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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봄, 엄마의 봄

# 10

by 오진미


동네 공원에 자목련과 백목련이 피었다 여겼는데 어느새 꽃잎이 바닥에 흩날린다. 벚꽃은 하루가 다르게 피어오르더니 터널을 만들었다. 꽃은 언제 봐도 예쁘다. 다들 자연의 섭리라고 말하지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에는 사람의 의지보다 그 이상을 해내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웃 아파트 주변에도 개나리가 별처럼 반짝인다. 조금 있으면 철쭉이 만개할 것이다. 당분간은 눈이 호강하는 시간이다. 뭣을 해주지 않았는데도 꽃을 피워서 마음을 들뜨게 한다. 봄은 그런 의미에서 찬란하다. 꽃뿐만이 아니다. 나무의 새싹이 삐죽삐죽 돋아나는 모습은 소리 없이 누군가 아파트 현관문에 놓고 간 쑥 한 봉지처럼 감사하다.


봄은 꽃의 계절인 줄 알았다. 내 앞에 보이는 풍경에만 빠져 다른 모습을 생각지 못했다. 티비 드라마 속 한 장면이 봄을 다시 들여다보게 했다. 전원일기를 봤다. 시골에서 자란 때문일까. 밭에서 김을 매며 웃음꽃이 피거나 동네 누구의 어려움을 제 일인 것처럼 걱정하는 따뜻한 정서가 나를 붙잡는다. 서로서로를 살펴주고 마음 쓰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김 회장네를 중심으로 한 대가족과 이웃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살아가는 모습은 옛 풍경에 실려 현재의 고민들을 잊게 한다. 이들은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며 서로를 알게 되고 겹겹이 쌓이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끈끈해진다. 지금은 사라졌다 할 만큼 어려운 일이기에 아득하지만 더 마음이 간다. 매일 밭에 나가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은 우리 부모님 같다. 그들의 지극한 어려움은 흙이 삶을 돌봐줄 거란 믿음으로 살았던 내 어린 시절 이웃들과 닮았다.


전원일기에도 봄이 찾아왔다. 꽃이 피고 마을 사람들은 꽃놀이 가자고 난리다. 김 회장댁 할머니의 봄은 왠지 쓸쓸하다. 손자며느리가 사 입고 온 분홍색 원피스에 끌린다. 한복을 지어달라는 시어머니의 말에 며느리는 천을 사고와 선보이지만 매번 퇴짜다. 할머니가 원한 건 진분홍이었으니 누가 그걸 헤아릴 수 있었을까. 결국 마음에 드는 한복을 해 입은 할머니는 오랜만에 잔잔한 미소를 보인다.


우리가 생각하는 봄은 짧다. 꽃이 만발하고 들판에 나물이 돋아나는 때는 잠깐이다. 햇볕이 뜨겁다 여겨지고 꽃이 질 즈음 계절은 봄이지만 봄이 아니다. 봄은 매해 돌아오지만 삶의 끝자락에서 맞이하는 이들에겐 아쉬움과 미련뿐이다. 붙잡고 싶은 무엇이다.


봄은 모두의 가슴을 뛰게 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나이 듦에 대한 생각중에 착각하게 되는 게 많은 것 같다. 효부라 할 만큼 마음씀이 지극한 며느리 역시 시어머니의 한복감을 고르며 은은하고 차분한 색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도 같은 이치다.


할머니의 봄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붙잡고 싶어 하는 간절한 바람 같은 것이었다. 마음만은 꽃분홍 옷을 입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봄날의 하루를 보내고 싶음이 간절했다. 꽃은 피어나는 순간 시들어가는 과정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장독대 소복이 내린 흰 눈처럼 할머니의 쪽진 머리가 하얘진지 오래다. 그래서일까 할머니의 봄처럼 찬란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젊은이들의 빛나는 청춘에만 봄이 어울린다고 여기는 탓일까? 할머니의 봄을 챙기는 일에는 가족 모두가 뒷짐 진듯해 보였다. 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세상인데 말이다. 그 사이에 할머니의 외로움은 깊어갔다. 꽃은 피어나는데 마음 둘 곳이 없으니 헛헛하다.


그런 마음을 헤아렸던 큰 손자가 나선다.

“우리 할머니 이쁘시네요. 우리 주말에 꽃놀이 갈까요”

활짝 미소 띤 얼굴로 건네는 말에 할머니 얼굴도 살아난다. 그러고는 조곤조곤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 데나 꽃이 숭어리 숭어리 피고 나비가 날고 그러면 돼. 내가 이런 봄을 몇 번이나 겪을까. 난 이런 것을 몇 번이나 볼까. 난 봄에 죽었으면 좋겠어.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게 뭔지 아니. 금도 은도 아니야 너하고 나하고 살아서 손잡아서 뜨순 줄 알고 고운 꽃을 보면 예쁜 줄 알고 그게 젤 소중한 거야.”

할머니의 말에 살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봄은 살아있음을 감사해야 하는 그런 때였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봄날의 뒤편에는 언제까지 마주할지 모른다는 삶에 대한 불안감이 함께 하고 있었다. 과수원에서 혼자 가지치기가 한창인 팔순을 바라보는 엄마가 떠올랐다. 아버지를 보내고 십여 년째다. 새가 지저귀고 이마를 스치는 부드러운 봄바람에도 엄마의 손은 바빠질 것이다.


담벼락 밑에 이름 모를 꽃들은 물론이거니와 골목 긴 우리 집과 등지고 서 있는 이웃집 돌담 위로 하얀 매화꽃이 얼굴을 내민 걸 알고는 있을까? 그 꽃들에 얼굴 한번 내밀어 봄의 향기를 느껴볼 여유가 있을까. 엄마의 봄이 노랑 개나리처럼 물들었으면 좋겠다. 따뜻한 봄 햇살이 엄마의 지친 어깨를 한 번 더 감싸주는 하루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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