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과 두 딸들이 나만 쏙 빼놓고 대만으로 여행을 떠났다. 뭐 나만 쏙 빼놨다기 보단 연초부터 휴가 쓰고 여행을 가는 게 쉽지만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자발적 자유를 택했다고 해야 할까.
새벽 댓바람부터 참 분주하게 떠나갔다. 떠난 그 자리, 바람 한 조각 남지 않았다. 잠깐 배웅을 하느라 잠을 깬 나는 다시 선잠에 빠졌다.
다시 깨서 출근 준비하고, 시간은 또 빠르게 흘러 어느덧 퇴근 시간. 편의점에 들러 맥주 매대를 둘러본다. 오호, 처음 보는 대만 맥주가 있다. 골드 메달이란다. 금메달이라. 다들 대만 여행도 갔겠다, 기왕이면 대만 맥주였다. 네 캔 사면 할인해 준다니, 1만 1000원어치 맥주를 사들고 룰루랄라 집으로 향한다.
집에 들어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숟가락 뜬다. 마음은 온통 맥주에 가있다. 바로 대만 맥주에 빠져든다. 기왕지사, EBS '세계테마기행'서 대만 편을 찾아본다. 마침 어제부터 대만 여행기가 시작됐다. 뭔가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물론 직접 현지에 가서 즐기는 대만 여행이 훨씬 좋을 건 분명하다. 하지만 집안에서 떠나는 대만 여행도 내겐 딱 맞는다. 나중에 여행 장단이라도 맞추려면 지금부터 공부가 필요하다. 이런 여행 공부라면 서울대라도 가겠다.
대만 여행기에 대만 맥주에, 마치 대만에라도 간 듯 동화가 된다. 맥주는 술술 잘도 들어간다. 두 편의 대만 여행기를 보는 동안 맥주 세 캔을 뽀갰다.
알딸딸한 기분에, 까무룩 잠이 쏟아진다. 뭐 초저녁부터 잠을 자든 뭐를 하든, 간섭할 사람이 없다. 9시 40분에 잠자리를 청한다. 평상시에도 일찍 자는 편인데, 오늘은 완전 아기 수준이다.
평소에 혼자만의 시간을 상상하곤 했었다. 혼자니까 평소에 못했던 거 맘껏 해보면서 그렇게 정말 잘 지낼 줄 알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콧바람 쐬는 것도 하루이틀, 이렇게 혼자 살다가는 자칫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술독에 빠져서 폐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다.
아무래도 혼자 있는 거에 어마어마한 환상을 가졌나 보다. 그냥 또 다른 생활일 뿐인데 말이다.
홀로 집에 있어도 잘 챙겨 먹고, 또 온전한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벌써 든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혼자만의 시간을 잘 견뎌내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제 막 하루를 보냈을 뿐인데, 혼자만의 시간이 참 무겁게 다가온다. 남은 이틀 정도는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지 연습하는 시간으로 삼아야겠다.
ps. 그래도 오늘은 브런치 글도 썼으니 참 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