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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11. 2021

미용실에서 마음공부


미용실에 가야겠다. 지난주부터 스치는 생각을 묻어 두었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을 두고 빨리 먹어야겠다는 마음처럼 조급함이 고개를 들었다.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아침에서 점심으로 갈수록 확고해진다..     

온라인 수업이 끝난 아이에게 점심을 차려주고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정신없어 보이는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설렘에 오랜만에 치마를 입었다. 복숭아색이 감도는 미니 백까지 들고 집을 나서는데 햇빛이 눈이 부시다 못해 따가울 만큼 강렬했다.     


편의점을 지나 건널목만 건너면 된다. 불길한 예감이다. 혹시 문을 안 열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빙빙 돌아가는 그것이 멈춰서 있다. 내 생각이 들어맞은 셈이다. 오늘 하루 쉬는 날인지 시작이 늦어지는지 모르겠다.     


부푼 기대를 안고 가는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허탈했다. 삐죽 하늘로 날리는 머리카락과 목덜미를 살짝 점령해 가는 막 자라기 시작하는 솜털 같은 것을 정리하려는데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 집과 다른 아파트를 이어주는 통로 계단을 오르는 일이 힘겨웠다. 집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평소 같으면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련만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혹시 30분 있다가 미용실 문 열 수도 있겠지?”

“응 그럴 수도 있어. 엄마.”

아이에게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질문 아닌 질문을 던졌다. 


한 시간 간격으로 두 번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바람으로 끝났다. 신호만 가는 전화기에선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떤 생각이 집요하리만치 지배하는 시간이 있다. 내게는 미용실에 가야 하는 시기다. 

“엄마 머리 아직은 괜찮은데 왜 그렇게 미용실에 가려고 해?”

“아직도 짧은데, 다시 자르려고? 좀 있다가 가지.”

머리카락을 정리해야 한다는 절박할 만큼의 집착을 보이는 내게 돌아오는 한결같은 반응이다.  

   

그러면 생각을 다시 가다듬어 바라봐야겠다 싶었다. 단지 길어가는 머리를 깔끔하게 하려는 미적인 욕구인지 다른 것이 있는지 살폈다. 스스로 머리 스타일을 결정하게 된 고등학교로 거슬러 올라갔다.      


“진미야 그렇게 머리 모양이 바뀌고 그러면 사람들에게 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느긋하게 지내다가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왜 그리도 자주 바꾸려고 하는지….”

고등학교 일 학년 가을의 어느 주말이었다. 아버지는 집으로 오랜만에 내려온 나를 보자마자 이런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몇 주 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모습을 보고서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을 조심스럽게 꺼낸 듯했다. 그때는 내가 알아서 하는 일인데 너무 간섭한다 여겼다. 기분도 별로였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니 아버지가 핵심을 관통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미용실은 마음이 복잡해지고 정리가 안 될 때, 현실과 내가 바라는 일상의 틈이 상당히 벌어져 있을 때 손쉬운 탈출구였다. 학창 시절 최대 관심사였던 성적은 시간이 갈수록 희망과는 멀어져 갔다. 그때마다 좌절했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차곡차곡 쌓였다. 자취생의 일상 역시 학교와 집 어느 곳에서도 그리 편할 수 없었다. 이런 나를 위해 미용실 회전의자에 앉았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말하고 미용사의 손길이 스쳐 가며 다 됐다고 할 때까지 작은 기다림은 설레었다. 나는 나였고 연예인들처럼 변신할 가능성은 적었지만 아주 작은 변화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대부분은 내 생각처럼 안 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옷과 얼굴에 묻은 머리카락들을 스펀지로 털어내고 의자에서 일어날 때, 상쾌했고 짜릿했다. 내가 새로워지는 묘한 매력은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즐거움이었다.    

 

어른이 돼서도 미용실에 가는 일만큼 꾸준한 게 없다. 모든 일에 전조증상 없이 갑자기 벌어지기는 힘들다. 나 역시 그러했다. 세수하고 거울을 바라보며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시작점이다. 한 달 혹은 40여 일을 기준점으로 그동안 쌓였던 갈등 덩어리가 폭발하기 쉬운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 있을 무렵이다.    

  

며칠 전도 그러했다. 내 불편함을 아이에게 핑계를 들어 격하게 표현했다. 가끔 몸에 이상 신호를 보내는 관절이 아파서 이삼일을 끙끙댔던 터다. 내가 나를 싫어하는 감정이 마구마구 싹을 틔워 뿌리를 내려 다른 나무에 줄기를 휘감을 정도가 되었다. 더는 안 되겠다. 정신을 세워야 할 때가 다가왔다. 내 구원투수는 미용실이었다.      


하루를 보냈다. 아이 바지 길이를 줄이기 위해 수선집을 다녀오다 신호등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저녁에 비를 예고한 후텁지근한 날씨는 아침부터 지치게 했다. 멍하니 앞을 보고 있는데 게슴츠레했던 눈이 번쩍 떠졌다. 어제 그렇게 그리웠던 미용실 사인볼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곳으로 직행했다.    

  

“어째 머리가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아요.”

 다닌 지 8년이 다 되어가는 단골 미용실 원장이 말했다. 목 주변에 걸리는 것이 없도록 시원하게 짧은 머리가 완성되었다. 나를 덮고 있던 무거운 이불을 차고 나온 느낌이었다.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초록 불을 기다렸다.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하듯 몸에 기운이 조금씩 채워진다. 안 되는 일에 안달복달 하지 말고 견디며 하룻밤을 보내면 됐을 일인데 마음을 썼다. 그곳이 그저 나를 살피는 시계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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