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디자인 그 첫 번째 이야기(가족편)
드디어 첫 미션이 생겼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방문했던 제주는 너무 힘들었던 기억만 가지고 있어서, 이제 초등생이 된 아이 둘을 데리고 다시 향하는 제주의 발걸음이 두렵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한 아빠.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아내에게는 쉼을 주고 싶은 아빠와 함께 고민을 시작했다.
숙소는 중문 근처의 서귀포시로 정하고, 애월과 성산 쪽을 둘러보는 대략의 계획을 잡으셨기에 그에 맞게 디자인을 해보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아이들이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다음 여행을 계획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부모에게서 멀어져 갈 텐데, 부모와의 여행마저 지루하다면 다시는 함께 하고 싶지 않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모든 것을 맞추다 보면, 부모는 재미가 없다. 여행이 아니라 아이들 수발만 들게 될 테니 굳이 비행기까지 타고 와서 그럴 필요 있을까.
그래서 하루를 적절히 나누어 한 코스는 아이들을 위해 남은 한 코스는 어른들을 위해 계획하는 것이 가장 좋다. 어린아이들이라면 낮잠시간에 어른을 위한 코스를 즐기면 되고, 더이상 낮잠이 필요없는 큰 아이들이라면 조금 수준 높은 구경을 시켜주면 되니까 말이다.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이 점심 즈음이라, 공항 근처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면 가장 좋겠다.
김만복 김밥에서 김만복김밥, 통전복주먹밥, 전복컵밥 등 골고루 주문해서 성게미역국과 먹으면 그 맛이 최고이다. 이렇게 심플한 재료들로 이렇게 풍성한 맛을 낼 수가 있을까 몇 번을 감탄하며 먹게 된다. 특별한 비법이 없고, 재료가 좋아서 좋은 맛을 낸다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성게알미역국도 성게알이 여느 식당보다 푸짐하다. 최소 1만 원은 하는데 맛은 비릿했던 유명 식당의 미역국보다 훨씬 훌륭하다.
다만, 본점은 매장 안에서 먹을 수가 없으니 들고 와서 차 안에서 간단히 먹어도 좋고 근처 해안도로에 주차하고 야외식을 먹어도 풍경과 더불어 꿀맛이다. 매장 식사를 원하면 라운지 지점을 찾으면 된다.
간단한 식사가 싫다면, 명가두루치기를 방문해서 전복흑돼지두루치기를 먹으면 어떨까? 전복을 포함한 해산물과 흑돼지를 함께 두루치기로 먹으면 더 풍부한 맛이 난다. 내가 갔던 곳은 서귀포점이었는데, 제주점도 있으니 공항 근처라면 여기도 괜찮을 것 같다.
식사 후에는 숙소 근처인 중문 쪽으로 이동하기를 권장한다. 중문에는 실내 위주의 관광지들이 밀집해 있으므로, 어른들에게는 조금 심심할 수 있겠으나 아이들로선 가장 흥미로운 것이 많은 곳이다.
날씨에 나쁘지 않으면, 쇠소깍이나 천제연 폭포를 먼저 가기를 추천한다. 석양이 아닌 이상 날 밝을 때의 자연이 더 멋지게 보이는 법이다.
(기존 계획안 코멘트: 엉또폭포의 경우 비가 올 때 가야 장관이 연출되며, 쉬리의 언덕은 영화의 향수가 있다면 몰라도 결국은 바다를 보며 호텔 정원을 걷는 거라서 심심할 것 같다.)
쇠소깍은 소가 누워있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바다와 하천이 만나는 지점인데 물색깔이 정말 아름다울 뿐 아니라 나무로 덮인 산책로를 걷는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요즘에는 투명카약이 없어져서 아쉽다는 이들도 있지만, 카약 없이 그 자체로 너무 멋지다.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까지가 하천수인지 구분이 안 가는 물빛의 그라데이션이 마치 내가 사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할 것이다.
길 건너 귤하르방빵과 천혜향 쥬스로 아이들의 입맛도 사로잡고, 올레길 6코스 스탬프로 재미도 사로잡아 보시길.
(비 오는 날씨라 사진이 좀 그렇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세요. 비경입니다.)
천제연폭포 역시 비 오면 더욱 멋지다고 하지만, 맑은 날에도 비취색 물빛에 한참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총 3개의 폭포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멋진 것은 제1폭포이다. (제3폭포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것이 조금 힘들 수 있으니 등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만 추천한다. 나는 장가계를 5시간 등산한 후 내 인생에 등산은 없다고 선언한 사람이라서...)
제주의 물빛은 바다와 계곡을 막론하고 모두 오묘하고 예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그 느낌이 모두 다르다. 천체연폭포는 어쩐지 선녀들이 목욕했을 것 같은 아름다움과 은근함이 매력인 곳이다. 물이 정말 맑아서 바닥의 돌들이 보이며 폭포 근처의 물빛은 방금 쪽빛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다.
어른이 즐거웠다면 이제 아이들 차례. 물론 순서는 상황에 따라 가족들의 컨디션에 따라 변경해도 무관하다.
중문에서 초등 여학생이 좋아할 만한 곳은 믿거나말거나 박물관, 플레이케이팝, 헬로키티아일랜드 등이다. 사진을 먼저 보여주고 한 군데 정도 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 1시간이면 관람 가능한 곳이며, 특히 헬로키티아일랜드는 사진 찍기가 좋아서 여학생들이나 큐트한 것을 좋아하시는 여성들에게도 안성맞춤이다.
{믿거나말거나 박물관}
{헬로키티아일랜드}
이제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고, 근처에서 식사를 하면 되겠다.
(앞서 말한 숙소 근처 명가두루치기나 쇠소깍 근처의 오가네전복설렁탕 괜찮다.)
애월 쪽에서 곽지해수욕장, 한림해안도로, 공룡랜드 등을 계획하셨기에 이를 기초로 수정 디자인에 돌입했다.
8월 말 경은 아직은 더운 날씨라 이왕이면 아침 일찍 바다놀이를 가거나 4~5시쯤 물이 서서히 들어올 때쯤 가는 게 낫다.
애월, 한림 쪽은 곽지, 협재, 금능 등 아이들 놀기 좋은 해수욕장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금능을 추천한다. (곽지는 천연수영장처럼 돌담이 쌓여있어 아이들 놀기 좋고, 용천수가 흘러나와서 물이 좀 빨리 차가워지는 편이다. 협재는 사람이 많고, 쓰레기 관리가 잘 안되어서 좀 지저분한 느낌이 있다.)
간조기 금능 으뜸원해변에 가면 아이들이 잡고 놀만한 생물들이 엄청 많아서 놀기 좋다. 물때표를 보면 간조기가 몇 시쯤 되는지 알 수 있다. 8월 29일은 10:05, 17:25가 만조이니, 아침 일찍 중문에서 서둘러가면 충분히 놀 수 있다.
참고로 간조기가 해 질 녘과 맞물린다면 인생 낙조도 만날 수 있다.
{금능 으뜸원해변에서의 여행 에세이가 궁금하다면}
바다놀이 후에는 점심식사를 해야 어른도 아이들도 버틸 수 있다.
요즘 이효리의 컴백 후 그녀가 가는 모든 곳이 이슈가 되고 있다. 하긴 연예인이 다녀간 곳이라면 모두 북적이기 마련이라 꼭 이효리라서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어쨌든 요즘 대세는 이효리인 듯하다.
그녀가 요가를 선보였던 카페가 이곳 협재해변의 쉼표카페라는데 꼭 여기를 가보겠다고 한다면, 식사는 한림 쪽에서 해야 한다. 독개물항, 수우동, 피어22, 협재국수가게 등이 있는데, 푸짐한 해산물찜이 나오는 피어22를 추천한다. 간단하게 먹으려면 협재국수가게도 괜찮다.
{피어22}
딱새우와 감자, 소시지를 비롯하여 추가 선택한 해산물을 통째로 쪄서 내주는 곳이다. 맛도 좋고, 딱새우를 까먹는 재미도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협재국수가게}
성게국수는 성게 미역국에 국수를 만 것과 같은 모양새인데, 간간하기는 했지만 미역국보다 성게알도 많이 들어있고 깔끔하다. 보통의 보말죽은 보말을 갈아 짙은 초록색인데 여기는 보말을 통째로 넣어 씹는 맛을 살렸다.
쉼표카페를 꼭 가야 하는 게 아니라면, 애월 쪽으로 이동해서 해안도로에 있는 로맨스홍의 돌문어라면이나 흑돼지카레, 국물떡볶이 또는 요리하는 목수의 수제버거를 추천한다.
{로맨스홍}
카레 자체의 맛도 일품이지만, 흑돼지 완자가 전혀 잡내 없고, 담백하다. 돌문어라면은 제주의 각종 해물라면보다 저렴하지만, 그 맛은 먹어본 해물라면 중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탱글탱글한 식감의 돌문어가 곳곳에 듬뿍 들어있고, 대파가 신의 한 수.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으시다면}
{요리하는 목수}
약간은 칼칼한 미트볼소스 버거. 첫 비주얼로 아이를 사로잡는다. 굉장히 훌륭은 아니지만, 조화로운 맛이 있어 한 번은 먹어볼 만하다.
점심식사 후 디저트는 해안도로 쪽 카페인디고, 달자카페, 망고레이 등이 있다. 해안절경을 보며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좋은 카페가 많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봄날카페를 들른 후 애월산책로를 걸으시기를.
{카페인디고}
{달자카페}
{봄날카페}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으시다면}
커피 타임 후에 애월(한림) 쪽에서 아이들과 가볼 만한 곳은 유리의 성이나 한림공원(8월엔 연꽃축제)을 추천한다. 말들을 보고 싶으면 성이시돌목장을 예쁜 제주초등학교를 보려면 더럭분교와 연화지로 가면 된다.
(기존계획안 코멘트: 공룡랜드는 취학 전 어린이나 저학년 남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라서 수준 높은 여학생들은 재미있어할지 의문이다. 소인국테마파크는 사진 찍기 좋은 정도.)
{유리의 성}
실내보다는 곶자왈 코스가 볼 만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쟁그랑쟁그랑 울리는 유리풍경 소리가 동화 속 숲길을 산책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귀여운 공예품 뿐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공예체험도 할 수 있다.
{한림공원}
사계절 아름다운 공원이라는데 3월 튤립축제에 갔을 땐 감탄했고, 6월 수국축제에 갔을 땐 그저 그랬다. 한 번 가보기엔 괜찮다. 어떤 꽃이 풍성하게 피었느냐가 관건인데, 입장 전 현재 축제하는 꽃이 만발했는지를 꼭 확인하는 게 좋겠다.
{성이시돌목장}
{더럭분교와 연화못}
저녁을 올레시장에서 해결하려면, 마늘치킨은 어떨까. 나는 한라통닭에서 포장해서 차 안에서 맛있게 먹었는데, 요즘은 마농치킨이 대세인 듯.
아침에 여의케 되면 외돌개를 포함한 올레길 7코스를 잠시 산책해도 좋을 것 같다.
이날은 아빠의 계획대로 성산의 우도잠수함이나 섭지코지를 가면 된다. 다음 여행때는 우도만 별도로 계획해도 좋다.
섭지코지는 올인에 나와서 유명해진 곳으로 제주 여행의 필수코스인데 솔직히 개인적으로 멋있는지는 모르겠다. 유채가 만발했을 때 근사했던 기억만 있다.
비가 많이 오면 아쿠아플라넷도 해녀 다이빙 등 제주만의 매력이 있어 좋다. 비자림은 보슬비 정도라면 우산이나 우비로 걷기 좋은 길이다.
성산에서 점심은 커피로드아이야의 일출봉 피자를 추천한다. 맛도 좋지만, 주변 경관이 정말 끝내준다.
이왕 중문을 떠나 성산까지 계획했다면, 구좌의 레일바이크도 추천하고 싶다. 바이크에 앉아서 시원하게 자연을 관람하는 기분이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전동바이크라서 아빠가 힘들지도 않고, 때때로 스릴도 있어 아이들도 아주 좋아한다. 날씨가 덥지 않으면, 근처에 용눈이오름이 있으니 1~2시간 정도 오름 산책을 해도 좋을 듯.
성산에서 저녁까지 해결한다면, 두 곳을 추천한다. 성산수산의 고등어회와 민트 레스토랑의 스테이크.
{성산수산}
함께 술잔을 기울이지 못해 아쉽지만, 시원한 탕과 일품 고등어회를 맛볼 수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으시다면}
{민트}
성산수산이 동네횟집이어서 분위기를 낼 수 없다면, 휘닉스 아일랜드의 레스토랑으로 바다 조망이 근사한 민트로 향하라. 건물 디자인과 석양 무렵 경치가 정말 훌륭하다. 눈 앞에서 불쇼를 보는 재미도 있고, 가격 대비 맛도 좋다. 미리 예약해야 기다림 없이 이용할 수 있으며, 휘닉스아일랜드에 주차를 하고 셔틀로 이동하면 된다.
아내를 위해 면세점을 가게 해주고픈 아빠. 그곳은 20시까지 운영하니 최대한 낮 시간을 즐긴 후 가면 된다. 생각보다 크지 않고, 인천공항면세점 생각하면 아주 작다.
비행기 탑승까지 시간이 남으면, 공항 근처의 용두암이나 이호테우해변을 들러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멋진 가족여행이 마무리된다.
아이들이 재미있고, 어른들은 힐링이 되는 여행. 어렵지 않다.
내가 행복하기에 앞서 가족이 행복하고 아내가 쉼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아빠의 여행 계획이 아무쪼록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해본다.
이 여행에서 이 가족의 가장 행복한 사진이 남겨진다면 좋겠다.
우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