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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Feb 16. 2020

#잔인한 서명

1. 시한부 선고, 그 끝자락에서

2018년 07월 24일. 화요일


벌써 때가 되었다. 아빠는 요양병원에서 전문적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아빠의 병을 알게 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이 상황은 빠르게 다가왔다. 일을 하고 있는 엄마와 동생이 없는 시간 동안에 아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그 뒤를 따르는 불안감이 우리를 너무 힘들게 했다. 무엇보다 집에서 아빠 혼자 있다가 떠나는 일이 생기는 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빠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이것저것 챙겨 우리 가족은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아빠는 우리의 부축을 받으며 요양병원 안으로 한 걸음씩 들어갔다. 입원 수속을 위해 아빠는 기본적인 검사를 받으러 가고 아빠의 보호자인 난 여러 서류들을 작성하며 담당 의사와 대화를 나눴다. 서류를 작성하는 중에 담당 의사가 해당 항목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이 항목은 아빠에게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연명을 위해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입니다.”


연명을 위한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이미 마음속으로 했지만 내 손에 쥔 펜은 쉽사리 서명을 하지 못했다. 내 이름 세 글자를 적는 이 서명이 살면서 해왔던 그 어떤 서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무게가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마침 아빠가 검사를 받다가 돌아와 담당 의사와 난 대화를 잠시 멈췄다. 잠시 후 아빠가 다시 추가 검사를 받으러 나갈 때 난 엄마를 불렀다. 지금 이런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알려주고 서명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했었지만 내 행동은 쉽게 따라오지 못했다.


그래도 난 다시 펜을 잡아야 했다. 어느새 내 눈에는 눈물이 앞을 가리고 있었고 펜을 잡은 내 손 끝은 떨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서류에 내 이름 세 글자를 적었다. 아빠가 먼 길을 떠날 때 잡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하는 아들의 이름이었다. 지금 이 서명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살면서 해왔던 어떤 서명보다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이렇게 잔인한 서명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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