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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겨울에 꽃씨

시&에세이

by 여상

[ 내 겨울에 꽃씨 ]

어느 날 우연히
그대 사진 속

책상 언저리에 놓인
꽃씨
작은 봉투를 보았죠


금잔화, 꽃양귀비, 제비꽃

데이지, 베고니아, 파란 팬지와

그대 닮은 노란 수선화


봄을 기다리고 있었군요
그대는
창 밖엔 아직도
눈이 내리는데

내 겨울도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나 봐요


방 안 한가득

새뜻한 꽃향기

가만히 눈 감으면

화사한 꽃잎 꽃잎


봄이 오면

함께

꽃씨를 심을까요?

머나먼 꿈에 든

꽃씨마냥

말 못 하는
내 마음 숨기고


그대, 가슴까지

새봄 차오를 날

두 손 가지런히

기다릴게요





아침에 햇살이 마을을 화사하게 비추더니, 오후가 되자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더 많이 쏟아진다. 나보다 고지 높은 마을에 사는 J가 사진을 보내왔다. '와아' 소리가 절로 나는 아름다운 설경! 오늘 자연이 그려낸 또 한 장의 명화. J는 시선이 남다른 친구이다.


눈이 많이 오는 시골은 자연스레 이동이 끊긴다. 오늘 식당 장사는 물 건너 간 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에 강제 휴일이라니. 오늘 하루는 굶어야 하나? 이럴 때는 긍정! 긍정! 마음까지 굶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적당한 자리를 골라 노트북을 연다. 뜨거운 커피도 한 잔 가져다 놓고!


친구가 보내온 산마을 설경이 아름답다.


이런저런 키워드를 따라 인터넷을 소비하다가 글솜씨에 끌려 어떤 블로그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주인장의 일상일 텐데, 촬영솜씨가 훌륭하기도 하거니와 사진과 함께 하는 재치 있고, 때론 의미 있는 글들이 좋았다. 본인을 노출시키지는 않았지만, 포스팅 몇 편을 넘겨 보자니, 가야산 어드메쯤에 귀촌한 여성 분인 듯했다.


책과 노트북, 빵 조각과 찻잔 등으로 어수선한 책상, 사진 구석에는 꽃씨봉투들이 몇 개 무심하게 흩어져 있었다. 블로그 글의 흐름이 독서와 관련된 것이다 보니 책상 구석의 꽃씨 봉투는 언젠가부터 그냥 놓여 있었는 듯 보였다. 꽃씨봉투, 사진 속 그 집 마당에 아직 눈도 녹지 않았는데...

'한겨울 방 안 책상 위에 뜬끔없이 꽃씨봉투라니..'


포스팅 글에는 꽃씨는커녕 꽃이나 봄에 대한 한 마디 언급도 없이, 최근 읽고 있는 고흐화집에 대한 이야기와 일상 이야기가 잔잔하고 재미있게 풀려가고 있었다. 나는 사진 구석의 꽃씨봉투에 시선이 꽂혔다. 분위기와 불화하고 있는 오브제가 주는 이질감은 가끔 공연한 호기심을 던져주곤 하지 않았던가?



'보고 싶다 졸라댄다 한들 이 겨울에 화사한 꽃을 피울 수 있겠나? 사랑해 달라 보챈다고 주머니 속 동전 꺼내듯 애틋한 마음이 발동할 리 만무이지 않은가.'

건조했던 마음이 이렇게 또 제멋대로 공상에 빠져 든다.




사랑은 그리움이 원천이다. 그저 내 생각이 그렇다. 그리움은 기다림에서 유발된다. 기다림이란 결국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 거리가 지형적 거리이든 마음의 거리이든지 간에.

거리 또는 간격은 만족이 아닌 결핍에 가깝다. 채워야 할 무엇이 있을 때 우리는 갈망하고 갈애한다. 그 불안감 때문에 애써 거리를 좁히려 하고, 간격이 더 벌어질까 두려워 수시로 무언가로 채우려 한다.


다른 한편 우리네 일상에서는 거리가 필요해 보일 때가 자주 있다. 모두 채워 버린 관계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아는 사실, 복닥거리기 시작한다. 물론 나는 그 복담거림의 사랑을 숭고하게 생각한다. 그 부대낌의 체온으로 서로의 허술한 등뒤를 맡기고 고단복잡한 삶을 함께 헤쳐 나가는 리얼리티의 위대한 사랑을! 그러나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호그와트로 가는 정거장처럼 조금 이색적인 노선이다. 하지만 이 정거장을 거치지 않은 사람 또한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허전하고 쓸쓸해 보이지만, 정작 그 뒤안길은 은밀하고 아름답다. 그리움의 마음이 잘 정제되었을 때 사람은 곧 자신을 만나게 된다.


'나는 왜 너를 기다리는가? 너를 그리워하는 나는 누구인가?'


그렇게 결핍의 통증을 안고 깊어지는 질문은 자신을 잘 익은 된장처럼 숙성시킨다. 오래 숙성된 된장의 은근하고도 깊은 맛. 어느 요리에서도 자극적으로 튀지 않고 맛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어머니가 담그신 장독대 토종된장이 아니었던가! 기다림의 미학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계절이 다한 꽃나무는 서둘러 씨를 맺으며 초라해진 꽃잎을 정리한다. 씨앗 안에는 한 계절의 기억과 무구한 전생의 기억이 담겨져 있다고 상상해 본다. 마른 풀잎은 처연히 땅으로 돌아가고, 이제 씨앗은 몇 생의 푸르른 기억을 소중히 안고 깊은 잠 속에서 시절인연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 기약 없는 기다림과 새봄을 향한 그리움의 무게는 얼마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왠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돌아오는 봄, 씨앗을 도와 앞마당에 꽃씨를 심을 때는 씨앗 하나하나마다 성스러운 기도를 올려야겠다.


"기나긴 기다림을 다 했으니, 그대 아름다운 그리움을 꽃피우소서."





사랑은 그리움이다. 그러니까 기다림이다.


채워지지 않는 간극, 좁혀지지 않는 거리,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진실한 사랑은 계절과 별리한 꽃씨처럼 늘 아쉽고 아프다.


글을 적는 동안 창밖은 설경 그윽한 밤이 되어 버렸다. 오늘은 꽃씨에 취해 지극히 감상적인 색실을 몇 올 풀어 시를 적었다. 나도 가슴에 꽃씨 하나 간직하고 있다가 누군가의 마음 빈터에 그 꽃씨를 심어보리라. 그리고 기꺼이 아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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