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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Feb 27. 2019

주말부부, 사랑의 언어

당신의 사랑의 언어는 무엇인가요?



남편과 나는 절친의 소개로 만났다.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남편의 회사 직속 후배인 친구의 등에 떠밀려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 급할 것이라곤 없는 남편 역시 내 전화번호를 받아놓고는 며칠 만에 연락을 해왔다. 두어 번 만나고 더는 연락이 없길래 최종 확인차 눈 내리는 날씨를 화제 삼아 보낸 카톡 메시지에 남편(당시 소개팅남)은 한달음에 우리 학교까지 찾아왔고, 야자감독을 마친 나는 부랴부랴 화장을 고치고 그를 만났다.


바빠서 연락을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연락을 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내가 먼저 연락을 준 것이 정말 고마웠다고 했고, 먼저 연락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두고두고 갚겠다고도 말했다.


첫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나는 바로 한 달간 중국으로 연수를 떠나게 되었고, 매일 영상통화로 속삭이다 잠이 들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한 달을 헤어지게 되었지만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중국에서 돌아와서는 함께 제주로 여행을 갔다. 그때가 우리의 첫날밤이었다. 남자들의 이상형이 '자취녀'라고 하듯 우리에게도 그전에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은 첫날밤 장소가 내 자취 아파트가 되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혈기왕성한 남녀가 입으로만 사랑을 속삭일 수는 없다. 남편의 소개로 알게 된 '구성애 씨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나는 상상 속 지식을 탑재했고 드디어 실습의 날이 온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의 케미는 잘 맞았다.



신혼여행에서는 8시간 비행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혼의 통과의례를 거친 후에야 잠에 들었다. 하와이의 눈부신 햇살, 청량한 바람,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비록 그곳에서 처음으로 말다툼을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남편을 만나, 심지어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단 한 번의 다툼도 없었는데 우리 둘 모두 엉엉 울 정도로 다퉜었다. 정확한 사유가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사소한 일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건강했고, 그래서인지 '허니문'을 통해 '베이비'도 얻게 되었다.


Pixabay


심한 기침과 함께 나를 찾아온 아기는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그 기간에도 우리는 자연스러운 자세를 찾아 사랑을 나누었다. 가끔 관계 중에 배뭉침이 찾아와서 아기한테 잘못하는 거 아닌가 죄책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출산을 하고 나서는 이상하리만큼 성욕이 '싹' 사라졌다. 내 몸이 아프고 아이로 인해 체력이 고갈된 고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성욕보다는 수면욕이 내 몸을 지배했다. 시간이 흐른 후 몸은 정상화되었지만, 내 몸은 이미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국에서 괜히 러브젤을 파는 것이 아니었다. 호르몬이란 것은 이토록 무서운 녀석이었다.


뿐만 아니라, 옛날과 달리 현대 여성은 신체가 건강해져서 '수유 중에도 임신이 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니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면서 차츰 남편과 부부관계가 소원해졌다. 마음이 멀어진 것은 아니고 다만 관심분야에서 벗어난 것이다. 다행스럽게 나 못지않게 남편도 늘 피곤에 절어 잠들기 일쑤였다.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은 없었다. 없었다고 믿고 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손을 잡고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몸이 더워지는 대신에 마음이 더워지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반드시 몸을 나누어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니까. 머리나 배를 쓰다듬고 손을 어루만지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사랑이 전달되었다.




사람마다 고유한 사랑의 언어가 있고, 사랑을 소통하려면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5가지 사랑의 언어 中, 게리 채프먼>


그러고 보니 나의 제1의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이었고, 그다음이 '봉사'였다.  남편의 사랑의 언어는 '봉사'와 '스킨십'이었는데, '선물'을 제외한 나머지 항목'인정하는 말'과 '함께 하는 시간'도 비슷한 빈도로 나타났었다.


이 때문에 나는 부부관계가 아니어도 남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남편 역시 나를 쓰다듬거나 내가 남편을 매만지는 것으로 사랑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의 언어로서의 스킨십은 성적 욕구를 해결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접촉하는 곳에 따라 즐거움의 정도가 다를 뿐이지 어떤 곳이든지 사랑스럽게 매만지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 된다. 부부관계 같은 밀도 높은 스킨십이 아니라도 사랑을 표현하고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남편의 손을 깍지 끼고 잡는 것을 좋아한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있으면, 남편의 어딘가를 늘 쓰다듬고 있다. 남편이 앉아있을 때 뒤에서 어깨를 주무르기도 하며, 소파에서 내 다리를 베고 누울 때면 나도 모르게 남편의 옆구리를 쓰다듬는다.


Pixabay



우리 부부의 사랑 전달법은 줄곧 이래 왔기 때문에 주말부부가 되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매일 보는 얼굴이 아니다 보니 더 반가웠고, 일상에 무뎌진 터치보다는 애절함이 담긴 어루만짐이 더 많아졌다.


물론 어색한 마음이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일주일 만에 집에 들어서는 남편이 가끔 손님 같기도 해서 남편의 손길에 쭈뼛 놀라기도 했다. 며칠 안 감은 내 머리냄새가 좋다며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 남편의 숨결에 정수리가 찌릿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고? 이미 마음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눈에 멀어진 것을 틈 타 그 간격이 더 벌어졌을 뿐이다. 부부가 서로 간 신뢰만 있다면 매일 못 보는 것이 서로의 마음을 멀어지게 하는 것은 분명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안한 부부라면 주말부부를 하지 않아도 결과는 동일할 것이다.



'인정하는 말'이 사랑의 언어인 나에게 남편은 오늘도 사랑을 표현한다. 동생의 심장수술로 방학을 포기하고 조카들을 돌보는 내게 매일 격려와 위로를 보낸다. 남편과 함께 제주에 있을 순 없지만 충분한 사랑을 전해온다.



충만감이라는 것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사랑하는 남편, 고마워~



Pixabay


주말부부의 애정전선, 이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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