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근원을 생각해본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공식적으로 이 책은 소설의 범주에 속하지만, 나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수필로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자전적 소설을 뛰어넘어 작중 화자가 글쓰기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글을 읽는 독자에게만 주어진 인식의 영역까지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에르노 자신이 겪은 일들을 녹여냈다는 점에선 특별할 거 없는 자전적 소설일 수 있으나, 작중 화자가 메타인지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설보단 수필의 영역에 더 가깝게 위치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불륜이라는 비윤리적 관계에 대한 사랑이 열정으로 나타나는 소재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일체 하지 않고자 한다.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그런 극적인 형태를 띠는 열정이라는 개념보다 그 감정을 풀어내는 지극히 단순함에 더 다가가고 싶다.
이 책이 자극적 소재를 선택하지 않고, 가령 '단순한 용기'라는 제목으로 여러 도전했던 일상들을 비슷한 구성으로 풀어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이야기가 주는 자극적인 감각은 사라지는 대신, 그 용기의 도전을 기록해낸 형식과 방식에 눈을 둬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열정에 대한 서사보다는 그 서사의 단순한 기록에 집중하기로 한다.
'단순한 열정'. 공감할 수 있는가? 혹자는 열정의 종류가 지나친 것이어서 단순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다른 혹자는 열정의 치열한 나열에 단순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순간순간의 내 모습을 토해내는 창구로써의 글쓰기, 과거의 나를 영원히 불변하게 구속하는 족쇄로써의 글쓰기. 복잡하지 않고 간단한, 그야말로 단순한 글쓰기.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열정』은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순간마다 나에게 다가온 단어들을 종이 위에 적어나가는 행위. 글쓰기의 본질적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독자로 하여금 그런 근원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가 바로 『단순한 열정』이고, 더 나아가 개념적 의미에서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극적인 소재와 열정이라는 어떤 뜨거운 무형의 것이 미끼로 느껴진다. 정수를 맛보려면 본능이 이끌리는 일차원적 자극을 뛰어넘고 와야 하는 그런.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과 혹자들이 쓰는 일기를 비롯한 모든 글들은 본질적으로 그 의미가 같고, 그것이야말로 글쓰기의 근원에 다가가는 행위인 듯하다. 지금 바로 이 순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