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엄마가 없다. 눈을 비비고 부엌으로 갔는데 너무나 조용했다. 다른 때 같으면 솥에 불을 때고 무언가를 끓여 내거나 이곳저곳에서 바스락거리는 엄마의 움직임이 감지되어야 할 시간이다.
그때 생각났다.
“엄마가 내일 아침에는 아빠랑 일찍 풀 베러 가야 하니까. 오빠랑 동생이랑 같이 아침 챙겨 먹고 학교 가. 알았지.”
한두 명이 걸터앉으면 될 것 같은 부엌 마루 위 밥상 위에 보니 그릇이 올려져 있다. 살펴보니 까만 김으로 감싸진 주먹밥이다.
주먹밥과 처음으로 만났다. 밥은 흰밥이거나 보리밥, 김밥 정도로 알고 있는 내게 주먹밥의 존재는 신기했다. 손으로 꾹 눌러 만들어진 조금은 어설픈 모양의 밥에 채 썬 당근, 계란과 몇 가지 야채가 보였다.
별 기대 없이 우선 하나를 들고 먹었다. 간이 적당히 배었고 비뚤비뚤 뭔가 못나 보이는 얼굴이지만 맛은 으뜸이었다. 나중에야 주먹밥이 여러 가지를 넣고 손에서 조몰락조몰락거려 탄생하는 거라는 걸 알았다. 밥이라는 익숙한 것이 낯설게 느껴졌던 짧은 아침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무얼 해야 할지 헤매다 식탁에 앉았다. 한 가지로 끝낼 수 있는 걸 고민하다 유부초밥을 떠올렸다. 냉동 유부를 꺼내어 사선으로 잘라 삼각형 모양이 되도록 한다. 끓는 물에 유부를 데치고 다시 차가운 물에 한두 번 씻어낸다. 유부가 지닌 기름옷을 걷어내야 깔끔한 밥이 완성된다.
그다음은 시판 간장과 맛술, 매실액을 넣고 조림장을 만들고 유부를 넣고 조린다. 밥은 초밥을 결정짓는 핵심이다. 갓 지은 흰밥이면 금상첨화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집에 있는 밥을 볼에 담고 식초 몇 방울을 떨어뜨리고 잘 섞이도록 젓는다.
난 밥에 간을 하지 않는다. 조리는 과정에서 이미 유부가 진한 달콤함과 짠맛을 가졌기에 그냥 밥으로도 충분하다. 밥을 적당한 크기로 둥그렇게 새알심 빚듯 모양을 만든 다음 유부 주머니에 넣는다. 금세 스무 개 정도를 만들었다.
접시에 여덟 개씩 담았다. 아침의 전부다. 식탁에 접시만 덜렁 뭔가 허전해졌다. 아이들은 유부초밥을 후다닥 먹었다. 다른 나물 반찬을 먹어야 한다는 부담이 없으니 즐거운 표정이다.
아침 숙제는 그렇게 끝났다. 엄마의 주먹밥도 이런 마음에서 출발한 것일까? 일하러 가야 하는데 집에 있는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 무엇이라도 해놓고 가야 편했을 것이다. 특별한 반찬거리도 없고 밥이 있으니 생각나는 대로 만들었으리라고 짐작되었다.
그전까지 주먹밥이라는 걸 한 번도 내놓지 않았지만 그 날 최선의 아침밥이었다. 깜깜한 어둠을 깨고 허둥지둥 부엌에서 만들었을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모두에게 분주한 아침이지만 시골은 더욱 여유가 없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어스름이 하나씩 걷히는 모습만으로도 급해지는 게 농촌의 새벽이다.
한 가지가 끝나야 하나를 더하는 식의 아침은 사치다. 최소한 두 가지의 일을 한다. 밥을 하는 동안 헌 양말이나 옷을 깁거나 빨래를 하고, 정리한다. 매일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 시간이기에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놓는 일은 큰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시작조차 힘들다.
시골 부엌의 속사정은 살펴보면 복잡하고 고단하다. 주먹밥은 집 안팎에서 피로가 절정에 달했음에도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했던 지극함이 만든 밥이었다. 한 번도 밥을 거른 채 학교에 보내지 않던 엄마를 내가 배웠
나 보다.
내가 만든 유부초밥 역시 초간단이면 아이들에게 미안해질 것 같았다. 아주 조금의 마음과 정성을 담기로 했다. 시판 유부초밥 키트 대신 유부를 조려서 만든다. 의미를 만들어 가는 나만의 노력이지만 가끔은 귀찮다. 편한 게 제일이라고 생각하다가 이 과정을 이어가는 건 맛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걸 잘 아는 까닭이다.
매일 먹는 밥이 지겨워지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려 한다. 밥을 대신할 무엇을 먹는 것도 그런 의미이며 한편으론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마음을 예쁘게 포장하는 방법이다.
“이거 엄마가 만든 유부 조림으로 한 거니까 파는 거랑은 달라. 알지.”
목소리를 높인다. 내 가장 소중한 손님인 아이들에게 인정을 강요하는 동시에 내 일이 가치 있음을 평가받으려는 속내다.
엄마는 어떠했을까? 밥하는 일이 지겹지 않았을까? 알아서 먹고 가라고 해도 됐을 일이다. 서늘해지는 초가을 새벽에 주먹밥을 준비해 놓고 간 그 시절 엄마와 마주한다. 진심을 담는 엄마의 부지런한 손놀림이 스친다.
엄마는 밥 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가끔 파업을 선언하고 불 앞에 서기를 거부하는 나를 상상한다. 나는 벌써 부엌에서 도마를 앞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