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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크M May 25. 2020

카톡 감청을 원하는 2020년 대한민국에서

'세가지 시선'이 필요한 이유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은 1794년,

최소한의 비용으로 노동자를 감시·통제하기 위한 원형감옥 '파놉티콘(Panopticon)'을 고안했다.

수용자는 감시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지만,

감시자는 중앙의 원형감시탑에서 수용자의 모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감시 권력을 드러내지 않아도 수용자는 감시자의 존재를 끊임없이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100년 후 벤담의 파놉티콘은 시간이 흘러 통제사회를 의미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감시사회'를 뜻하는 말로 진화했다.

식민지 쟁탈전과 민족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대,

공적 이익을 도모한다는 명분 아래 파놉티콘은 정치권력의 도구로 정당화됐다.



파놉티콘 설계도. 출처:위키미디어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며 국가의 감시는 당연시됐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파놉티콘을 부수고 진정한 의미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했다.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정치세력이 집권한 이후, 파놉티콘의 벽은 허물어졌고

새로운 정치의 장이 된 온라인상에서의 자유와 다양성 존중은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호됐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와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국민들이

스스로 부수고 나온 파놉티콘을 다시 세우고 있다.

6년 전 국가의 감시를 피해 '온라인 사이버망명'까지 선언했던 우리 국민들이 갑자기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온라인 민주주의를 외치며 줄기차게 기사를 썼던 나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라며

 "제한적 본인 확인제(인터넷실명제)는 표현과 언론 자유를 침해한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후 온라인상에선 "오늘이 인터넷 광복절"이라며 헌재의 결정을 지지하는 댓글이 수백만 개 달렸다.

당시에는 야당이던, 현재 여권의 주요 인사들도

일제히 외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를 통해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려는 이명박 정부와 여당의 무리수가 위헌으로 돌아왔다"며 일제히 비판했다.

그리고 2년 뒤 이번에는 범죄자 색출을 명분으로 꺼내 든, 박근혜 정부의 검열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 국민은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망명'을 택했다.

당시 무려 200만명에 달하는 이용자가 썰물처럼 카카오톡을 떠났다.

 정부의 감시를 피해 텔레그램에서 자유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의지였다.

국내 사업자인 카카오는 감청영장에 불응하겠다고 선언했고,

결과적으로 당국에 눈밖에 나 여러 고초를 겪었다는 것이 당시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카카오는 아동·청소년물이 카카오톡을 통해 유통된다는 혐의로

당시 CEO였던 이석우 전 대표까지 재판장에 소환, 성범죄자 낙인이 찍혔다.

런데 여론은 지금의 'n번방 사태' 다르게 움직였다.

당국의 지나친 검열에 대해 여론은 분노했고, 결과적으로 이 전 대표는 무죄로 풀려났다.

코로나19와 조주빈이 연 '신 파놉티콘 시대'촛불혁명을 통해 정권이 바뀌자마자,

갑자기 여론은 인터넷 플랫폼을 향해 담장을 쌓으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보기 싫은 정치뉴스에 댓글이 쌓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혐오 표현을 줄여야 한다고 비판하며 특정 뉴스에는 아예 댓글을 달지 못하게 했다.

이모티콘마저도 '화나요'는 사라지고 오로지 응원만이 자리했다.

누군가 쓴 댓글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댓글을 달아왔는지 이력 또한 소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리고 여론은 '그 방에 입장한 너희는 모두 살인자다'라는 피켓시위를 통해

이번엔 조주빈과 n번방 범죄 일당을 넘어온 국민을 감시의 창구로 밀어 넣었다.

 최근 국회는 이름도 긴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이제 카톡이나 포털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물이 유통되면, 인터넷 사업자가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한다.

여론은 모든 국민이 온라인상에서 어떤 콘텐츠를 사고 파는지, 전수조사하길 원하는 모습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대미문의 역병으로 분노에 찬 국민들은

 이번엔 이태원 인근을 종횡무진한 철없는 젊은이들을 향해 분노를 쏟았다.

이에 정부는 이동전화 기지국 정보를 취합, 이태원 클럽을 종횡무진 활보한 젊은이들을 색출했다.

덕분에 방역당국은 빠르게 후속조치에 나설 수 있었고 국민들은 안도했지만,

이 같은 전례로 인해 공권력은 언제든 필요에 따라 온 국민을 이 잡듯 감시할 수 있게 됐다.





기술진보의 시대, 세가지시선이 더욱 필요한 이유


최근 발생한 디지털 감시 사례로

당장 '21세기판 빅브라더'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제2의 조주빈 일당이 등장하지 않도록 조기에 차단하고,

악플에 시달리는 인플루언서의 목숨을 살리고,

여전히 치료제를 찾지 못한 역병의 발원을 막기 위해선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오는 8월5일 시행을 앞둔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과 관련해

 '국민의 77.4%가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다'는 조사 결과를 보면,

여론의 흐름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공권력은 한번 쌓아놓은 파놉티콘의 벽을 쉽게 허물지 않을 수 있다.

위기가 끝나도 디지털 감시체계는 일상화할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손바닥 뒤집듯 여론은 바뀔 수 있고,

 그때는 우리가 쌓은 파놉티콘이 힘들게 이룩한 자유민주주의를 옥죄는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


거창한 내용의 글을 길게 이어갔지만 그래서 테크M은 세가지시선에 주목하고 있다.

터넷사업자에 대한 규제부터 IT 자본의 국적성, 망중립성,

새롭게 등장한 벤처기업과 재벌의 잣대,

배달사업자의 수수료 문제부터 카풀의 허용,

상자산 거래에 이르기까지

기술진보로 인해 촉발된 사회적 갈등은 수도 없이 존재한다.




막내기자부터 편집장까지, 누구나 자라온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세가지시선을 통해 기존 미디어가 시도하지 않았던 다양한 의견을 모두 보여주려 한다.

수습기자 시절, 사수가 자주 쓰던 문체(비문이 아닌)를 이직한 회사에서 그대로 썼을 때

'조악한 쓰레기'라고 나를 꾸짖던 데스크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울린다.



테크M '세가지시선' 바로가기->

https//www.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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