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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14. 2021

방울토마토 절임과
빛나는 조연 바질

 

보통의 일요일이었다. 종일 집에 머물다 잠깐 동네 메타세쿼이아 길을 산책했다. 하루를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질 무렵 새로운 걸 해 보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든다.      


지난주 토요일에 사둔 대추 방울토마토가 아직도 식탁 위에 몇 개 남았다. 검붉어 보일 만큼 빨강이다. 샐러드에 초록이들과 잘 어울리는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가끔은 구워 먹기도 한다. 딱 거기까지다. 익숙했던 방울토마토에서 벗어나 보기로 했다. 얼마 전부터 티비에서 봤던 토마토 마리네이드가 떠올랐다. 토마토를 소스에 재웠다가 먹는 일종의 절임 요리다.    

 

토마토 열 알이다. 냉장고에 더 있지만 우선 맛을 보는 정도로 시작하기로 했다. 토마토 윗부분에 살짝 열십자 표시를 하고 끓는 물에 일 분 정도 데쳤다. 시간을 확인한 것도 아니니 잠깐이었다고 하는 게 옳겠다.   

   

토마토는 건져 내어 찬물에 헹궈주고 껍질을 벗겼다. 칼집을 넣으니 쉽다. 그러고 나면 올리브유와 발사믹을 한 숟가락씩 볼에 담고 양파 다진 것을 넣어준다. 레시피를 검색해 보니 여러 가지가 나와 있지만 대충 하기로 했다. 집밥은 계량하지 않고 느낌으로 만들어도 훌륭하다. 주부로 보낸 시간이 알려주었다.    

소스에 꿀이나 레몬즙을 넣는 이들도 있지만 매실액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다 막내가 키우는 바질이 생각났다. 3월 18일 심었으니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아이는 이것을 ‘쪼꼬미’란 이름도 붙여주며 정성을 들였다.     


세 개의 줄기에서 입이 두세 개 달렸다. 아이는 조금만 더 있으면 피자에 넣겠다고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지만, 그때까지 건강할지가 의문이다. 잎이 살짝 마르면서 벌레가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가 바질 써도 될까? 이리로 와 볼래?”

아이가 껍질 벗긴 토마토를 보며 신기해했다. 뭐 할 거냐고 묻는다. 메뉴를 설명하고 나서 바질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했다. 깨끗한 부분만을 조심스럽게 땄다.  

   

흐르는 물에 입 대여섯 개를 씻었다. 잘게 다지니 그야말로 이름처럼 ‘쪼끔’이다. 소스에 넣고 휘휘 저어주었더니 향은 대단했다. 살짝 맛을 보던 아이가 코를 씽긋한다. 허브향이 어색하면서도 묘했나 보다.     


작은 유리병에 담겨 냉장고로 직행했다. 아침 식탁에서 맛이 궁금해졌다. 식구 수 대로 꺼내어 접시에 담고는 하나씩 맛보게 했다. 아이들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떠올리며 시원한 게 여름에 어울린다고 했다. 남편은 낯설었던 모양이다.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엄마 바질 향이 나. 이거 진짜 대단하다.”

막내는 직접 키운 허브가 이리 쓸모 있게 된 것에 대해 나름 뿌듯한 모양이다. 점심에는 호밀빵과 함께 먹었다. 토마토가 퍽퍽한 빵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소스를 빵에 찍어 먹으니 신세계다.  살짝 후추가 떠오르는 이국의 향이 오랫동안 주변을 맴돌았다. 소박했지만 토마토의 새로운 맛에 빠져든 심심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토마토 마리네이드는 막내의 기대와 관심이 키워낸 바질이 있어 더욱 특별했다. 아이가 바질 화분을 키우게 된 건 어린이 잡지를 읽고 엽서를 빼곡히 채운 정성 덕분이었다. 거기에 운이 더해져 뽑혔다. 아이는 엽서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직접 갔고,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선물을 기대했다.     


겨울이라고 하지만 봄이 간절해지는 2월 중순이었다. 남편과 병원에 잠시 머물러야 할 즈음이었다. 아침에 보니 잡지사에서 엽서가 당첨되어 선물이 발송된다는 메시지가 도착해있다. 몇 차례 고배를 마신 후 얻은 깜짝 놀랄 소식이었다.      

“엽서 됐다고 연락 왔어. 오늘 오후에 선물 도착한대.”

“엄마 정말이야? 정말. 와 나 정말 해낸 거야?”

전화기 너머로  흥분이 감지될 정도로 아이는 깡충깡충 뛰었다. 아이는 그것을 봄기운에 도는 어느 날에 씨앗 네 개를 심었다. 그중에서 세 개가 싹을 틔웠다.  

    

아이는 화분을 볼 때마다 잘 자라야 한다고 몇 번의 당부와 간절함을 담아 기원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초록이 돋았다. 흙이 마를 즈음이면 물을 주고 학교 갔다 오면 인사를 건네며 지극한 마음으로 살폈다. 그러다 생각보다 크게 자라지 않는 걸 보고 마음에 걸려 했다.     


동네 슈퍼만 가도 돈만 내면 원하는 걸 살 수 있다. 그러니 당연히 먹고 싶은 욕구가 미치는 그것에만 집중할 뿐이다. 어떻게 키워지고 봉지에 담기게 되었는지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아이의 바질 쪼꼬미가 내 요리의 재료가 되는 순간 잔잔한 기쁨이 전해졌다.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아이의 사랑과 정성이 키워낸 것이 함께여서 즐겁다. 도마를 앞에 두고 적당한 간격을 둔 다음 아이와 나란히 서 있는 기분이다.     

 

비용을 지급할 능력만 된다면 무엇이든 가까워졌고 쉬운 세상이다. 그렇지 않은 게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그것까지 깊이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아이의 바질은 우리 집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여러 생각들을 내게 전했다. 조금은 지루해지려던 내게 감사한 하루임을 전했다.


토마토 마리네이드가 처음의 떨림을 오랜만에 느끼게 해 준다. 이것이 담긴 작은 병 안에 생명과 기다림에 대한 아이의 마음도 함께한다. 이제 쪼꼬미 바질은 만나기 어렵지만 추억 안에서 머물 듯하다. 잊히지 않는다면 함께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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