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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시&에세이

by 여상

[ 눈 오는 날 ]

가난한 주머니를 뒤져
갓 구운 붕어빵에
두 손 온기 좀 더 보태
그대에게 보내오
눈이 펑펑 내리는데

붕어빵 먹다 보면
내 심장 열어 보낸
따뜻한 단팥소
그게 내가 가진
전부라오

그래도 아쉬워
두 덩이 눈 뭉쳐
눈사람을 만들었소
그대이길 바랐기에
눈코입은
맘 속으로 그려 넣었소

하얀 눈송이들, 차마
떨어지지 못해
주춤이는데

눈사람 녹으면
따뜻했던 기억

붕어빵이 식을까
내 속이 서늘해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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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다. 언덕에 있는 식당인지라 눈이 오면 얼기 전에 바로 치워 주어야 한다. 모든 일을 혼자 해나가야 하는 일인 식당, 그래서 눈이 오면 치울 생각에 마음 한켠 부담이 끼어든다. 그럼에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낭만가인 나는 눈이 내리는 날이 참 좋다. 식당 테라스에서 눈 내리는 산과 물과 마을을 내려다보는 낭만의 특권이라니! 개뿔도 가진 게 없는 나이지만, 이럴 때는 중세 유럽 성주처럼 허세를 떤다. "나, 대한민국 1%야!"


면소재지가 끝나는 길에 깔끔한 편의점이 하나 있고, 그 맞은편에는 붕어빵 포장마차가 있다. 추워지면 등장하는 붕어빵 부스, 쉰살이 넘은 노처녀 Y군이 사장이다. Y는 그야말로 만능일꾼이다. 제철에는 고사리 꺾어다 말려서 팔고, 피서철엔 사촌 펜션의 종업원이 되었다가, 서늘해지면 감을 따서 곶감을 엮는다. 부지런하고 사람 좋고 수완도 좋은 그녀의 겨울은? 따뜻한 붕어빵과 뜨끈뜨끈한 어묵! 바람이 스산한 날에 붕어빵, 어묵국물에다가 편의점 소주 한 잔 곁들이면 심장까지 따뜻해진다.





"자네 붕어빵은 특별히 맛있구먼. 동네 물이 좋아 그런가?"

"단팥을 듬뿍 넣어서 맛있지, 오라버니야."

뜨거운 붕어빵을 쪼개 호호 불어 한 입 넣으니 없던 정(情)도 새살 돋듯 일어난다.


단팥처럼 엉겨 살던 정들이 있다. 나의 그리움 속에는 오래전의 그들이 있고, 사랑한 사람들이 있고, 고마웠던 사람들, 미안했던 사람들이 있다. 지난 시절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립고, 아직 만나보지 못한 미래의 아름다운 사람들도 그립긴 마찬가지이다. 나의 사랑과 그리움의 원천은 그래서 마르지 않는다.


조용한 지리산 마을에 눈은 하염없이 펑펑 내리고, 어딘가에 잘 살고 있을 고마운 그대들에게, 세상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그리운 이들에게 가난한 내 마음이 따끈한 붕어빵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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