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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Sep 09. 2019

약국집 아들과 결혼했더니.


"유튜브를 보니까 요새 이 비타민이 완전 핫하대."


남편이 약병을 쓱 내밀며 던진 말이다.


"또 샀어?"


고맙단 말 대신 내가 이런 말을 먼저 하는 이유는 열심히 사는 만큼 열심히 챙겨 먹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남편도.


집 안 곳곳에 약이 정말 많다. 치료용 약도 있지만 주로는 영양제이다. 종합비타민은 기본이요, 비타민D, 유산균, 프로폴리스, 가르니시아(앗! 이건 내가 다이어트용으로 사서 뜯지도 않은 거네), 밀크시슬, 스피룰리나, L아르기닌 등등. 이 정도는 어느 가정에나 있다고? 우리 집엔 종류별로 여러 개 있으니 문제다. 미처 다 먹지 못해 냉장고에서 썩어나가는 음식물처럼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지는 영양제가 넘쳐난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다 줘도 안 먹는다느니 하는 류의 잔소리는 없다. 남편도 안 챙겨 먹기 때문이다. 알람을 맞춰서 먹기로 해도 보통은 일주일 내로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온다. 답답한 것은 그래도 또 산다는 것.


남편의 쇼핑 욕구는 비단 영양제뿐만은 아니다. 마트를 가도 대단하다. 그런 남편을 두고 '아들신이 강림했다'고 해도 아랑곳 않는다. 2+1은 절대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열심히 걷다 곁에 없어 돌아보면 시식을 하고 있다. 혼자 장을 보면 40분, 3~4만 원에 끝날 일이 남편과 함께라면 1시간 반, 6~7만 원이니 고급인력을 쓰는 대가가 어마어마하다.


"누가 약국집 아들 아니랄까 봐."

"열심히 먹으면 되지."


누가? 누가 먹냐고? 누가 열심히?


"대장에 면역세포의 70~80퍼센트가 분포되어 있대. 프롤린 유산균이란 게 있는데 유산균 먹이까지 같이 있어서 장까지 살아서 갈 수 있대. 한 번 먹어보자."


이 말을 한 남편이 제주로 돌아간 바로 다음 날 배송이 왔다. 이럴 때는 정말이지 너무 부지런하다.



양가 부모님은 우리 부부의 건강에 관심이 많으시다.


나의 친정부모님은 건강염려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걱정이 많으시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자주 편찮으셨고 남동생은 병약했다. 나와 아빠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감기를 앓는 것 빼고는 '건강 빼면 시체'의 체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내 체력과 건강에 무한한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나의 부모님은 출산 후 비실해진 딸의 건강에 무한한 염려를 달고 사신다. 감기 한 번 걸리면 뽀르르 뜨끈한 죽을 쑤어 들고 오신다. 병원 가라는 채근은 기본 옵션이다. 사위가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면 '이서방도 체력이 많이 약한 거 같아'라고 일반화하기는 다반사, 그러면서도 '혼자 떨어져 지내면서 잘 챙겨 먹지 못해 그런 거야'라는 진단을 내리신다.


부모님은 어떠한가. 남편이 어려서 허약하여 비쩍 말랐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가족력으로 인한 각종 성인병을 안고 있다며 걱정이 많으시다. 간수치를 낮춰준다는 헛개물을 달이셔서 떨어질 쯤이면 택배로 보내주신다. 얼마나 대단한 정성인지를 알면서도 잘 챙겨 먹지 못한다. 또 허약체질이신 어머님마저 '나보다 더 부실해서 쯧쯧'이라며 허리가 좋지 않은 나를 향해 혀를 차신다. 그리곤 장 건강을 위한 유산균, 뼈 건강을 위한 비타민D를 부쳐주시며 반드시 챙겨 먹으라고 당부하시니 '쯧쯧' 가운데 걱정이 스며있음을 안다.


아무튼 그리하여 우리 집은 각종 영양제로 넘쳐난다. 양약과 한약의 경계가 없이 매우 많다. 못 챙겨 먹는 부덕한 아들-며느리와 딸-사위인 줄도 모르시고 말이다. 부모님의 이런 사랑을 받으면서도 변화하지 못했던 내가 작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아이다. 조금 아파도 더럭 겁이 나는 건 나 자신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염려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중병에 걸려 이리도 사랑스러운 아이를 오래도록 보지 못할까 봐 아이를 위해 나는 건강해야 했다.


남편이 제주로 가면서 그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다만 실천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을 뿐. 주말부부 생활을 하며 곁에서 돌봐주거나 걱정해주지 못하니 각자의 건강과 서로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는 것은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때마침 우리 둘 모두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하는 나이대에 들어서기도 했다. 올해는 제대로 된 건강검사도 받아보자며 다짐도 했다.


이뿐 아니라 운동도 시작해서 꾸준히 하고 있다. 영양제는 거들뿐 결국 '내 몸에 적절한 운동'이 건강에는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을 짧은 경험을 통해서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건강을 진심으로 염려한다.


'오늘 배가 좀 아픈데?'라고 말하면 '아이코'라고 즉각 반응해주는 남편이 곁에 없기에 스스로 나를 건강하게 지킬 방법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남편 역시 혼자 지내는 집에서 혹여라도 혼자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며 건강이 보내오는 신호에 무심했던 우리였지만 말이다.

남편은 물 대신 헛개수를 부지런히 챙겨 먹는 것으로, 나는 남편이 주한 유산균과 비타민을 챙겨 먹는 것으로 조금 변화하고 있다.


누구보다 우리는 건강해야 할 의무가 있는 주말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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