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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Oct 06. 2023

마지막 순간엔 모든 것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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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청춘시절 나는 무료했다.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었고, 나른함과 나태가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인생의 황금 같은 시절에 나는 매일이 지루했다. 그렇다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치열하고 공부를 했고, 친구를 만났고, 술을 마시고 파티를 했다. 뜨겁게 연애를 하기도 하고 실연에 아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의 20대 청춘은 지루했다. 이런 날들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반복될 것 같은 일상이 싫었다. 


만약 그 시절 내 모습을 대면할 수 있다면, 꿀밤을 한대 먹이겠다. 속 편한 소리 하지 말라고, 네가 누리고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한 줄 아느냐고 잔소리 잔소리를 해주고 싶다. 모든 잔소리가 통하지 않는다면 딱 한마디만 해주어야겠다. 


네가 지루해하는 그 일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영원할 것이라 믿었기에 그 순간순간이 지루했고,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곧 끝날 시간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군인 시절 받았던 휴가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20대의 지루한 일상 속에서 군시절 받은 4박 5일의 짧은 휴가는 무엇을 해도 새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때는 휴가의 시작서부터 끝나는 순간을 카운팅 했으니까. 이 짧은 휴가가 얼마나 남았는지 매 순간순간을 체크했다. 마치 떨어지는 시간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고, 순간을 즐겼다. 내 인생에 가장 즐거운 시간은 아니었을지라도 가장 바쁘고, 숨차게 보낸 시간임은 분명하다. 끝날 것을 알고 있었고, 끝날 시간을 헤아릴 수 있었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일상이라 부르는 이 시간들도 넓게 보면 유한한 시간들 중 일부일 것이다. 단지 그 진폭이 4박 5일처럼 눈에 보이는 정도가 아니어서 그 유한함을 실감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그 끝지점을 모른다. 무한하다 생각되어서가 아니라 유한함은 알고 있지만 언제 끝이 날지 모르기에 남은 순간을 헤아리지 못한다. 다음 주 금요일이 내 마지막 생애라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미뤄왔던 조금은 피해왔던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시지프스가 끊임없이 굴러 내리는 산꼭대기까지 돌을 굴려 올려야 하는 것만이 형벌이 아니다. 그거 겪는 진정한 형벌은 끝을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극단적인 방법을 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끝을 모른다는 것은 희망을 주기도 하면서 동시에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다. 변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저 혼자 희망을 품었다 절망으로 바뀌는 과정을 반복하게 한다.  


인간은 스스로의 끝을 알지 못하기에 현재 시간의 가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가치를 헤아리기 어렵게 되면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 믿어버린다. 하루가 지루한 이유다. 내가 보낸 시간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기에. 


하지만 끝을 자각하는 순간부터는 세상 모든 일에 가치를 더한다. 노래방의 마지막 노래는 더 정성스레 고르고, 어느 순간보다 열창을 한다. 스크린의 18번 홀의 티샷은 1번 홀 보더 다 신경 써 그립을 잡는다. 음식의 마지막 한 점은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건네며, 이별의 마지막 순간은 어느 때보다 고통스럽다. 유한함을 깨닫는 그 순간엔 본질보다 더 절박한 가치가 부여되며 어느 순간에 비할 바 아니게 된다. 그 마지막임을 자각하는 순간이라면, 시지프스도 돌을 굴리며 웃을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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