참아야지" 같은 반응은 아이의 마음을 닫아버리게 한다.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화할 때 훈계하지 않기 아이가 말을 꺼냈을 때 바로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고 반응하면, 다음부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된다. 해결책을 주기보다 그냥 "그랬구나" 하고 들어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아이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리기 "왜 말 안 해?", "엄마한테 숨기는 거 있어?" 같은 질문은 오히려 더 입을 닫게 만든다. 아이가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도 아이에게 솔직해지기 부모가 자신의 경험을 먼저 이야기하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나도 너만 할 때 친구랑 오해한 적 있었어."라고 말하면 아이가 공감하며 조금씩 마음을 열 수 있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하기 진지한 고민이 아니라도, 아이가 관심 있는 주제(게임, 좋아하는 연예인, 유튜버 등)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이가 다시 부모에게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
아이는 부모가 싫어서 말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냥 말할 타이밍을 놓쳤거나, 괜히 말을 꺼냈다가 더 피곤해질 것 같아서 조용히 있는 것뿐이다. 말 한마디를 꺼낼 때마다 돌아오는 과한 반응과 조언, 해결책이 부담스럽고, 결국 스스로의 고민을 혼자 삼키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때로는 부모가 너무 애쓰는 것이 오히려 벽을 만든다. 아이는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돼?'라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부모는 그 침묵이 더 불안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침묵이 영원할 거란 뜻은 아니다.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말로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 부모가 아이 옆에 있어야 한다. 조용히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올 때, 너무 반갑다고 질문 세례를 퍼붓지 않고, 그저 '응, 그래?' 하고 미소 지어줄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결국 다시 부모에게 말을 걸게 되어 있다. 아주 작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니 부모는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문을 두드리지 않고, 가만히 서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부모가 변할 때, 아이도 다시 부모를 찾을 것이다.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한다. 그게 쉽진 않다. 아이가 말해주길 바라면서도, 조바심이 나고, 문득문득 서운한 마음이 올라올 수도 있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참아야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을 버텨야 한다. 하지만 부모는 이미 그 길을 걸어왔고, 인생의 복잡함을 조금 더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부모가 먼저 손을 내밀고, 아이가 말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몫이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자.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는 건 억지로 아이를 붙잡고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곁을 지키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 아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시간은 때로 길고, 때로는 허탈하지만, 결국 부모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부모가 가진 가장 깊은 사랑의 형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