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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Feb 20. 2020

#따뜻하게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었다면

1. 시한부 선고, 그 끝자락에서

2018년 08월 10일. 금요일



하루하루를 불안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었다. 너무 빨리 다가오고 있는 그때를 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아직 마음은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그때가 되었을 때 난 감당할 수 있을까.


오후 4시쯤 사진관에서 연락이 왔다. 영정사진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잠깐 사무실을 나와 찾으러 가고 있었다. 사진관을 향해 걸어가는 중에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에게 가고 있다는 다급한 동생의 목소리. 순간 직감하였다. 그리고 난 사진관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사진관에 도착해서 무슨 설명을 해주는데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고 기억나지 않았다. 빨리 결제를 하고 사진관을 나오면서 통영으로 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한다. 가장 가까운 시간은 1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더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확인을 하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아빠의 영정사진을 찾으러 가고 있을 때, 아빠에게 가는 동안 아빠는 내 곁을 떠났다. 


다시 사무실로 전력을 다해 뛰었다. 사무실에 복귀하여 짐만 챙겨 나와 서둘렀더니 겨우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통영으로 가는 4시간 동안 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가길 바랐다. 참아보려 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유난히 맑은 날이었지만 내게는 그렇지 못했다. 


내일 새벽에 작은 아빠와 같이 가기로 했는데. 조금만 더 참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조금만 더 참지, 하루만 더 기다려주지’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나는 홀로 이 말만 되풀이하였다. 


터미널에는 사촌 형이 마중 나와있었다. 형은 나를 데리고 요양병원 아래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도착 후, 영정사진을 놔두고 엄마와 동생과 함께 아빠를 만나러 갔다. 아빠는 햇살이 들어오지 않는 차가운 곳에 누워있었다. 처음으로 아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온기가 없는 아빠의 얼굴, 지금도 아빠의 볼을 만졌던 그 느낌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빠는 쓸쓸하게 우리 곁을 떠났다. 떠나는 그 순간 우리는 아빠 옆을 지켜주지 못했다. 이번에 통영에 내려가면 금방 서울로 못 돌아갈 것 같은 예감을 하고 있었다. 아빠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어서 당분간은 병원에 머무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계획은 소용이 없게 되었다. 


‘하루 아니 몇 시간만이라도 기다려줬다면 떠나는 순간 따뜻하게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슬픔은 끊임없이 밀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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