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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Feb 16. 2020

#울고 싶었나 보다

1. 시한부 선고, 그 끝자락에서

2018년 07월 28일. 토요일



다시 강원도 고향집을 찾았다. 나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 하지만 이제 나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텅 빈 집에 홀로 있는 내게 여러 감정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감정 중에 가장 내게 많이 들어온 것은 슬픔이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2주에 한번씩 통영을 가려고 했지만 아빠의 상황이 예상보다 빠르게 안 좋아지고 있었기에 이젠 매주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어느 때가 되면 한동안 머물려 했다. 아빠의 마지막만은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통영에 가지고 갈 짐들을 챙긴 뒤 난 서울로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런 저런 핑계로 명절에나 찾고 평소에는 마음만으로 찾았던 곳, 할머니와 작은 아빠가 있는 속초로 향했다. 혼자 간 건 처음이었다. 납골당에 도착하기 전부터 내 눈물샘은 차오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던 난 아마 한번쯤 속 시원하게 울고 싶었나 보다.


가족의 죽음을 처음으로 직접 마주한 건 작은 아빠 때문이었다. 고3으로 올라가기 전 방학이었다. 그날따라 아침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었다. 하루 종일 뭔가 일이 안 풀리는 느낌이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난 영문도 모르고 집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었다. 외할머니의 전화를 받고 아니겠지 하며 작은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곳은 초상집이 되어 있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친구들과 노는 재미가 더 커지면서 잘 안 찾아갔었지만 어릴 적 난 작은 아빠를 많이 따랐었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작은 아빠 앞에서 3일간 울다가 눈물이 마른다는 것을 느껴보았다. 난 분명히 울고 있는데 내 눈에서는 아무것도 흐르지 않고 있었다. 그 이후 가족이 떠나는 때가 되면 꼭 옆을 지키고 싶었다. 


그 약속은 내 마음과 같지 않았다. 군 제대 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전날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러 갔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셔서 제대로 인사를 못했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한번 들러 할머니를 뵙고 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전화 통화는 했지만 할머니는 내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섭섭함을 말했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할머니는 나와 통화하는게 힘들어졌고, 할머니의 주무시던 모습이 내게는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납골당에 걸려있는 사진으로 마주하고 있다. 오랜만에 찾았는데 아빠에 대한 이런 소식밖에 전할 수가 없어서 너무 죄송했다. 많은 말보다 많은 눈물로 내 마음을 전했다. 지금 현실이 안타까웠다. 할머니의 아들, 작은 아빠의 형이 곧 따라갈 것 같다는 소식에. 지금 내게 내리는 비는 금방 그치지 않았다. 차라리 폭우처럼 내리기를 바랐다. 


그렇게 홀로 차디찬 납골당에서 한참을 주저 않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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