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문을 열자 익숙한 집 냄새가 느껴졌다. 따뜻한 밥 냄새와 함께 텔레비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지만, 거실 한쪽에 앉아 있는 딸은 그 모든 것에 무심했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한 손엔 핸드폰을 쥔 채, 다른 손으로 가볍게 무언가를 쓸어넘기며 피식 웃고 있었다. 밥 먹을 시간인데도 꼼짝을 안 했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신발을 벗으며 문턱에 기대어 딸을 바라봤다. 뭔가 말을 걸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순간 망설여졌다.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가볍게 물었다.
"너, 숙제는 했어?"
딸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충 대답했다.
"응."
의심스러웠다. 고개를 갸웃하며 한 번 더 확인했다.
"진짜로?"
딸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몰라. 알아서 할게."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더 말을 보태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딸은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전 같으면 숙제하라고 하면 그냥 했는데, 요즘은 한 마디 던지면 벽이 생기는 느낌이다. 한마디 더 하면 잔소리가 되고, 한마디 덜 하면 무관심이 된다. 아이와의 거리감이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다.
이럴 땐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거실 불빛이 은은하게 퍼졌다. 식탁 위에는 차려진 저녁상이 있지만 딸은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예전에는 밥을 먹으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시간들이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대신 나는 주방에서 물을 한 잔 마시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훈육과 대화, 그 애매한 경계선. 어릴 때는 훈육이 필요했다. 밥을 흘리면 닦으라고 하고, 뛰어다니면 조심하라고 하고, 인사하라고 가르쳤다. 부모의 말을 따라야 했고, 따라야만 했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한때는 당연했던 말들이 이제는 강요처럼 들린다. 숙제를 하라고 하면 알아서 한다는 말이 돌아오고, 늦게까지 핸드폰 보지 말라고 하면 왜 자꾸 간섭하냐는 표정이 돌아온다. 말 한마디가 예민하게 받아들여진다.
나는 딸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숙제 늦게 하면 네가 더 힘들지 않겠어?"
딸이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입을 삐죽거렸다. 그래도 이전보다 부드러운 반응이었다. 똑같은 말을 해도, 아이가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다. 훈육처럼 들리면 반항하고, 대화처럼 들리면 고민하는 여지가 생긴다.
예전에는 부모의 말이 곧 법이었다. 부모가 하라고 하면 하는 게 당연했던 시대였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다르다. 무조건 따르는 시대는 지났다. 사춘기 아이들은 납득해야 움직이는 존재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했다는 느낌이다. 즉, 부모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움직인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딸의 앞에 앉았다.
"폰 좀 그만 보고 자는 게 어떨까?"
딸이 눈을 찡그렸다.
"내일 아침 힘들지 않겠어?"
딸은 아무 말 없이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억지로 뺏으려 했다면 반항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니 반응이 달라졌다.
훈육이 필요한 순간과 대화가 필요한 순간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 도덕적인 가치가 걸려 있을 때, 안전과 직결된 문제일 때는 훈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가 감정적으로 반응할 때, 자기 행동을 스스로 조절해야 할 때, 부모의 잔소리로 들릴 가능성이 높을 때는 대화가 더 효과적이다.
부모의 태도가 아이의 반응을 바꾼다. 같은 말을 해도 부모가 화를 내면 반항이 나오고, 부모가 차분하면 대화가 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강요하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면 반항이 줄어든다. 사춘기 아이들은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걸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물론, 가끔은 부모가 단호하게 훈육해야 할 순간도 있겠지만, 대화를 먼저 시도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춘기 아이에게는 강한 훈육보다는 부드러운 대화가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무조건 아이의 의견을 다 받아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되, 부모도 해야 할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래라저래라가 아니라, 왜 그런지 이유를 알려주고, 아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
나는 딸이 핸드폰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한 번의 대화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갈등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는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작은 대화 하나가 쌓이고, 또 쌓이면서 결국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만들어진다.
부모와 아이의 거리는 늘 변한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부모가 한 발짝 물러서면 아이가 다가올 수도 있고, 반대로 부모가 너무 다가가면 아이는 한 걸음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 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나는 딸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오늘은 괜찮다. 하지만 내일은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어쩌면 딸은 또다시 문을 닫고, 혼자 있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다시 한 번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잔소리와 대화, 그 경계를 잘 지키는 것이 어렵지만, 그렇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다음번에는 내가 더 조용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혹은 한마디를 더 건네야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이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이 역시 언젠가 다시 내 말을 들어줄 거라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