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세이
[ 혼 밥 ]
혼자서 먹는 밥이
익숙해지면, 이젠
외로움에 허둥대지 않는다는 것을
저 모르게 알게 됩니다
굳건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밥알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자
반찬 한 가지를 얹어
꼬옥 꼭 씹어 삼킵니다
젓가락질 바빠질까 문득
민망해지면
창 밖으로 하늘을 봅니다
그러면 지나간 얘기들...
빙긋이 지우고, 앞으로 올 일들...
고개 저어 지우고, 다시
밥상으로 돌아와
이 시간을 꼭꼭 씹습니다
물도 한 잔 마셔가면서
오늘도 한 끼니 밥을
잘- 먹었습니다
essay
밥상을 마주할 때마다 기도를 한다. 특정한 신(神)을 대상에 놓고 하는 기도는 아니다. 수저를 들기 전에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우리네 예절은 소중한 행위이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만나는 "이다다끼마쓰."하며 두손을 모으는 모습도 참 보기가 좋다.
나의 기도는 이렇다. 먼저 덕행(德行)이 모자란 사람에게 이런 따뜻한 음식이 과분하다는 인사를 한다. 불교의 공양게에서 얻어온 의식(儀式)이다. 그리고 내 생명유지를 위해서 제 몸을 내어 준 뭇생명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나도 때가 되면 그렇게 순환하리라고 약속도 하고... 요즘은 암투병을 하고 있는 후배와 가까운 이웃에게 우주의 에너지가 잘 닿기를 기원하는 한 마디를 보태고 있다. 달리 내어 놓을 것이 없으니 마음이나마 보태고자 하는 것이다.
혼자 사니까 당연히 혼자 밥을 먹는다. 허술하게 먹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밥상을 제대로 차려 먹는다. 따끈하게 국이나 탕도 끓여 내고, 고기와 여러 채소들로 조리한 반찬 서너 가지도 접시에 담는다. 조미김도 좋아하고, 특히 아침에는 계란프라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 살다보니 즐겨먹는 음식에도 패턴이 생겨서, 미리 반찬을 요리해 놓는 것에도 익숙하다. 요즘에는 지난 봄에 담근 명이나물 장아찌 맛에 푹 빠져있다.
십여 년 전, 혼자 밥을 먹을 때마다 허전하고 심란했었다. 밥이라는 게 혼자 먹다보면 '아, 혼자로구나.'하는 생각이 도드라지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지금은 잘만 먹고 산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 그저 음식에 담긴 식재료의 맛을 온전히 느끼며 꼭꼭 씹어 먹는 것이다. 콩, 현미와 잡곡을 잔뜩 넣고 지은 밥은 씹는 재미가 그만이다. 꼭꼭 씹다보면 이런 저런 곡식의 개성적인 맛을 다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반찬들,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김장김치는 말해 무엇하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식사를 즐기는 편이다. 혼밥을 즐기려면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공연히 마음이 바빠져 빨리 삼키면, 음식 맛도 소화도 절반이 된다. 물론 지인들과 함께 외식을 하게 되면 속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 들 숟가락을 놓고 내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라는 형국은 늘 피할 수 없지만.
식전에 하는 기도의 끝에는 '이 시간을 진실하게 살도록 하소서'하며, 정신차리고 살자고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공염불이라는 걸 알지만, 식사 때마다 한 마디를 상기하고 나면 약효가 몇 분은 가기 때문이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창 밖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하다. 밥을 잘 먹은 하루가 또 별 일 없이 흘러간다.
#일상 #혼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